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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정 Oct 26. 2022

관계, 사이드미러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나는 잘 지내고 있어. 근데 엄마랑 아직 이야기할 준비가 안됐으니까 혼자 좀 있을게.」


 이주 동안 엄마와 통화를 하지 않았다. 통화 중에 작은 다툼이 있었고, 보통 때 같으면 금세 엄마에게 사과를 했을 테지만 어쩐지 그날은 그런 마음보다 지긋지긋한 마음을 먼저 만났다. 더는 말을 섞고 싶지도 않다고 투덜대는 내게 연인은 네 마음이 그러면 풀릴 때까지 잠잠히 있으라고 하면서 그래도 영원히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것은 아니니 너무 길게 끌고 가지는 말라고 했다. 직장문제였다. 고민의 시간이 지나고 결정까지 마친 후에 결과를 이야기해달라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백 퍼센트 만족하는 결정은 아니었지만 회사 상황과 내 상황까지 모두 고려해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더 나은 선택지가 있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이미 결정된 일이니 그저 듣고 말았어야 했을 엄마의 말에 나는 화를 냈고, 엄마는 질린다는 듯 네 앞에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고 말하며 끊자고 했다. 꾹. 버튼이 눌렸다. 나는 화가 나서 전화를 끊었고 그 후로 이주가 지났다. 


 한 주가 흐르고 토요일 아침,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잠잠해졌다고 생각한 못된 마음이 다시 일렁이는 것을 느끼며 전화를 받아선 안 되겠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예 잠적을 해버리면 엄마가 불안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짤막하게 보낸 메시지였다. 엄마는 네가 잘 지내고 있다면 그걸로 됐다고 답을 해왔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운전을 할 때, 사이드미러에 적힌 문구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을 보며 늘 나는 그것이 엄마와 나의 관계 같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우리 사이의 거리를 의식하지 않고 있다 보면 상처를 낼 일이 꽤 잦은 빈도로 생긴다. 서로에게 상처를 낼 의도는 아니었겠으나, 어쩔 수 없이 부딪치게 되는 지점, 그것을 엄마도 나도 알고 있지만 어떤 때는 상대가 내게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대학을 갓 입학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기숙사에서 살았다. 고등학교에서 같은 학교로 간 친구는 거의 없어 완전히 낯선 환경 속에 내던져졌는데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을 어려워하는 편은 아니라 크게 무리 없이 지냈음에도 엄마와 떨어져 지내게 된 것은 내게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나는 매일 저녁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까지 헤맸나 싶은 것이, 학교는 집에서 차를 타고 40분 거리에 있었다. 매 주말 엄마가 학교로 와 엄마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이별이 마치 영원한 이별인 것 마냥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날도 엄마가 집에서 한 반찬을 잔뜩 챙겨 나를 만나러 기숙사로 왔다. 나는 기숙사 앞 잔디밭에 앉아 엄마랑 밥을 먹었고, 신나게 엄마와 이야기를 나눴다. 해질 무렵이 되어 엄마가 떠나고 나는 또 방에 들어와 울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이별이 힘든 일인지 스스로도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매번 혼자 남겨지는 그 기분은 내가 도저히 감당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룸메이트가 잠든 늦은 밤, 나는 기숙사 휴게실에 가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김없이 우는 내게 엄마는 잔뜩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정아,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거야. 너도 이제는 혼자 사는 연습도 해야 하고, 늘 엄마가 옆에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알아야 해. 너 혼자서 잘 지내고 있잖아. 룸메이트도 있고, 너한테는 자유도 있잖아. 너무 혼자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혼자서 지내는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해 봐. 엄마도 너랑 떨어져 있는 게 쉽지 않지만 이렇게 엄마도, 너도 각자의 삶을 사는 연습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자."


 시간이 더 많이 흐르고 내가 혼자서 정말로 잘 지낼 수가 있던 때에 엄마가 말했다. 그때는 엄마에게도 다 큰 딸을 떼어놓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한 몸 같던 나와 떨어지는 일이, 성인이 된 딸이 당연하게 집을 떠나는 일이 너무 힘들고 마음 팠다고 했다. 전쟁 같은 집에서 엄마와 나는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상대였다. 나는 내가 엄마인지, 엄마가 나인지도 잘 모르는 채로 상처의 바다를 헤엄쳤다.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엄마에게서 분리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나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엄마와 탯줄로 긴밀하게 연결된, 엄마의 일부구나 하는 마음으로만 지냈었다. 그런 내게 대학 입학과 동시에 갑작스레 찾아온 분리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어린날의 숱한 방황은 그걸 지켜봐 주는 엄마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 힘든 마음은 첫 학기가 끝나기 전에 괜찮아졌다. 사실 기숙사 생활은 일 년만 했고, 집에서 통학을 하게 되어 그렇게 울고 불고 하던 때가 머쓱해지는 순간이 왔지만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내게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온 첫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혼자 사는 일이 무척이나 익숙한 어른이 되었다. 직장도 있고, 내 집도 있고, 내 가족이라고 부르는 반려견도 있다. 오히려 누군가 내 공간에 들어오는 일이 낯선 일이라, 엄마가 내 집에서 오래 머무는 때에는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엄마에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딸네 집에 와서 뭐든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 방식대로 정리해 둔 방, 내 방식대로 정리해 둔 부엌, 내 방식대로 개는 빨래. 엄마는 내 집에 왔을 때만큼은 엄마 마음대로 하는 법이 없다. 설거지를 해줄 때도 그릇은 어디에 어떻게 두면 좋을지, 빨래 개는 걸 도와줄 때도 수건은 어떻게 개는지, 속옷은 어떻게 개어야 하는지 묻고 내가 평소에 하던 방식을 벗어나지 않게 돕는다. 엄마는 늘 성인으로서의 나를 존중한다. 과하게 간섭하지도, 엄마라는 이름을 내세워 무엇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내 생활방식 및 가치관을 인정하고 억지로 바꾸려 들지 않고, 내가 엄마를 위해 하는 그 무엇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엄마의 여자로서의 삶을 존중하고 응원한다. 엄마와 나 사이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오히려 감사할 일이 가득하다. 남들에겐 정 없어 보인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지만 나는 이 관계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익숙해진 지금의 방식은 가끔 엄마가 내 영역에 침범해 왔다고 생각될 때 크게 불편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늘 먼저 손을 내미는 엄마를 보며 ‘나는 정말 엄마 마음의 발끝만큼도 못 따라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엄마와 잠깐 떨어져 기숙사에 지내는 것만으로도 눈물 바람이던 나는 그때처럼 당장의 내 감정밖에 모르는 어른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에서 오는 것은 아닌지. 


 엄마는 묵묵히 그 자리에 있는다. 나는 내가 성인이 된 때부터 엄마와 서로 거리를 벌려가며 지내고 있다고 여겼지만, 어쩌면 엄마는 그 자리에 계속해서 있고, 멀리 가기도, 가까이 가기도 한 것은 나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내게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다. 그런데 어떤 날은 보이는 것보다 멀기도 하다. 그저 내 마음이 어느 날은 멋대로 엄마에게 성큼 엄마의 영역을 침범하기도 하면서, 내 삶이라며 제멋대로 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멋대로 더는 엄마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딸에게 네가 잘 지내고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고 말하는 엄마의 마음을 생각해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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