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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 ChoHeun Mar 31. 2023

[09] 무엇부터 하면 좋을지 막막할 때에는



나는 왜 이 일을 견딜 수 없는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라는 사람이 원래 이런 것인지 이곳에서의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 건지. 도무지 몸에 맞지 않는 직장을 10년 넘게 다니며 만 번쯤 던진 질문이다. 업무에 도통 정이 붙지 않고 조직 생활은 진저리가 나서 하루를 말 그대로 ‘연명’하며 살았다. 여럿 평균 지표 대비 연봉이 높고 복지와 안정이 잘 되어서, 부모님의 부푼 기대가 점철된 나의 업적을 차마 무너뜨릴 용기가 없어서. 30대를 고스란히 헌납했다. 그렇게 벌어 실컷 품위를 유지하고 가족의 삶을 지탱해 왔으니 유의미한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결국 돈을 제하고 남은 회사의 정체란 내겐 바이러스였다. 때로 면역체계 내밀한 곳까지 공격받는 위협을 느꼈다. 피 끓는 청춘을 지나 두 번의 출산을 겪고 나자 출근을 버티는 몸뚱이가 자꾸 아팠다. 중한 병은 아닌데 손 쓰자니 큰일 같은 잔고장이 속출했다. 신체의 결함은 감정적 무력함으로 이어졌다. 밤이 되면 녹아내릴 듯 눕고만 싶었다.   


 “어우, 늦게 자면 감기 걸리고, 감기 걸리면 내일 친구들하고 놀이터에서 놀 수 없어.”

 “쉿, 얘기 그만. 어린이들은 일찍 자는 게 제일 중요한 거야.”      


 퇴근하고 돌아와 먹이고 씻기고 챙기고 정리하다 보면 서로 냄새 맡고 살갗을 비비는 시간은 늘 뒤로 밀려났다. 잠자리에 들면 다정하고 기운 없는 말씨로 아이들 입막음을 하고 굳이 눈꺼풀까지 손수 감겨주었다. 엄마 곁에 조잘조잘 떠들고 싶은 마음은 모른 척 오늘의 지친 하루를 어서 마감하고만 싶었다. 몸은 현재에 있지만 머릿속은 늘 다음 일과와 내일의 조바심에 달려가 있었다. 당장에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의 충실함을 완전히 잊고 산 지 오래였다. 남들은 육퇴 후 드라마 정주행에 남편과 맥주도 마시곤 한다든데. 나는 일일 에너지 할당을 모조리 끌어 쓰고나서 어떤 의욕도 잔여 배터리도 없이 장렬히 전사했다.      




*

 그래도 새벽 운동을 했다. 그것도 꾸준히 했다. 원체 자기 관리라면 숨 쉬듯 해 온 것이어서 회사 다니고 아이들 키우며 따로 틈을 낼 수 없자 새벽 5시 반부터 일어나 걷고 뛰었다. 타고난 유전자에 몇 가지 이유가 비롯되어 고집스러우리만큼 건강 식단을 고수했다. 워낙 일찍 일어나니 번뇌가 넘쳐도 잠은 잘 잤다. 그 덕에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처럼 몸을 소진하며 몇 년을 살아냈다.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가동성이 어쩐지 으쓱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졌다. 웰빙하고 누려가며 성실하게 잘살고 있는데 즐겁지 않았다. 미라클 모닝은 별로 어렵지 않아서 했고 운동은 아침에 깨서 자동 반사적으로 나가는 일상적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내게 미라클은 일어나지 않았다. 긍정적 루틴의 체화 과정을 견디는 인내심보다 간혹 발생하는 한 치의 오차를 인정하는 불쾌감이 더 힘든 사람이 되어 갔다. 원래도 분류상 털털한 유형은 못 되었지만, 아내로서 엄마로서 예민 지수의 상승이란 무척 경계할만한 신호였다. 위태롭다고 느꼈지만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점차 높은 기준을 드밀었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감정이 거세졌다. 대부분 성에 차지 않았다. '혼자만 못마땅함'을 스스로 채워보려 애썼지만 가족 누구도 원치 않는 희생과 신경질이 더해졌다. 나는 왜 사랑하는 이들 속에 그런 역할을 자청한 걸까.


 “나도 아는데 지금은 이게 최선이야. 내 덕에 온갖 복잡 다양한 일과가 빈틈없이 돌아가잖아? 날마다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는지 여보는 몰라.”


 몸이 부서져도 좋으니 힘든 걸 알아주면 버틸 수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엄청난 노고와 헌신에 대해 매일 같이 토로했다. 종종 회사와 집을 오가며 심장을 쬐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숨이 가쁘고 온몸의 기운이 일순간 방전될 듯 가누기 어려울 땐 덜컥 겁도 났다. 무언가 몹시 잘못되었다는 위기감이 들 때라야 한 번씩 멈춰 섰다. 온갖 정신력을 동원하여 호흡을 조절하고 긴장을 늦추어 분위를 전환하려 했다. 쇼핑을 하고 와인을 마시고 여행을 떠났다. 내적인 독려를 지속하며 긍정을 실었다. 지극히 임시방편이지만 매번 고비의 문 앞에 경고의 센서등이 켜진 것은 불행 중 큰 다행이었다.     




*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열망은 줄곧 강렬했다. 금세 40대를 맞게 될 터인데 인생 리모델링이 시급했다. 리모델링은 기존 골조만 유지한 채 죄다 뜯어 새롭게 고쳐 쓰는 일이다. 대단한 수고로움과 막중한 비용을 들여 큰맘 먹고 그것을 하자니 꿈에 그린 새집처럼 근사하게 만들고 싶었다. 요즘은 어플로 AI가 원하는 인테리어 컨셉을 설계해 주고, 시공 후 이미지를 3d 모델로 생생하게 재현하여 미리 볼 수 있다. 하물며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변화시키는 작업도 그러한데, 그토록 달리 살고 싶은 구체적 모습이 쉽사리 그려지지 않았다. 잡히지 않는 무엇이 보일 듯 말 듯 머리와 가슴을 맴돌며 당장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희미한 형상으로 떠다닐 뿐이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일단 고대하던 휴직을 했다. 육아와 가사라는 기본값에 운동을 두세 가지 하고 그동안 못 보던 사람들을 챙기려니 회사보다 바쁜 하루가 반복되었다. 더 이상 결단을 보류할 수 없는 1년의 절반이 지나고 있었다. 분주하지만 일정 스트레스가 제거되니 심신이 제법 편안해진 것을 느꼈다.


 ‘이렇게 아이들한테 집중하고 내 몸 돌보며 사는 것도 괜찮겠어. 일은 좀 더 쉬었다가 둘째 학교 가고 혼자서도 다닐 수 있을 때 조건을 낮추어서 다시 시작하면 돼.’

 ‘그래도 대출이 많고 연봉도 아쉬운데 경제활동을 남편이 온전히 다 맡을 수 있나. 좀 안정이 되었으니 이번엔 좋은 부서 가면 혹시 다를 수도 있어.’

 ‘자격증 아까워서라도 남편하고 같이 일을 해볼까. 아이들 키우며 정신없고 힘들겠지만 비교적 자유롭고 일은 계속할 수 있으니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괜찮은 방법 같은데. 부부가 사무실에서까지 종일 괜찮으려나.’


 수차례 현실과 타협을 시도해 보지만, 일상에서 보람을 얻는 것만으로 열망을 모두 충족할 수 없는 나란 인간형은 조급해졌다. 졸업 후 지금껏 한 직종에 몸을 담고 후회와 불평만 품었을 뿐 그 어떤 성취와 몰입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 방식만 변형하여 같은 일을 지속하는 것은 돈벌이가 아니고서야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또다시 다른 길을 기웃거리며 망상에 젖은 꿈을 진창에서 퍼 올리느라 허우적댈 것이다. 희뿌연 그림들 사이로 결국 회사로 돌아가 책상에 앉은 모습만큼은 선명하고 끔찍했다.


 퇴사해 말어. 앞으로의 인생을 재미없는 일과 부대끼는 조직에 언제까지 허비하고 가슴 치며 뒤늦게 후회할는지 묻고 또 물었다. 앤더슨 에릭슨이 만 시간의 법칙을 발견하였듯, 일관되게 바보 같은 질문도 실로 만 번쯤 하고나니 비로소 답을 알 것 같았다. 좋아, 퇴사는 확정. 시기와 방법의 과제가 남았다. 멋지게 퇴사하는 날을 준비하자. 내 인생 광복과도 같은 날을 위하여.     




*

 그 무렵 육아라는 알고리즘을 타고 흘러 자기 개발 유튜브나 심리학 강연을 자주 접하고 있었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 운동을 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면 항상 도움이 될 만한 정보에 귀를 내놓고 지냈다. 비슷한 얘기를 반복해서 듣다 보니 문득 새벽 기상, 꾸준한 운동, 건강 식단, 정리 정돈, 잘 나가는 요즘 사람 성공 습관은 웬만큼 다 가졌는데 나는 왜 안 되지? 라는 의문이 들어찼다.

 가장 중요한 독서가 빠져있었다. 어려서는 책을 무척 좋아했지만 어른의 시간표에서 책이란 가장 후 순위로 분배되기 마련. 막연히 ‘이제 좀 읽어야 하는데.’ 마음 먹은지도 20년을 채울 기세였다. 그동안은 ‘생각’만 하느라 망상으로 끝나는 꿈을 움켜쥐고 살았다. 결정적인 변화는 그렇게 책에서 비롯된 것 같다. 불현듯 읽기를 결심했고 전과는 다르게 읽어 나갔다. 지극히 사소한 무엇도 생각이 들 때 즉각 행하자는 단순하고도 결연한 의지 덕분이었다. 대학에 가려고 취업을 하려고 그같이 날을 새며 공부를 하였는데 어찌 새로운 길의 출발점에서 공들여 배우지 않고 걸음을 떼려 하는가. 사람은 끝없이 배워야 한다. 지금의 인생 과목은 정해진 교과서도 참고서도 취업 바이블도 없으니 내가 읽는 책들이 공부로서의 독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밀도 있는 독서와 책 읽는 즐거움이 시작되었다. 더불어 ‘자기 탐구’라는 새로 창조한 학문에 열정이 생겨났다. 그렇다. 무엇부터 하면 좋을지 막막할 때는 일단 책을 펼치면 된다.     


 김미경 강사님을 좋아해서 유튜브를 챙겨본다. 언젠가 ‘꿈의 생일’에 대해 듣게 되었을 때 머릿속에 종이 울렸다. 꿈이 생기는 순간 삶은 완전히 달라질 거라고. 인생에 좌표를 정하고 목표와 닮아있는 하루를 살며 그렇게 꿈에 다가서는 매일의 탁월함을 모아 결국 현실 너머 꿈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가게 되리라고. 나는 그것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해본 사람만이 안다. 책을 읽고 꿈을 구체화하고 그것을 마음에 새긴 순간부터 내 하루는 정말 달라져 있었다. 해야 할 일이 생겼다. 공부하는 사람이 되자 절로 자부심이 솟았다. 이미 꿈과 닮아있는 사람이 된 듯한 자신감이 하루를 이끌었다. 매일의 해내는 경험이 쌓이고 어제보다 성장해있는 나를 만났다. 내게도 꿈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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