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준적 사고
나는 늘 책의 뒤꽁무니를 쫓는다.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살기 위해 읽고 또 읽는다. 스스로 위로가 될 만한 한 줌의 문장을 모으고 모아 또 쓴다.
“성급하고 조급한 사람은 아무 일도 이룰 수 없지만, 마음이 평안하고 고요한 사람에게는 백 가지 복이 스스로 찾아온다.”라는 [채근담]의 문장에 끌려 책 한 권을 구매했다. <당신을 소모시키는 모든 것을 차단하라>이다. 원하지 않게 감정소모가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 직장인들에게 좋을 책이다.
‘이것 좀 빨리 해주세요.’ 같은 말들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손에 익지 않은 상태에서는 실수하기 마련. 조급한 마음에 실수도 잦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사실 일의 숙련이라는 건 시간문제인 것인데 스스로의 머리와 손을 탓하는 것이 가끔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괴리를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다들 처음이 있었을 텐데 질타하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상사에게 자신의 처음을 떠올려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일단 타인을 우리 마음대로 어찌할 수는 없으니 스스로의 마음을 잘 컨트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오늘은 나의 평소 생각과 맞아떨어져 도움이 되었던 책 속 문장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그전에 먼저 ‘항준적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장항준 감독이 악플에 어떻게 대처하냐는 질문에 답하며 시작되는 짧은 영상이었다. 감독은 안 좋은 건 빨리 잊는 것이 자신의 장점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가끔 악플 같은 게 떠오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혼잣말로 “ㅆ발ㅅ끼들”쌍욕을 하고 다시 잊는다는 것이다. 또 풍비박산에 견디는 필살기에 대해서는 부자도 권력자도 결국엔 외롭고 쓸쓸하게 죽는다 생각하면 너무 좋다 말하는 그의 표정은 정말 편안해 보였다. 슬픔과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에 오래 빠져 있지 않도록 빠르게 환기시키는 것도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스킬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와 조금 비슷하다. 잘 잊어먹는 것이 말이다.
직장을 다니다 보면 겪게 되는 딜레마가 있다. 바로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다. 친해지고 싶지만 적당히 거리도 유지하고 싶은 두 가지 마음이 상충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정해진 정답이 없다. 나도 늘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이 문장들을 되새김질하다 보면 지금도 이대로도 괜찮다 생각하게 된다.
1. 내면의 강함을 키우자
“내면이 강한 사람들은 남들과 어울리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 내면의 두려움과 연약함을 이겨내고 정말로 자신에게 필요한 결정을 내릴 줄 알기 때문이다.”
타인의 말에 일희일비하게 되고 흔들리고 있다면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바란다. 아마 상처 입거나 약해진 상태일 것이다. 그걸 깨닫고 나면 다시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건 결국 자기 자신 밖에 없다.
2. 가짜 어울림에 빠지고 난 뒤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짜 어울림의 함정에 빠지는 것보다는 혼자가 되기를 선택하여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고요함 속에서 자신을 채워가는 게 훨씬 유익하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해 준 것이 와닿았다. ‘무리에 어울리는 동안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했음에도 정작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후회와 슬픔뿐이었다.’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무리에 어울려 퇴근 후 밥을 먹고 늦게까지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기를 반복한 적이 있다. 서로 공감되는 공통된 주제가 있었기에 대화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막상 퇴사를 하고 나니 내겐 매일 회식하느라 쓴 돈으로 ‘텅장’이 되어버린 통장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잦은 모임으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중한 저녁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 것이다. 차라리 그 자리들을 거절하고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는 것이 나에게 더 이로웠을 것이다. 친하다는 이유로 가졌던 자리들이 조금 후회됐다. 억지로 자리를 채우지 않았더라도 동료들과의 관계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사실 그들에게도 실례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내가 처신을 잘했더라면 동료들과의 함께 보낸 시간을 후회할 일도 없었을 테니까.
3. 화를 내는 이에게는 지혜가 없다
“조급함에는 실수가 있고, 분노에는 지혜가 없다.”
직장인에게 추천하는 세 번째 문장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것이다. 책에서 중국의 유명 인사의 말을 빌려 말했다. “일류는 능력이 있되 화내지 않는 사람, 이류는 능력도 있고 화도 잘 내는 사람, 삼류는 능력도 없으면서 화만 내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자신의 감정을 잘 컨트롤할 줄 알아야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에 힘을 쏟을 수 있다. 빠르게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실수를 줄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상황이 아무리 바쁘게 돌아가더라도 차분함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실수로 발생하는 문제가 느리게 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내되 머리는 차분하게 식히자. 차분함도 갈고닦으면 무기가 된다.
책의 이런 구절들을 읽으며 떠들썩하지 않은 내 삶에 대한 위안을 얻는다. 굳이 어디에 가서 내 존재를 드러내지 않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런 가치는 스스로가 알고 있다면 안달 낼 필요 없다. 날을 드러내지 않고 말을 삼가며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다면 사회생활을 잘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은 묵묵하게 자기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구나.’로 만족한다면 유지하면 되고, 사교적인 사람이고 싶다면 그렇게 행동하면 된다. 그건 본인의 선택이다. 지금의 나는 퇴근 후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고 글을 쓰는 등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말들이 모든 상황에 들어맞기는 힘들 수도 있다. 그럴 땐 맛있어 보이는 부분만 쏙쏙 뽑아 먹자. 나는 그저 충분히 잘하고 있는 당신이 아프지 않길 바랄 뿐이다. 너무 힘들잖아? 그러면 장항준 감독처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