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과장이 민원인과 전화를 오래 하기 때문이지
오늘따라 팀장이 기분이 좋아 보인다. 콧노래를 흥얼거리기에, 귀에 거슬려 왼손으로 귀를 살짝 막았다. 승진대상자에서 나를 누락시킨 후, 나는 팀장의 모든 행동이 싫어졌다. 쪼잔하게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나? 싶은 생각이 불쑥 들 때도 있지만, 난 원래 배배 꼬인 사람이다.
"잡초 과장님, 이마트에서 파는 크레페 케이크 먹어봤어요?"
"잡초 과장님, 여기 물건 좋아 보이는데, 관심 없어요?"
"잡초 과장님, 커피에 아이스크림 넣고 아포가토 만들어 먹지 그래요?"
어제 휴가를 써, 처리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는데 팀장이 자꾸 말을 건다. 나 바빠요,라고 직접적으로 말을 하자,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는다. 싹수없어 보이더라도 어쩔 수 없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퇴근시간을 30분 넘겼나.
"잡초과장 애 데리러 가야 하지 않아요? 어서 들어가세요"
차장님께서 나의 안위를 걱정하는 투로 말을 거셨다.
"오늘 버스 타고 와서 어서 가야 하는데, 일이 끝이 없네요. 이것만 해두고 가려고 했는데 pc가 꺼졌어요. 하하하. 왜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걸까요?"
그때 불쑥 끼어든 팀장의 한 마디.
"그건 잡초과장님이 민원인이랑 전화를 너무 오래 붙들고 있기 때문이에요. 너무 친절하게 받아 주니깐 오래 전화하게 되고 일할 시간이 없어지지요."
팀장은 내가 한심해 보였나 보다. 일머리가 없고 행동이 느리고 판단력이 떨어지는 데다, 민원인에게 쓸데없이 친절하기까지 한, 입사 15년 된 노땅 신입.
집에 오는 내내 곱씹어 보았다. 팀장은 나의 모든 게 싫은 건가? 내가 민원인에게 친절하게 한다고 회사에 피해가 오는 게 있나? 민원인들과 싸우기보다는 상냥하게 응대하면 좋아해야 하는 게 아닌가?
장강명의 <미세 좌절의 시대>에 백종원이 골목 상인들에게 성공 요리비법을 전수해 주는 데 대한 감상이 나온다. 작가에게도 누군가 지적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작가의 부인이 직장에서 일이 너무 많아 작가가 조언해 줬더니 일이 줄어들어 고마워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문득, 팀장이 백 선생과 장강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은 나를 싫어해서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정말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내 업무를 10여년간 해 온 전문가가 조언하는데, 아니꼽게 생각할 게 아니라, 내 행동을 수정해야 한다. 조언을 비난이라 받아들이지 말고 값비싼 보석이라 생각하자. 팀장은 내 업무의 잘못된 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셨던 거다.
앞으로는 민원인과의 대화를 짧고 굵게 끝내고 일에 집중하도록 하자. 그게 민원인들이 원하는 것이다. 일처리를 빨리 해야 더 이상의 민원도 줄어들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