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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운 Nov 08. 2023

03. 첫번째 크리스마스마켓이 프라하, 너라서 좋아.

나만의 겨울 아지트가 이곳이라면 나는 겨울 만을 기다리며 살아갈 거야


03. 그래, 결정했다. 난 겨울에 결혼해야지. 이 멋진 겨울 프라하를 사랑하는 이와 꼭 다시 봐야겠으니까.
이런 결정을 일찍이 내리게 해 준 프라하에게 감사의 말씀을!




이 글과 함께 추천하는 크리스마스 캐롤

https://youtu.be/neBrW3bzp-w?si=QGGFqM6fdodpxY0t










결항을 뚫고 어렵사리 도착한 프라하.


프라하 공항에 도착하자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김포에서 제주도에 가는 것 마냥 정말 금방 내렸기 때문인데, 어제 겨우 이 거리 때문에 겪은 고생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래도 수하물까지 찾고 나니, 큰 문제없이 프라하에 도착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언제 프라하에서 일정 맞으면 봐요! 다들 행복한 추억 만드세요!”


함께 다녔던 결항팀과는 서로의 여행을 응원해 주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우리는 방향이 같았던 모녀 여행객 분들과 함께 택시를 탔다.


택시 앞자리에서 구글맵을 통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던 나를 제외하곤, 

뒷자리 앉은 분들은 모두 잠에 들었다. 다들 꽤나 긴장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1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서야 겨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프라하는 역시 춥구나. 어릴 적 눈이 오면 추운 줄도 모르고 눈싸움을 했었는데, 이젠 눈이 와도 추운 건 춥다.

그래도 겨울의 밤이 주황빛으로 물들여진 것을 보니, 연말이 왔나 보다.


숙소에 가기 위해 추위를 뚫고 열심히 걸었지만, 여름 여행에서도 느꼈다시피 우리는 숙소 찾는 것에는 젬병이었다.

각자 하나밖에 없는 핫팩을 왼쪽 오른쪽 번갈아가느라 정신이 없었던 틈을 타, 겨우 도착한 숙소.


이번 숙소는 한인민박이다.

사실 한인민박은 처음이라, 방문 직전까지도 혼자만 아는 긴장감 속에서 이곳을 방문했더랬다.

이미 결항 때문에 우리의 소중한 하루가 날려진 상황이었고, 일정상 속상하게도 딱 하루만 이곳이 허락됐지만

그래도 타지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난다는 게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방금 전 택시에서 한국 사람과 헤어진 게 불과 한 시간도 안 됐는데 말이다.







“아유, 고생했네요. 결항 소식을 듣고 우리가 더 아쉬웠어요."


도착한 숙소는 깔끔하고 따뜻했다.

감사하게도 우리를 맞아주시는 주인 아주머니는 결항 때문에 우리가 힘들게 오진 않았는지 걱정해 주셨고,

하루밖에 머물지 못하게 된 상황에 대해 우리보다 더 아쉬워해주셨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아쉬워할 여유가 없었다.

이미 독일에서 충분히 아쉬워했음은 물론이요, 매우 짧은 여행이 결항으로 더욱 짧아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이 프라하를 즐겨야만 했다.


다행히도 애매한 시간에 도착한 덕분에 지금은 다른 숙박객들이 숙소를 비운 상황이었다. 우선 얼른 씻자.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하필 그날..!이었고 컨디션 난조에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컨디션 난조고 뭐고, 이 정도는 견뎌내기로 했다.

아니, 어떻게 해서든 두 눈을 꾹 감고 견뎌내야만 했다.


아침에 먹은 케밥이 마지막 식사였음에도 우리는 배고픔도 모르고, 후다닥 거리로 뛰쳐나갔다.







“어우, 더 껴입고 나올걸 그랬어. 밤이 되니까 훨씬 더 춥네”


뛰쳐나간 거리는 생각보다 더 추웠다.

찬 바람은 패딩을 뚫고 들어왔고, 우리는 거리에서 춥고 배고프고, 아프고..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는 모양새였지만,

한국에서부터 따라온 골칫덩어리 문제는 잠시 내려둘 수 있어서 오히려 행복했다.

역시 행복은 상대적인 거다.


이미 주황빛으로 물든 거리는 프라하의 밤을 더욱 아름답게 비춰주고 있었다.

저 빛을 따라가면 분명 우리가 꿈에서만 그리던 큰 트리를 볼 수 있을 거란 직감이 든다.


우리가 이미 크리스마스마켓에 진입했다는 사실은

옆으로 길게 들어서있는 크리스마스 마켓들을 보고 안지 오래였다.

이것만으로도 크리스마스가 내 주위를 가득 감싸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이 마켓들은 내가 온갖 설렘을 안고 직진해도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란 걸 보여주는 신호등 같은 존재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아!"


드디어 봤다.








한국에서 이렇게 큰 트리를 언제 봤을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트리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호두까기인형 발레 공연 덕분에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2층에 이렇게 큰 트리가 들어서곤 했는데, 체감상 그보다 훨씬 컸다.


트리의 양옆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즐비했고, 그 중앙에 있던 큰 난로들 주변으론 *펀치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따뜻한 펀치의 향이 가득했던 거리에는 그에 걸맞은 미소들이 함께였는데,

그 순간을 믿을 수 없었던 나의 시선이 그들에게 느껴진 것인지 마켓의 주인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환영의 눈빛을 건네주곤 했다.


사각사각 조금씩 밟히는 눈덩이들을 지나, 마침내 트리 앞에 도착했을 때의 환희란!

트리에 걸린 나팔 부는 천사 오너먼트가 나의 이 기분을 그대로 증명해 준다.


*펀치 : 파티용으로 즐겨 만드는 과즙 음료, 종류에 따라 알코올이 들어갈 수 있다.







크리스마스마켓은 한 도시 안에서도 여러 곳에서 진행되는데, 

우리가 방문한 곳은 Náměstí Republiky (구시가 광장)이었다.


프라하의 유명한 쇼핑 명소인 팔라디움 백화점 앞에 위치한 이 광장에서 진행 중이었던 크리스마스마켓은 프라하에서는 작은 규모에 해당되는 마켓이라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도착했음에도 꽤 근사한 크리스마스마켓을 만났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보다 더 멋진 마켓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 장담했지만,

다음날 프라하에서 가장 큰 마켓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더랬다.


감히 이보다 더 멋진 크리스마스마켓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 날은 구시가 광장 크리스마스 마켓만으로도 나를 만족시키기엔 충분했다.

그 추운 날씨에 멋진 사진을 남기겠다고 패딩까지 벗어던진 사람은 그 많은 사람들 중 나뿐이었지만, 

이 부끄러움은 당시 나에게 전혀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비록 패딩을 벗고 사진을 남기는 나를 보며 대단하다는 표정을 가진 채 지나간 사람들을 몇 명 보긴 했지만 말이다.







“잠시만, 손이 너무 얼었어”


하지만 너무 추웠던 탓일까, 고속촬영으로 허겁지겁 사진을 남기고는 바로 앞 팔라디움 백화점으로 들어와 버렸다.


환한 빛으로 가득 찬 문을 열자 그 빛에 보답하듯 따뜻한 온기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백화점 천장에는 동그랗고 큰 오너먼트가 잔뜩 걸려 있었고, 그 곁에는 거꾸로 매달린 트리도 함께였다.


사실 우리나라 백화점도 크리스마스 시즌엔 이렇게 멋진 장식들로 꾸며져 있을 텐데, 사람의 기대감이란 게 이렇게나 무섭다.

한국에서의 백화점은 아무리 머리를 굴러봐도 장식들이 생각나지 않는다. 외국에서 보는 크리스마스는 확실히 필터 하나, 아니 스무 개는 씌인게 확실하다.


백화점이 그리도 신기했는지 우리는 실내에서도 사진을 몇 번이고 찍으며 프라하에 온 것을 잔뜩 만끽했다.

아쉽게도 늦은 시간대 방문했기 때문에, 우리는 H&M에서 모자를 구경하다 말고 마감 시간에 쫓겨 다시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괜찮다. 이 덕분에 다음 날도 이곳에 다시 방문할 핑계가 생겼으니까.







매번 사람에게 상처를 받음에도, 동시에 사람에게 상처를 치유받는 나는 한인민박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나 보다.

급하게 주변 마트에 가서 맥주라도 사서 같은 곳에 머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늦은 시간이라 이미 수많은 마트들이 문을 닫았고, 우연히 만난 민박주인이 맥주를 살 만한 마트를 알려줬지만 그곳도 역시나 문이 닫힌 지 오래였다.


다행히 그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 방에서 휴식을 취했던 모양이었는지 맥주를 사도 무용지물이 됐을 거다.


숙소에는 다들 일찍 들어와 휴식을 취하고 계셨고, 우린 같은 방에 머물고 있던 여자 2분과 새벽까지 수다를 떠들다 잠에 들었다.


특히, 나와 10살이 넘게 차이가 나는 언니에게 처음 보는데도 불구하고 인생 조언을 구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다음날 오전까지도 나의 고민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주느라 고생했던 그 언니에게 늦게나마 감사의 표현을 전해야겠다.


이렇게 프라하에서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둘씩 쌓여갔다.


그리고 대망의 다음날, 나는 결코 프라하를 잊을 수 없게 되었다.





* 위 사진들은 모두 오운 (@daa_wooon) 개인 권한 저작물이며, 개인/상업적 이용을 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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