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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 ChoHeun Feb 27. 2023

[02] 눈물로 달릴 때 알 수 있는 것


 오랜 습관으로 새벽에 일어나 공원을 걷는다. 날씨와 컨디션, 마음의 준비까지 삼박자가 들어맞은 날엔 이따금 달리기도 한다. 보통 3km를 목표로 달리는데 200m 지점부터 내적 갈등이 생겨나기 일쑤다. 이 새벽에 아무도 시키지 않은 힘든 일을 왜 굳이 나와서 하고 있나. 삼박자고 뭐고 오늘은 정말 아닌 것만 같다. 그럴 땐 두 눈을 질끈 감고 일단 달린다. 숨이 터질 것 같아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린다. 그냥 ‘나라는 사람이 뛰고 있구나.’ 하는 관찰자적 체념 상태로 처음 1km를 버틴다. 얼마 못 가서는 그만두기도 쉽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것이 된다. 해보지 않고는 믿기 어렵겠지만 이후는 다리가 알아서 목표점으로 데려다준다. 항상 그랬다.    


 달리는 동안에는 건강한 생각이 깃든다. 깨어있는 16시간 중 고작 2, 30분을 달릴 뿐인데 그 순간만큼은 세상 무엇도 해낼 수 있을 듯한 에너지가 차오른다. 달리기란 가장 짧은 시간에 맛볼 수 있는 완전한 성취이다. 1km를 버텨서 1.3km 구간쯤 이르면, 세차게 감았던 눈이 떠지며 비로소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면을 박차는 다리가 가벼워지고 무릎이 점점 높이 올라간다. 얼굴에 닿는 청량한 공기는 가슴 깊은 곳까지 스민다. 이대로라면 몇 km도 더 뛸 수 있을 것 같은 쾌감이 퍼진다.


 그 어느 지점에서였다. 두 뺨을 가르는 바람을 맞으며 힘차게 달리는 그대로 구름을 헤치고 하늘로 날아드는환상. 마치 몸이 붕 떠오르듯. 그 하늘인지 환상 속에 열 몇 살의 나를 보았다. 열두 살, 열네 살, 열아홉 살. 붙잡을 새도 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사라졌다. 왈칵 쏟아진 눈물은 아래로 흐르지 않고 옆으로 흩어졌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다 큰 어른이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최적의 환경. 아이처럼 꺽꺽 울었다. 기억 사이 접어둔 사진처럼 잊고 지낸 시절의 나. 약속도 없이 나타난 그때의 나를 불쑥 만나버렸다. 그 어린 날에 어떤 꿈을 꾸었더라. 훗날의 상상 속에 이 같은 어른의 삶이 있었을까.


 인생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것은 대개 앞뒤 맥락도 없이 갑작스럽게 온다. 그래. 무엇이든 꿈꾸던 10대로 절대 돌아갈 순 없겠지만 난 지금도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무엇이든 시작하자. 불쑥 찾아든 생각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달릴 때 눈물은 옆으로 흐른다. 달리기 때문인지 눈물 때문인지 심장은 더 세차게 뛴다. 달릴 때 울어본 사람은 안다. 달리며 우는 마음을. 그렇게 새긴 결심을. 아무 생각할수 없이 숨쉬기조차 힘들 때, 그럴 때 다가온 생각은 진짜다. 달리며 알게 된 마음은 진짜다. 나는 그마음을 꽉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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