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의 휴직 끝에 복직한 지 1년이 지났다.
근무년수는 6년 차니깐 작년에 승진한 후배들과 실 근무년수는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나도 올해는 승진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나 보다. 점심때 팀장의 한마디를 듣기 전까지는.
"우리 팀에선 A과장이랑 B 차장이 승진대상 자니깐,..."
'A? 나보다 9년 후배? 그럼 나는?'
팀장의 머릿속엔 내가 승진 일 순위라 착각했다. 입사한 지 15년이 넘었고 입사동기들은 이제 팀장급 승진을 앞둔 내가 눈에 밟힐 거라 생각했다. 그건 순전히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왜? 나는 아니야? 진짜 아닌 거야?
이 몹쓸 허전함은 뭐지? 짝사랑하던 상대방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비슷한 이 더러운 기분은 뭐지?
처음엔 상황을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하다가,
그래, 나도 나를 승진대상자로 밀어주면 아직 때가 아니라고 거부하려고 했었어 라며 무시하다가,
나도 우리 아빠처럼 평생 과장대우로 살다가 과장으로 말년에 승진한 번 하고 정년퇴직하겠다며 내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꼴좋다. 말년 과장으로 정년퇴직한 아빠를 속으로 비웃었다. 회사에서 승진한 번 제대로 못한 우리 아빠. 입사동기는 부사장까지 올라갔는데, 퇴직하기 직전에 단 한 번 승진했던 아빠.
나는 사회생활하면 아빠같이 승진 못하진 말아야지 다짐했다. 입사하면서 새벽에 제일 먼저 출근해서 사무실 정리하고 직원들 책상까지 닦아가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건 내 능력을 쌓는 것과 무관했다. 그 시간에 엑셀이나 자격증 시험공부, 어학공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은 그때의 내 모습이 부끄럽지만 그땐 그게 최선을 다하는 신입의 자세라 생각했다. 같인 부서에 배치되었던 입사동기보다 뛰어나고 싶어서 더 열심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입사동기는 늦게 출산해서 1년의 휴직만 하고 바로 복직했고 능력을 인정받아 해외 유학 대상자에 선정되었다)
결국 누가 앞서가는지, 지금은 알 수 없는 거 아닌가. 먼저 출발했더라도 그 끝은 임금피크를 거쳐 퇴직자가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승진대상자에서 누락되었다고 슬퍼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아빠랑은 다른 삶을 살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나 또한 아빠와 똑같은 무능한 직장인임을 깨닫게 되자, 아빠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아빠는 IMF때 권고사직을 받고도 아이 셋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버텼다고 하셨다. 그런 아빠가 회사에서 잘 나가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했다니, 아빠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내 앞에서 노래 부르면서 춤추는 막내를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난다. 회사일 좀 못하면 어때. 이렇게 이쁜 아이를 키웠는데.
이쁜 내 새끼가 라면 먹고 싶단다. 맛있게 끓여줘야겠다. 회사 따윈 잊어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