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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정 Oct 28. 2022

엄마 남자 친구의 보호자

엄마는 내게 그러기도 한다.

 처음 아저씨를 마주한 날을 여전히 기억한다. 엄마는 내게 만나보겠냐고 했고,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몇 주 전 아빠와 함께 밥을 먹었던 집 앞 단골 식당에서 아저씨를 만났다. 초면이 아니었다. 아…,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지만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에 숨이 잘 쉬어지질 않았다. 결국 식당 화장실로 가 문을 잠그고 앉았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나를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 편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었구나 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기를 바랐을까? 나는 도대체 무슨 각오로 만나겠다고 한 걸까? 가슴을 부여잡고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내 의도와 관계없이 눈물이 줄줄 흘러 허벅지에 뚝뚝 떨어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나는 울기만 했다. 왜 그래, 왜 그래, 하는 말만 들려왔다. 그리고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의 엄마를 마주했다. 엄마는 정말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내 팔을 잡고 물었다. 


 "왜 그러는 건데? 응? 왜 우는 건데…"

 "엄마는 나한테 왜 그래? 엄마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어떤 마음으로 엄마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이해한다고, 엄마가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던 내가, 정말 내 바람대로 좋은 사람을 만나고, 나에게 소개도 시켜주고 싶어 하던 엄마를 한 톨도 이해하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시킨 음식을 한 입도 먹지 못하고 당황한 얼굴로 앉아있는 아저씨께 ‘죄송해요.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하고 돌아 나왔다. 그 길로 친구의 집으로 가 급히 뛰어내려온 친구 앞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엄마가 만나는 아저씨가…’ 친구는 가만히 내 등을 두드려주었다. 나는 자꾸만 아빠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가 아저씨랑 함께 살게 되고 내가 어쩔 수 없는 독립을 하게 된 후로 나는 엄마와 거리를 두기 위해 늘 노력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아야 엄마를 타인의 자리에 두고 이해하는 일이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 자랐음에도 갑작스러운 독립은 버려졌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런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부지런히 도망치며 살았다. 사실 엄마를 탓할 수도 없었던 것이 엄마도 쉽지 않은 상황임에는 분명했다. 나는 엄마의 이혼을 보며, 정말로 이혼을 결심하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는데, 엄마는 이 가정을 벗어나며 십 원 한 장도 아빠에게 받지 않았다. 독립을 하려면 혼자 지낼 공간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다 돈인데도 엄마는 아빠를 대면하고 조율하는 것조차 하지 않겠다며 위자료도 싫다고 했다. 이혼을 거부하던 아빠와 어떻게든 이혼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엄마는 아빠를 엄마 인생에서 도려내기 위해 엄마가 가진 모든 것들을 포기했다. 애초에 엄마 이름으로 된 재산은 한 톨도 없기도 했지만, 그래도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그렇게 몸만 빠져나가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나를 평생 힘들게 했던 이 결혼에서 벗어나는 일’에만 몰두했다. 이혼을 하던 엄마가 요구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엄마에게는 십원 한 장 주지 않아도 좋으니 자식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때 까지는 내가 그간 당신이랑 살아온 값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서포트해줄 것. (물론 아빠는 내가 엄마와 연락을 한단 이유로 모든 지원을 끊어버렸다.) 당장 혼자서 생활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만나던 아저씨랑 살림을 합치게 된 것일 테고 굳이 그건 엄마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만한 일이었다.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 그리고 또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 별개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나는 엄마를 조금 더 먼 자리에 두고 타인의 이야기처럼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내 존(zone) 안 까지 들어오지 않으면 그럭저럭 지낼만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돈을 버는 일이 너무 버거운 어떤 날에는 나를 나 몰라라 하던 엄마 아빠가 모두 참을 수 없이 미워지는 것이다. 아빠는 내가 엄마와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경제적 지원을 끊었고, 엄마는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여유가 없었다. 나름 각자의 이유가 있었으나 오갈 데 없는 화나 원망은 마음 안에 가장 먼 곳에 있는 부모님에게 향했다. 그렇게 동글동글, 속에서 굴러다니는 화를 거리 둠으로 눌러두고 있던 때, 엄마가 집에 찾아왔다. 그날도 일로 지쳐 불도 못 켜고 앉아있는 내게 엄마는 말이 있다고 했다. 부엌 불만 켜 놓아 그림자 진 엄마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부탁할 게 있는데…"

 "뭔데?"

 "아저씨가 암이야. 항암 치료를 받고 있거든… 근데 엄마가 일을 하러 나가잖아. 그래서 낮에 아저씨가 병원 갈 때 같이 갈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어떡하라고?"

 "그래서 네가 병원에 같이 좀 가줬으면 해서… 항암 때문에 기운이 없어서 운전하는 게 힘들거든…."

 "그 아저씨가 암에 걸린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 아저씨가 내 아빠야 뭐야. 내가 왜 그 아저씨 병원까지 데려다주고 치다꺼리를 해야 하는데? 엄마는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나한테 이런 걸 부탁을 할 생각을 하지?"

 "아저씨 아픈 것 때문에 아저씨 누나도 지금 여기 와 있는데 너를 만나보고 싶어하…"

 "엄마, 지금 뭐 착각하는 거 아니야? 그 아저씨 누나는 또 나랑 무슨 상관인데. 엄마가 만나는 사람이 내 가족이야? 엄마 가족이나 해.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인데 내가 왜 병원을 데려가고, 그 사람들을 만나는데? 나는 있잖아. 아저씨가 죽는다고 해도 아무 감정이 없는 사람이야. 나랑 아무 상관이 없다고."


 뾰족한 마음이 하나도 걸러지지 않고 엄마에게 가서 꽂힌다. 엄마는 죄인처럼 내 앞에 앉아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말했다. 아저씨가, 아파서, 네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아저씨가, 아파서, 네가… 똑같은 말들. 완강하게 거부하는 내 앞에서 엄마는 더 말을 하지 못하고, 아저씨의 누나가 나를 위해 사 왔다는 그 지역 특산물을 내 앞에 내려두고는 돌아갔다. 나는 엄마가 나가자마자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진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 자기 인생 살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이해한다고 했더니, 이런 것까지 나한테 이해하라니 진짜 평생을 아들이랑 차별해서 키워, 아빠한테서 돌아온 내가 갈 곳이 없어 길바닥에 있을 때 하룻밤 재워주지도 않고 나 몰라라 해놓고 어쩜 저런 부탁은 뻔뻔하게 하는지, 진짜 나는 내 부모한테 그냥 소모품이야. 자기들 쓰고 싶은 대로 쓰고 필요 없으면 갖다 버리는 사람들. 나쁜 사람들, 지독한 사람들.


 아빠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아빠는 나를 가혹하게 다루던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빠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야 엄마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이혼을 했다지만 아빠는 그렇지 않았으므로 갑자기 아빠의 세계가 무너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늘 있었다. 출처를 모를 죄책감이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아저씨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감정이다. 엄마는 내게 아저씨를 도와달라고 말한다. 분명 아저씨를 돕는 일은 엄마를 돕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는 내 아빠가 아니다. 내가 말하지 않는 다면 아빠는 평생 이 일을 알 수 없겠지만, 엄마를 위해 그 일을 하는 게 아빠가 알든 모르든 관계없이 아빠 배신하는 일은 아닐까? 하지만 엄마는 이제야 좀 행복해지려고 하는데… 끊임없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독한 말을 쏟아내던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던 엄마, 엄마 마음도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도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늘 엄마 편이라고 외치는 내가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을 것이다. 나를 움직인 것은 엄마의 말보다 엄마의 존재 그 자체였다. 긴 세월 억압된 삶을 살았는데, 이제야 좀 행복해져보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같이 사는 사람이 암이라니 엄마 인생도 참 기구하다, 기구해. 


 "언젠데."

 "응?"

 "언제냐고 항암."

 "같이 가줄 거야? 정말? 너무 고마워 딸."


 엄마는 깃털 같은 목소리로 내게 고맙다고 했다. 나는 또 한 번 아빠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빠 미안, 근데 나는 엄마가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엄마한테는 나 밖에는 없는데 내가 해야지. 아빠 미안. 


 나는 그렇게 엄마 남자 친구의 보호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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