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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강가 Oct 13. 2024

47. 비밀의 화원

#2 봄, 피어나는 우리의 마음


퇴근하자마자 그를 만나 진주로 향했다. 그의 지인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가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같이 사진 작업을 하는 사이로, 서로 품앗이를 해주는 거란다. 나는 그가 일을 마칠 때까지 근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물론 나도 몇 번 만나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고작 인사만 나눈 것이 전부라 사진 찍는 그를 졸졸 따라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식장에 있자니 어쩐지 영 어색하고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그가 신경 쓰지 않을 리도 없다. 사실 내가 그와 함께 온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결혼식이 끝난 후에 있을 벚꽃 여행이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근처 카페에서 딸기라떼를 주문해 밖으로 나왔다. 남강 주변으로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내 휴대폰 음악 어플 재생 목록에는 봄과 관련된 노래들이 담겨 있었고, 재생 버튼을 누르자 이어폰을 통해 빌리어코스티의 <봄날에 눈이 부신>이 흘러나온다. 손에 들고 있던 음료를 빨대로 빨아들이자 생딸기의 상큼하고도 달큼한 향이 우유와 섞이며 입안 가득 부드럽게 퍼진다. 그렇게 진주성까지 걸었을 때 그에게서 연락이 왔고, 우리는 다시 만나 진주성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진주냉면을 먹었다. 이제 벚꽃 여행이 시작된다.





진주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리면 거제에 도착한다. 어제 내린 비 덕분에 세상의 먼지가 다 씻겨 내려간 봄날은 청정하다 못해 눈부시다. 마치 우리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하루 사이에 더 풍성해진 벚꽃들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온 세상이 딸기라떼 같은 부드러운 톤의 연한 분홍빛 벚꽃으로 물들고 있다. 우리가 찾아간 서항마을에도 벚꽃이 만발하여 화려하게 수를 놓고 있었다. 그곳엔 '비밀의 화원'이라 불리는 장소가 숨겨져 있는데, 우리는 감춰진 입구를 찾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어제 내린 비가 채 마르지 않아 질척대는 땅을 밟으며 야산을 오르니, 물기를 가득 머금은 초록빛 대나무숲이 나왔다. 그 길을 통과하자 실로 놀라운 광경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었다. 콜린은 화원을 보고 믿을 수 없었어요.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아서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하는지조차 몰랐지요(프렌시스 호즈슨 버넷/비밀의 화원). 넓지 않은 오솔길 사이로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커다랗고 굵은 벚나무들로부터 뻗어 나온 가지가 서로 맞닿으며 벚꽃으로 둘러싸인 터널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있어 다소 거친 부분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생기 가득한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비밀의 화원은 사실 임시로 무료 개방된 사유지다. 이렇게 멋진 화원을 가진 주인장은 마음씨마저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 같다. 그 배려에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는 풍경을 감상하고 몇 장의 사진을 남겨본다. 이 아름다운 곳이 훼손되지 않지 않기를 바라며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하천 주변으로 가로수처럼 늘어선 벚꽃나무를 따라 걸으면 바다와 마주하게 된다. 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스러운 작은 마을이다. 국내여행은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운 곳을 하나하나 찾아내는 즐거움이 있기에 멈출 수 없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눈으로 좇는다. 이 또한 여행의 묘미다. 동백꽃이 피어있는 아기자기한 버스 정류장을 발견하고는 그냥 지나치질 못해 주차할 곳을 찾는다. 동백꽃이 탐스럽게 열려있는 버스 정류장의 운치가 물씬 풍겨온다. 벚꽃을 기대하고 온 여행지에서 동백꽃까지 만나자 한껏 들뜬 우리는 그 거리를 유유히 걸어본다. 자세히 보니 붉은 애기동백나무다.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니 붉은 애기동백꽃잎이 떨어져 있다. 꽃송이째 떨어지는 동백과 달리 애기동백꽃은 꽃잎이 낱개로 분리되어 날리듯 떨어진다. 땅에 피어나는 그 정취는 확실히 꽃송이째 떨어지는 동백이 훨씬 더 좋다.  





세상에! 오늘은 수지맞은 날이 분명하다. 또다시 차를 타고 가다가 이번에는 유채꽃밭을 만난 것이다. 이렇게 세 가지 꽃을 한꺼번에 만난 경우는 이제껏 여행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내가 서 있는 공간이 순식간에 바뀐 것만 같다. 분명 이곳은 거제도인데 제주도에 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드는 것이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피어난 노란 유채꽃은 활력이 넘친다. 그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받아 경쾌하게 뛰어노는 나를 향해 그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거제가 품은 아름다운 화원들은 모두 우리에게 즐거운 낙원과도 같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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