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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웜띵 Jan 21. 2023

멋쨍이 할머니의 벨로아 원피스

다른 만큼이나 닮은 우리들

설 연휴를 앞두고 아주 오랜만에 외할머니를 찾아뵀다. 거의 일 년 반 만이었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샤부샤부 집에서 점심 한 끼를 하기로 했다.


식당에 들어가자, 누가 봐도 우리 할머니인 분이 앉아 계셨다. 짙은 녹색 벨로아 원피스에, 여우의 것인지 토끼의 것인지 모르겠지만 노란빛이 도는 흰색 털뭉치를 어깨에서부터 허리춤 아래로 늘어뜨리고, 목에는 여러 가지 색깔로 다각형들이 프린팅 된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계셨다.


'멋쨍이 우리 할머니, 여전하시네!'




우리 할머니는 우리집에서 '멋쨍~이'로 통한다. 사실 우리집뿐이겠나, 지나가다 얼핏 보아도 시선을 강탈하는 자태에 어느 누구도 '멋쨍이'라는 별칭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젊은이보다 더 젊은 우리 할머니를 자랑스러워했다. 할머니랑 시장에 갔을 때엔 괜스레 내 어깨에 뽕이 들어간 것 같았고, 할머니가 초등학교 졸업식에 찾아오셨을 땐 할머니의 윤기 좌르르한 진한 갈색 코트에 반해버렸었다.


그런 할머니를 가장 탐탁지 못하게 여기는 사람은 뜻밖에도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육아나 살림보다 대외 활동으로 바쁘셨던 할머니의 젊은 시절 때문에 자신의 유년 시절이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으셨다고 했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유모와 보내야 했다던 엄마의 말은 언제 들어도 애잔하다. 또 엄마의 출생연도를 감안해 보면, 당시 사회 분위기 상 비전형적이었을 할머니의 모습이 어린 엄마에게 어떻게 비쳤을지 짐작되기도 한다.


할머니를 향한 엄마의 적대심 깊이를 가늠할 수 있었던 결정타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4-5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고, 여느 때처럼 엄마는 고추장 대신 케첩을 넣어 떡볶이를 만들고 계셨다. 조금만 매워도 눈물 콧물 짜버리는 나를 위해 엄마는 대부분 음식을 맵지 않게 만들려고 노력하셨다. 그런 엄마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엄마는 왜 나가서 일 안 해?"


그리고 돌아온 엄마의 대답. "할머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서." 바깥일이나 자신을 가꾸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하셨던 할머니와는 달리, 엄마는 가정에 올인하고 싶어 출산과 동시에 전업 주부가 되기로 결심하셨다고 한다. 할머니에게서 받은 상처를 조금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젊었던 우리 엄마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거다.


엄마의 그 올인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엄마는 선약이 잡혀 있어도 자식들의 학원 픽업이나 갑작스러운 시험 일정이 생기면 망설임 없이 먼저 했던 지인과의 약속을 깨시는 편이었다. 며칠 전도 마찬가지였다. 병원에 다녀오게 아이 좀 봐달라고 하자, 엄마는 먼저 잡혀 있던 계모임을 파하시려 했다. 다행히 식사만 하고 서둘러 아이를 봐주시는 걸로 정정하셨지만. 어쨌든 우리 엄마는 젊은 시절의 다짐처럼 자신보다 자식들을 언제나 먼저 두셨다. 그 결과값은 무탈하게 쑥쑥 자라난 우리 삼남매다.


그런데 난 참 못되기도 못됐지. 그런 헌신적인 엄마를 보며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곤 했다. 차라리 할머니처럼 자신의 것을 우선하며 즐기며 사는 삶이 더 나아 보인다고 사춘기의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야속하게도 모를 일인가 보다. 지금 나는 그렇게도 피하고 싶었던 '전업 주부' 네 글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은근하게 끓어오르는 샤부샤부 한 상을 앞에 두고 엄마와 할머니가 나란히 앉아 계셨다. 찾아뵙지 못한 시간 동안 할머니의 몸집은 무척 왜소해져 있었다. 재작년이었던가 할머니는 계단에서 구르시는 바람에 허리에 금이 가고 말았다. 수술로 금 간 곳을 이어 붙이기는 했으나 한 번 고장 나버린 허리는 계속해서 말썽이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우아한 착장과 함께 반듯이 허리를 세우고 앉아 계셨다. 아흔이 다되도록 꼿꼿한 할머니의 척추 마디마디는 우리 엄마의 눈물 몇 방울을 품고 있다.


엄마는 편찮으신 할머니 곁을 지키며 꽤 오랫동안 간호하셨다. 한 번은 할머니와 통화를 하신 뒤 재빨리 눈물을 훔치는 엄마를 본 적 있다. 할머니 일이라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았던 엄마였는데. 그때 엄마가 흘린 눈물에 나는 기뻤다. 엄마가 할머니를 미워하는 게 아닌 것 같아서. 엄마가 할머니를 사랑하는 것 같아서. 엄마가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것 같아서.


엄마는 할머니 닮았다고 하면 역정 내신다. 하지만 투닥투닥 서로의 옆자리를 지키고 계신 두 분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웃음이 난다.


아, 할머니가 입고 나오셨던 녹색 벨로아 원피스를 떠올리며 글을 적다 보니, 우리 엄마 옷걸이에도 할머니 것과 똑닮은 분홍색, 남색 벨로아 원피스가 걸려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과연 엄마 옷방에 걸려 있는 벨벳 원피스 두 장은 할머니가 사다 주신 걸까, 아니면 엄마가 직접 고른 옷일까? 어느 쪽이 되었든 우리 엄마는 우리 멋쨍이 할머니와 다른 만큼 또 많이 닮았다.




날이 따스해지면 할머니 모시고 엄마랑 언니랑 나, 이렇게 넷이서 셀프 사진관에 가야겠다. 미워하면 미워하는 대로,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날 것 그대로의 우리 3대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촬영 복장은 벨로아 원피스로 통일하고. 크크.


서로 닮아가는 걸 그다지 원치 않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참 많이 닮아 있는 우리 네 사람의 모습을 한 프레임 안에 담아둘 생각을 하니 벌써 신이 난다. 오래오래 꺼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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