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가족여행으로 오사카를 선택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자면, 어머니와 거실에 앉아 TV를 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마는 가고 싶은 곳 없어? 요즘 오사카나 후쿠오카 많이 가잖아.”
“엄마는 해외가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다. 여행별로 안 좋아하잖아~”
어릴 적 여름휴가 때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꼭 한 번씩은 크게 싸우셨기에 여행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외에 가보고 싶다 생각한 적 없다는 말은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세계테마기행이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나이이시다 보니 어머니는 다리가 아프다거나 무릎이 쑤신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심이 섰다. 지금 가자.
저녁 9시 30분, 어머니는 애청하는 프로그램을 보며 말했다.
“풍경이 너무 아름답네.”
어디지? 목을 빼고 보니 독일의 호숫가 풍경이었다. 영화를 잘 보지 않는 어머니에게는 그것이 그 어떤 영화보다도 재밌는 것일지도. 잔잔하게 깔려 들려오는 외국인들의 대화소리, 다양한 문화와 이국적인 거리와 풍경.
그런 곳에 보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마 나보다 어머니가 더 그걸 좋아할 것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6월 초, 본격적으로 2박 3일 패키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기왕 가는 거 실패가 없도록 가격과 구성, 여행사 리뷰를 꼼꼼히 살폈다. 그리고 찾자마자 당당하게 이번 여름휴가는 일본이라며 부모님께 공표했다.
"이번 여름휴가 일본으로 갑니다!"
6월 중순, 어머니가 친구모임에서 일본여행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조심스레 내게 말했다. 여행 계획을 짜던 초기였기에 엎어지는 상황이 발생할까 아직은 주변에 알리지 않는 게 좋겠다고 내가 말했기 때문이다. 해외에 나가는 걸 꺼리는 듯 보였던 어머니도 실은 첫 해외여행에 설레고 계셨던 걸까? 뿌듯함이 밀려들었다.
그동안 다녔던 가족여행은 자가용을 이용한 여행이 대부분이었기에 배낭가방 몇 개만으로 충분했다. 즉, 쓸 만한 캐리어가 없었다. 어차피 여행을 다니려면 필요했던 것들이니까 큰맘 먹고 턱턱 샀다. 또 새로 산 것이 있는데 그건 고데기였다. 일본에 가져가 쓸 수 있는 고데기는 유선에 프리볼트 제품이어야 했다. 그 이유도 있지만, 큰 고민 없이 바로 살 수 있었던 건 나의 10년 된 고데기가 낯선 이국 땅에서 폭발이라도 일으킬까 걱정 됐기 때문이다. 켤 때마다 치직- 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던 녀석을 이제야 놓아준다. 미안하다. 어쩌면 이번 여행은 오래 묵은 옛 것들, 그것이 물건이든 생각이든 놓아주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각자 먹는 혈압 약, 갑상선 약, 뇌전증 약 등등 혹시 모르니 처방전도 같이 챙겼다. 우리 모두 필수로 챙겨야 하는 약이 많다는 게 새삼 나이 들었음을 실감케 했다. 하지만 오히려 슬프기보다 유쾌했다. 이렇게 약을 먹는 몸이 되었지만 여행을 다닐 수 있다니, 행운이잖아?
6월 17일 새벽 1시 반,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벌떡 일어나 노트북을 켰다. 네모난 창에 검색한 건 '해외여행 가본 적 없는'이었다. 게시글에 대한 반응이 궁금했지만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 나이에 아직도 해외에 가본 적 없냐는 말이 나올까 봐서였다. 마른침을 삼키며 한 게시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곧 안심했다. 나와 비슷하게 서른이 넘어 첫 해외여행을 가봤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첫 해외여행이라며 올린 사진들은 정말 가식 따위 전혀 없이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다. 그래, 해외여행 안 가본 게 뭐 대수인가?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으면 가는 거지!
서른, 첫 해외여행을 나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다녀온 후, 부모님이 별로였다고 말하더라도 실망할 것 같지는 않다. 그것 또한 직접 경험해 봄으로써 알 수 있는 것이니까. 나쁘지 않다.
한가로운 휴일 오후, 가족들과 차를 타고 드라이브 가던 중 외국 관광객 단체의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가 먼저 정적을 깨고 말했다.
“시간이 다가오니 설레네. 여행이 재미있을까?”
어머니의 말에 나는 얼른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는 안 설레?”
“설레기는 옆집에 가는데.”
나는 단체관광 온 외국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곧 일본에서의 우리 모습이겠다.”
“하하하!”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 중에도 마치 여행하듯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들 해외는 처음이다 보니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드는 듯 아버지가 말했다.
“일본 가서 끄네까리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라는 농담을 던지셨다. 그러자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손 꼭 잡고 있어야겠다.”
출국 전날, 아버지는 평소에 빨 생각도 안 하시던 운동화를 직접 빨아 말리고는 고이 현관에 놓아두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