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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 ChoHeun Mar 07. 2023

[05] 아주 다른 삶을 동경하는 마음

괜히 공부 잘해서 엄마 같은 회사원 되지 말고



 평일 아침 8시, 지하철을 타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사는가를 피부로 체험한다. 지옥철에 몸을 구겨 넣고 출근도 전에 한껏 지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약처럼 의지하며 버티는 이 도시의 오피스 라이프.


 중학생이 되면서 공부 말고는 별로 해본 것이 없었다. 다른 세계를 알지 못했고 그럴만한 계기도 없었다. 학과에서 많이들 준비하는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 후 두 곳의 직장을 거쳐 돈을 벌었다. 매일 옷만 바꿔입는 마네킹처럼 회사에 영혼은 꼭 두고 나가기. 그런 현실인 것에 자꾸 마음이 부대꼈다. 일에는 열정이 없었고 조직 생활은 신물이 났다. 매일 간절히 퇴사를 바랐다. 비록 스스로 정한 목적지는 아니었지만 어린 날을 가득 메운 고통과 노력의 결과를 부정하는 몸부림은, 힘겨웠다.


 그 사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차도 사고 집도 샀다. K-워킹맘이 되어 빚과 허영을 양손에 들고 저울 재듯 버티며 남들처럼 살았다. 빨간 날만 바라고 눈치와 연차를 짜내서 가족과 회사 밖의 삶을 살피려 애썼다. ‘잘못’ 들어선 길치고 심신을 갈아 풀을 매고 돌부리를 걷으니 꽃길 비슷한 흉내가 난 걸지도. 어느새 이십 년 남짓 어른의 세월이 채워지고 있었다. 간간이 우울감이 찾아왔고 여기저기 돌아가며 이유 없이 아팠다. 남 보기 그럴싸한 시늉으로 덮어둔 꽃길은 소나기 한 번 퍼붓자 진창이 되곤 했다. 불안과 우울이 엄습하는 주기가 짧아지고 나와 가족의 삶을 흔드는 진동이 깊어졌다. 이대로 살아도 좋은지. 언제부터 잘못된 건지. 무엇부터 포기하고 다시 시작할텐지. 숱한 질문이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이 나이가 되어서. 시간 떼서 상념에 젖을 형편도 못 되는 나에게. 왜 이제 와서야.


 그 무렵 완전히 다른 삶을 동경하는 마음이 자주 생겨났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가 되어 파리에서 쇼를 여는 상상이랄지. 골목마다 클래식이 퍼지는 도시, 빈의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우아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일상 같은. 눈을 감고 상상하자 그곳의 원두 향이 정말로 전해졌다. 그저 피식, 여러 의미의 웃음만 나는 설레고도 헛된 꿈들. 어느 세월에 그리는 재능을 발견하고 피아노를 다시 쳐서 아티스트가 될 텐가. 책상 모니터를 멍하게 바라보며 다음 생을 기약하는 한낱 망상에 불과했다. 갈망 뒤에 본심이란 배고픔마저 동경하는 예술혼이 아닌 결국 현생의 탈출이었음을. 상상 속 유럽살이는 매번 헤프닝으로 끝났다.


*


 “난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 했으면 좋겠어. 괜히 공부 잘해서 나 같은 회사원 되지 말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무실에 앉아서 재미없잖아. 스트레스만 받지.” 이 정도면 골이 깊다. 10년이 넘는 회사 생활에 후회와 한탄뿐이 자욱하다. 대학에서 열심히 스펙 쌓고 알아주는 기업에 들어가 성취와 안정을 누리는 삶을 존중한다. 주위의 친구와 동료들 대부분 그렇고, 나와 남편 역시 각고의 노력으로 그런 것들을 이루었다. 결정적으로 그렇게 먹고산다. 각자의 인생에 정답은 없다. 다만 아주 다른 삶을 동경하는 마음을, 좀처럼 포기할 수 없는 마음을. 그 속의 답은 찾고 싶었다.


 회사원은 틀렸고 예술가는 옳다는 식의 전개가 아니다. 갖고 누리는 것을 포함한 나의 좌표가 누군가에게는 다른 관점의 선망일 수 있다. 그 x와 y가 만나있는 지점의 결과값을 풀지 못해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건 내가 만든 굴레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읽고 쓰고 묻고 가슴을 앓으며 풀어낸 것은 ‘나는 회사원을 꿈꾼 적이 없다’ 는 놀랍도록 단순한 사실이었다. 도무지 현재에 붙잡아두지 못한 마음은, 어디에도 머물 수 없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구나.


 순응적인 성정이면서 인정 욕구가 높고 대대손손 성실한 유전자를 타고났다. 당연한 수순처럼 하라는 공부를 했고 몇 번의 중요한 시험을 거쳐 뚜벅뚜벅 길이 난대로 걸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던가. 좋은 것을 원 없이 좋아해 보고, 하고 싶은 것에 온 열정을 쏟아보았던가. 그런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로 무슨 꿈을 꿀 수 있었을까. 십 년씩 몇 번쯤 흐르고 전혀 다른 세상이 열렸는데 학교 안의 배움과 공부로서 잘해야 하는 교과는 여전히 같다. 결국 교육의 구조와 사회의 통념으로부터 획일화된 기준을 강요받는 동안, 스스로 목적지와 경로를 정하고 자기 탐색을 충분히 해야 할 나이를 놓쳐 버렸다. 그렇다. 전혀 가지 않은 길이기에 예술가의 삶을 동경한 것이다. 몹시 낯설고 이질적인. 그래서 궁금해 미치겠는.


 해가 퍼지기 전 어스름 길에 산책을 나서며,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행렬을 만난다. 새벽의 찬 기운 때문인지 그냥 그렇게 굳어버린 건지 어깨와 등을 잔뜩 움츠리고 표정 없는 얼굴로 모두가 비슷한 보폭을 벌리며 간다. 문득 생각한다. 일터로 옮기는 삶 속에, 어른의 가방 속에, 바지 주머니에 장래 희망을 적은 쪽지가 하나씩 들었으면 좋겠다고. 늦었다는 망설임 대신 이미 망했다는 좌절감 대신 스스로 찾아낸 꿈들을 품고 다니면 좋겠다고. 진정으로 원하고 소중한 것들을 끝까지 지켜내기를.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행복과 성공의 기준이 내면에 단단히 뿌리 내릴 때 비로소 열정이 피어나고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이 열린다. 그것을 알기까지 거쳐야 했던 숱한 생의 장면들을 돌이켜본다. 오래도 걸렸구나. 많이 힘들었겠구나. 이제껏 눈치 보며 정해진 도리를 하느라 사회적인 나로 살아야 했다면, 지금부터의 인생은 좀 달라도 괜찮다. 진짜 나를 만나고 싶은 순간에 섰을 땐 결단을 내려야 한다.


 올해는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다시 배울 것이다. 지금의 마음이, 아주 다른 삶을 동경하는 대책 없는 이 마음이 앞으로의 빛나는 생을 어디로 데려다줄까. 다시 살고 싶지 않은 그때의 나를 만나서 파리로, 빈으로 떠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의 나에게도 그런 일이 덜컥 생길 것 같은 짜릿함을 느끼며. 그것을 소망할 수 있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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