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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Nov 21. 2023

[2023 독서결산] 서른 권 읽고 뽑은 올해의 책

위로받는 게 어때서?

월말도 아닌데 벌써? 싶기도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미루게 될 뿐이란 걸 알기에 어중간한 11월 말의 독서결산을 시작합니다.


11월을 기준으로 올해는 총 30권을 읽었습니다. 독서를 좋아하는 분들에 비하면 적은 수이지만 작년의 저보다는 많이 읽었기에 스스로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거인의 노트>,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웃풋 법칙>, <가녀장의 시대>,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 <당신은 반드시 잘될 겁니다>,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 <매일을 헤엄치는 법>, <아버지의 해방일지>, <김미경의 마흔 수업>….     


그리고 이 중, 유난히 길고 힘들었던 올 한 해를 살아가는데 힘이 되어준

올해의 책 베스트 4를 뽑아 보았습니다.

3도 아니고 5도 아닌 애매한 4가 된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세 가지만 뽑으려다 이건 꼭 넣고 싶은데 하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고른 책들이 사계절과 참 잘 어울리더군요.

올 한 해 제가 찍었던 사진들 중 계절을 대표할 만한 것으로 골라 함께 담아보았습니다.

긴 글을 쓰는 재주가 없어 짧고 간단하게 썼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든 책에서 배움을 얻었고

얇고 차가운 종이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1월- 3권

3월- 2권

4월- 2권

5월- 7권

6월- 8권

7월- 5권

8월- 1권

9월- 1권

10월- 1권


(잡지 종류는 4권이라도 1권으로 줄임.)


<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어서> 장마음

: 불확실한 미래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참 많은 책이다. 작가님의 감성과 생각들이 그 깊이만큼 따뜻하다.

카페의 창가자리에 앉아 가볍게 페이지를 넘기며 읽던 중,

어느새 줄어드는 페이지에 아쉬워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회는 어쩌면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모순 가득한 세상에서 나로 존재하는 법은 어렵다.

결국 모두의 장단을 맞추어줄 수는 없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중립적인 위치에 있을 수는 없다. 그건 도피에 불과하다.

나는 그저 나일뿐. 누군가의 무언가가 아니다.

그러니 딱 1인분만 해내면 된다.

그 이상은 사치이고 욕심이다.


사실 ‘불확실한 미래’라는 말은 너무나도 당연한 단어가 아닐까?

확실한 미래라는 건 없다.

당장 다가오지 않은 일들을 고작 그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한 것을 가지고,

그게 정말 일어날 일인 양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예상이 빗나가지 않을 거라는 일종의 자만인지도 모른다.

좋든 나쁘든 그 예상대로 될 것이라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는 모든 가능성이 존재한다.

우린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지만 갑자기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곳에서 좋은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인생이라고.

지금 나쁘고 좋지 않다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건 단순히 희망회로를 돌리는 게 아니라 사실이다.

또 그런들 어떤가? 그럼으로써 일보 앞으로 내딛고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면.



<글쓰기에 진심입니다> 유미

: 행복이란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에 화음처럼 쌓인 파도 소리로 가득 찬 공기를 느끼며 군밤 한 알을 안주 삼아 포도주를 마시는 유쾌한 낭만가, 조르바의 모습이 그려졌다. …소박하게 차오르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지금껏 행복을 무언가 크게 성취해야만 다다를 수 있는 어느 지점이라 생각했었다. 아니었다. 조르바처럼 행복할 수 있는데 필요한 것은 마음뿐이었다.


우리의 일상 곳곳에 이미 존재하는 행복을 발견하겠다는 마음이면 충분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하늘에 매연이 없고, 자동차가 적고, 사람 수가 적고, 서랍 속에 반듯하게 개켜진 팬츠가 쌓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에 있어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나도 푸른 초록과 맑은 하늘 답답하지 않음에 은은한 행복감을 느낀다.

이건 당장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밤은 또 밤하늘을 볼 때에 느끼는 행복이 있다.

반짝이는 별부스러기 따위에도 은은하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건 오롯이 그걸 올려다보는 나의 몫이다.

자연을 보다 보면 가끔 가슴속에 무언가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무언(言)의 위로.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정작 봄은 우리 집 매화나무 가지의 걸려 있었네.

행복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정작 행복은 내 눈앞에 있었네.


이 시는 대한민국 광고계를 대표하며 창의성의 아이콘이라고도 불리는 박웅현 작가가 <책은 도끼다>에서 소개했던 작자 미상의 중국 시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꼭 이럴지도 모르겠다.


시를 읽으며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건 연금술사 또한 이 시와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겠지.

보물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 산티아고의 여행기.

그런데 사실 보물은 여행을 하기 위해 출발하던 곳, 자신의 발아래에 있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 이 이야기를 읽고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을 느꼈더랬다.

건강을 잃고 난 뒤에야 그 소중함을 알듯,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들 또한 소중한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당장의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친구와 나누는 일상, 꿈.

무엇 하나 하찮은 것이 없다.

행복을 먼 곳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 공백의 획득


달리고 있을 때 어떤 일을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대체로 오랜 시간을 달려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제대로 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원칙적으로는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서 달리고 있다.


공백의 획득이라는 것은 어쩌면 명상과 비슷하다.

명상을 할 적에 선생님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비우라 하지 않는가?

하루키는 이 달리는 과정을 자신의 정신 위생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라고 말한다.

생산성이라든가 남을 신경 쓰는 게 아닌,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귀중한 시간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게 된 이유도 비슷하다.

무거운 다리가 점점 더 가벼워지고 머리는 맑아지는 신비한 현상.

다시금 그걸 느끼고자 반복하게 된다.

이 공백을 획득하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우리 인간의 성격은 멈춰있지 않다. 계속된 발견의 연속인 것이다.

그렇기에 사실 한 사람을 완전히 안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말도 된다.

그 사람에 대한 흥미와 호감 애정이 식어 알고 싶지 않게 될 뿐이다.

그렇게 관계는 무관심 속에 멀어져 간다.


하루키는 스스로에 대해 뻔뻔한 성격인 데다 의외로 신경질적인 데가 있다는 걸 중년에 와서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가령 몇 살이 되어도 살아 있는 한, 나라고 하는 인간에 대해서 새로운 발견은 있다고 덧붙인다.

발견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

스스로를 '나는 원래 이래'라며 들여다보지 않고 다양한 자신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면 얼마나 아까운가.

그처럼 타인 또한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이미 정해진, 한정된 결말을 가진 이야기를 보는 것만큼 따분한 게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


어떻게 보면 그는 정말 제멋대로인 사람이다. 제멋대로지만 멋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하루 한 장, 인생그림> 이소영

: 희망


뭉크의 작품 중 <병실에서의 죽음(1893년)>은 슬픔에 빠진 가족들이 그려진 그림이다.

<절규>처럼 그 특유의 우울하고 불안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품이다.

어떻게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면 그의 삶을 들여다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잇단 가족의 죽음을 경험했었고 오랜 폐병과 정신병에 고통받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늘 의지를 갖고 자신만의 예술을 했고, 그 예술로 일어났다.


<절규(1893년)>와 같이 유명한 <태양(1916년)>이라는 작품을 그려낸 뭉크는 말했다.     


“조금씩 하나씩 잇달아 드러나는 바다와 작은 섬들 그리고 절벽들 나는 그 절벽들 위로 솟아나는 태양을 보았다. 나는 태양을 그렸다.”     


뭉크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무엇을 느꼈을까?

태양이 떴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을까

위로가 되었을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얻었을까


희망, 용기, 뻔하다면 뻔한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나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또 나약하다고 해서 어떤가? 우리가 아는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 뭉크 같은 작가들 또한 그런 걸 필요로 했고 그것들이 있었기에 어두운 시간을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그걸 갈구하고 찾지 않을 이유는 없다.

마음이 약하다면 약할수록 더더욱 필요한 재료다.

그러니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당연하다. 사람이니까 필요한 양분이다.

뭉크의 희망에 대한 의지에 위로받을 수 있어 감사한 책이었다.






여러분의 올해의 책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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