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는 것’이 인생을 사는 방법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면, 이 책은 바로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 앤절라 더크워스 (<그릿> 저자)
<후회의 재발견>, 이 책에 쏟아진 다양한 찬사 중 가장 내 시선을 끌었던 찬사다. <그릿>을 워낙 감명 깊게 읽기도 했고, "후회하지 않는다."는 내 입버릇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여지껏 잘못 생각하고 있던 건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게 아님을 확실히 깨달았다.
저자는 서두에서 "과거는 잊고 미래를 살아라"라는 말은 '헛소리'라 표현하며 후회의 필요성에 대해 강력하게 주장한다.
저자는 "우리는 후회를 통해 발전할 수 있다. 후회는 물론 부정적인 감정은 맞지만, 이를 잘 활용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한 문장이 이 책의 내용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말장난처럼 들린다.
예를 들자면 "복수심을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복수심을 잘 활용해 당신을 성장하게 하는 발판으로 사용하세요!"라고 말하면서 제목은 '복수심의 재발견' 요런 느낌이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책이 놓치고 있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여차저차해도 책에 소개된 '4가지 핵심 후회', '후회 활용법'에 대한 인사이트 자체는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간단하게 정리해보고 저자가 '책에서 어떤 부분을 놓치고 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후회를 활용법을 말하기 앞서, 책에서 말하는 '후회'가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자.
책에서 말하는 후회는 일련의 과정으로 시간여행과 스토리텔링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머릿속에서 시간여행을 하고, 발생하지 않았던 일을 꾸며낼 수 있다.
~했더라면으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후회의 과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현실과, 평행세계(다른 행동을 했다면, 있었을지도 모르는 현실)를 비교하고, 자신의 잘못을 평가한다.
예를 들어서 비가 무진장 쏟아지는 날에 우산도 없이 집에 돌아가야 할 때 느끼는 감정은 후회가 아니다. 하지만 아침에 엄마의 "우산 가져가"라는 말을 듣고도 우산을 챙기지 않아서 드는 감정은 후회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다양한 후회 중에서도 핵심 후회 4가지를 꼽는다. 각각은 다음과 같다.
1. 기반성 후회
2. 대담성 후회
3. 도덕성 후회
4. 관계성 후회
단어 자체는 어려워 보이지만 내용은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기반성 후회는 삶의 틀을 바꾸는 후회이다. 교육을 받았더라면, 저축을 했더라면, 운동을 했더라면 등이 이에 해당한다. 과거에 놓치지 않았다면 안정된 미래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예상할 때 주로 하는 후회이다.
대담성 후회는 용기 내지 못한 후회이다. 고백을 했더라면, 그 사업을 시도해보았다면, 그 일을 도전해보았다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용기를 냈다면 내가 성장했을 것이라고 예상할 때 주로 하는 후회이다.
도덕성 후회는 말 그대로 도덕에 관한 후회이다. 내가 어렸을 때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면, 그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등이 이에 해당한다. 과거에 저질렀던 비도덕적 행동이 죄의식이 되어 남을 때 주로 하는 후회이다.
관계성 후회는 인간관계에 관한 후회이다. 엄마에게 잘해줬다면, 친구랑 사이좋게 지냈다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사람을 잃거나, 서로가 소원해졌을 때 주로 하는 후회이다.
저자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하기로 했을 때, 또는 하지 않기로 했을 때 예상되는 후회가 위의 4가지 '핵심 후회'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일단 저질러라"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뒤돌아볼 필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예상되는 후회가 '핵심 후회'에 해당한다면 '미래의 나'가 되어서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선택이 더 도움이 될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말한다.
우선 "일단 저질러라"라는 생각에 대해서는 나도 동의한다. 고민할 시간에 '일단 저지르기'는 꽤 중요하다. 우리가 선택을 해야 할 때, 어떤 선택을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이든 '선택했다는 그 자체' 그리고 '실행'이 더 중요하다.
다만 핵심 후회에 관해서는 '미래의 나'가 되어서 생각해보라는 말로는 모자라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후회를 하는 것은 미래에 어떤 선택이 옳을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정답과 오답을 확실히 구분할 줄 안다면 당연히 선택에 있어서 후회할 일이 없다.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은 우리가 후회를 할 때, 잘못된 후회를 할 확률이 높다. 사람들은 보통 놓친 선택지(선택하지 않은 선택지)를 더 매력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결과론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사업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후, 나중에 다른 사람이 사업을 통해 성공한 사실을 전해 듣고 나면 '아 나도 그때 사업했으면 지금 성공했을 텐데'와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당시 상황이나 조건은 미화되고, 내가 사업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선택만 생각나게 된다. 당연하게도 사업의 성패 여부는 확실할 수 없다.
또는 후회에 과하게 사로잡히는 경우도 있다. 나도 어렸을 때 그런 적이 있었다. 내가 5~6살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당시 내 마지막 기억은 할아버지와 골목길에서 축구를 하던 기억이었다.
열심히 축구를 마치고 쉬고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축구공에 구멍이 났다고 말씀하셨다. 어린 난, 할아버지랑 축구하다가 축구공이 터졌다고 생각해 "할아버지 미워"라고 말해버렸다. 그게 할아버지와의 마지막이었다.
그 당시 나는 내가 그렇게 말해버려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다. 혹시 집에서 축구 경기를 보다가 축구공이 터진 걸 보고, 내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그 충격으로 심장마비가 온건 아닌지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축구공은 터지지도 않았다. 할머니께서 바람 넣는 구멍을 보고 착각하신 것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죄책감은 커지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내 탓 같았다.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되어서까지도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곤 했다.
물론 지금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와 같이 후회에 과하게 사로잡힌 사람은 굉장히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막상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면 올바른 판단을 하기가 힘들다.
이런 사람들에게 "앞으로는 당신이 후회하지 않도록,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소중한 사람들에게 말을 소중히 하세요."와 같은 조언이 필요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조언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도움이 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과거의 일을 계기로 더 발전된 삶을 살면 좋은 것은 맞으니까.
하지만 나는 반드시 후회를 통해 너무 아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곱씹었을 때 너무 아픈 기억이라면, 잠시 잊고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우선이다. 아파서 일어서지조차 못하면, 어떤 조언이든 소용이 없다. 이게 바로 저자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후회의 목적은 우리의 기분을 더 나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의 기분을 나쁘게 만듦으로써 내일은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 후회의 재발견
아픈 과거는 상처다. 흉이 지면, 흉터를 보면서 당시의 아픔을 기억하고 다시 흉이 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만 이미 흉 진 곳을 다시 상처를 내가면서 돌이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아직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다면, 우선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상처를 아물게 하는 방법과 관련해서 읽었던 책 중 기억에 남는 책은 <과거가 남긴 우울, 미래가 보낸 불안>이라는 책이다. 내 의견은 후회의 발견 저자보다 해당 저자와 가깝다.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괴로운 이유는 바로 우리가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사실만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알기 어렵지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 돼’라는 신념은 무척 가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가치 있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나는 절대 피해를 당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이 역시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합니다. 누구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지요.
-과거가 남긴 우울, 미래가 보낸 불안
우리는 사람이기에 때로는 남에게 피해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후회를 한다.
물론 후회 자체는 정답도 아니고, 오답이 아니다. 후회를 올바르게 활용해 발전할 수 있다면 비로소 모범 답안이 된다. 하지만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후회,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매몰되는 것은 명백한 오답이다.
후회가 나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후회는 칼과 같다. 다루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흉기가 될 수도 있지만, 요리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아직 본인이 후회를 다루는데 미숙하다면, 잠시 내려놓는 것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