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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근력

다정한 이들에게 전하는 감사

by 김마음


나는 환자와 정상인의 범주,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누가 나에게 '너는 아직 환자니까'라고 말을 해도 화가 나고, '너는 이제 괜찮으니까'라고 말을 해도 서운하다. 둘 중 어느 말도 나에게 들어맞지 않는다. 나는 아주 애매한 위치에서 미묘하게 괜찮아지는 중이다.


마음의 근력이 늘었다는 생각을 한다. 압도당할 것만 같았던 상황들에서 버티는 힘이 생겼다. 쫄지언정 쓰러지지 않는다. 앞을 노려보며 꿋꿋이 다시 일어나는 연습을 한다. 용기가 샘물처럼 잘금잘금 솟아나는 중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이런 생각이 천성적으로 안 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 일상에 하나의 모토처럼 자리 잡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될 대로 돼라, 어차피 잘리진 않아. '어차피 그래도 살아져.'


시각도 달라졌다. 걱정만큼 나에게 위협적이지 않고, 냉정하지 않고, 종종 따뜻하기까지 한 세상을 비로소 경험하고 있다. 현실을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하시던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나는 현실에 나만의 필터를 씌워 세상을 디스토피아로 만들고 있었는데, 이제야 그 필터가 걷히고 맑은 진짜 세상이 눈에 들어온다.


내게 다정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다. 타인에게 이유 없이 다정을 베푸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운이 좋게도 나는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많은 온기를 나누어 받고 있다. 내가 조금이라도 추울까 걱정하며 챙겨주는 이들이 있어, 덕분에 정말 따숩고 풍요로운 연말을 보낸다.


두 달쯤 후면 입원했던 시기가 돌아온다. 그때 나는 삶의 끝에서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흘러 다시 그 계절이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때가 그립다. 그때의 온도, 그곳에서의 시간이 내게 너무나 따뜻했고, 안전했고, 행복했다. 인생에 다시없을 평안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갔던 길을 다시 걷지는 않을 것이다. 포근했던 추억으로 남겨두고 앞으로 나아가야지.


요즘 운동을 자주 하고 있다. 흐물흐물 힘아리 없던 몸뚱이에 근육이 붙으면서, 힘도 세지고 체력이 많이 늘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지쳐 포기하기 바빴던 내가 쉽게 지치지 않는다. 기분도 예전처럼 깊이 침잠하지 않는다. 역시 운동의 효과인가. 달라지는 몸과 마음이 썩 만족스럽다. 더 열심에 열심을 다하고 싶어진다. (이러고 내일 운동 또 안 가겠지.. 죄송)


그냥 끄적이다 잘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긍정적인 요즘의 근황을 또 한 묶음 풀어 보았다. 이렇게 계획 없이 쓰게 된 글에도 꽤나 희망이 짙게 묻어있는 것 같아서 새삼 나의 회복이 실감 난다.


내게 사랑을 주는 주변인들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며 11월을 마무리해본다. 모두 감기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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