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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어본 적 없는 계절

그 위를 묵묵히 걸어가는 나에게

by 김마음


온 듯 만 듯 했던 가을이 지나가 버리고, 어느새 시린 겨울이 왔다. 하루하루 달라져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새를 보며 시간의 흐름을 체감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속도에 맞춰 따라가고 있는가 생각하며, 아무도 모르게 매일 옷장 앞에서 눈치싸움 중이다.


다음 주면 복직한 지 만 3개월이 된다. 시간이 어쩜 이리 빠르게 흘렀을까. 새로운 계절로 발걸음을 옮긴다 말할 때가 정말로 엊그제 같은데. 그동안 나는 뭐가 달라졌을까.


한동안 나는 조금 많이 괴로웠다. 극심한 현기증을 달고 살았다. 눈앞의 사람과 사물이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며 멋대로 움직여 보였다. 걸을 때에도 물렁한 바닥을 밟는 것처럼 균형 잡기가 어려웠다. 어느 순간 귀에서 모든 소리가 아득히 사라지기도 했다. 이런 비현실감은 급격히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내가 만들어 낸 방어 기제였다. 해리 증상이라고도 한다. 스트레스로 인한 이런저런 신체화를 경험하며 내가 아직 정말 나약한 인간이구나를 또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조금 더 세심한 케어가 필요한 나에게는 주치의 선생님과 상담 선생님의 도움이 절실했다. 매주 두 번씩 병원에 가고 한 번씩 상담실에 가며, 한껏 긴장되어 있는 마음을 조금씩 풀고 다져주는 시간을 가졌다. 그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의 새로운 계절은 몇 발짝 굴러가지도 못하고 사라졌을 것이다.


업무적으로는 또 어땠을까. 그동안의 내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고,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도 다 잊어버린 것 같았다. 알고 있었던 것, 원래 몰랐던 것, 새로 생긴 것이 모두 한데 섞여 나에게 무거운 돌덩이로 다가왔다. 바쁘게 제 몫을 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며 빨리 따라잡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내 몫을 다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또 발을 동동 굴렀다. 언제나 그랬듯 조급한 마음이 앞섰다. 그럴 필요 없다고 스스로 아무리 다짐해 봐도 소용없었다.


역시 내가 민폐이지 않나,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끝도 없는 민폐감이 나를 또 작아지게 했지만, 버텼다. 버텨내고자 노력했다. 때때로 불안약을 먹으며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렇게라도 진정하지 않으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 같아서, 또다시 뛰쳐나가지 않기 위한 나만의 안전장치였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며 아주 조금은 땅에 발을 붙인 것 같은 기분이다. 붕 떠 있던 처음의 나와는 달리 현실에 살짝 맞닿아 있달까.


나의 근황을 궁금해한 이들이 있다면 나에게 조금의 응원을 보내주기를 소소히 바라본다. '잘 지내지 않아도 괜찮아! 존재만 하도록 해!' 나를 좀 더 이 땅 위에 붙어있도록 잡아주면 좋겠다. 렇게 나의 존재를 빌어주는 이들에게 내 작은 마음의 사랑을 모두 끄집어내어 나누어주고 싶다.


나는 겪어본 적 없는 낯선 계절을 아슬아슬 걷고 있는 중이다. 누구보다 떨리지만 묵묵히,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보잘것없는 나의 하루를 지켜봐 주시길. 나약한 나의 한 걸음에 힘을 실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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