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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정 Oct 19. 2022

어떤 기억

과거는 힘이 없다.


 "다정아, 너는 아빠랑 같이 살아야 해. 엄마는 능력이 없잖아… 엄마를 따라가면 네가 좋아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못 만나고 시골에 가서 살아야 해서… 엄마랑 같이 가면 안 돼."


 엄마는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았다. 아빠는 엄마에게 과도한 집착을 했는데, 의심이 병일 수준이라 엄마에게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아빠는 늘 최소한의 생활비만을 엄마에게 주었는데, 실제로 엄마는 이혼을 할 때 까지도 아빠의 연봉이 얼마였는지, 가지고 있는 재산이 얼만지 알지 못했다. 학교 가는 길, 아빠와 함께 집을 나설 때면 아빠가 지갑에서 꺼내어주던 내 용돈이 엄마가 유용할 수 있는 돈보다 많았었다. 그런 엄마가 어느 날 동네 아주머니에게서 부업이라며 일감을 얻어왔다. 파란색 네모난 기계였는데, 거기에 부품을 끼우고 철사 같은걸 고정한 뒤에 버튼을 누르면 그게 감기면서 부품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아주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히 어디에 쓰는 부품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개당 계산을 해서 돈을 받는 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빠는 그 기계를 망치로 다 부숴버렸다. 


 엄마에게 돈을 버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 돈을 벌어서 무슨 짓을 하려고 하냐는 이유였다. 엄마는 아빠가 화를 내기 시작하면 늘 나와 동생에게 방으로 들어가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날도 나는 방문을 닫고 문에 붙어 아빠가 엄마를 때리지는 않는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거실에서 아빠가 소리 지르고 깨부수는 소리가 계속해서 났다. 엄마는 이렇게는 못살겠으니 집을 나갈 거라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벌컥 방문이 열리며 엄마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문을 닫는 엄마에게 나도 가겠다고 말했다. 침대 옆에 있던 가방을 열고 뒤집어 안에 있는 것들을 다 털어냈다. 그리고는 내 키만 한 서랍을 열어 그 안에 있는 옷을 꺼내어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날 무렵부터 있었던 사자 인형도 챙겼다. 가방을 메는 내게 엄마는 나를 데려갈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볼 수 없다고, 네가 맨날 무섭다고 말하는 시골집에 가서 살아야 해서 안된다고 했다.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나는 엄마랑 가겠다고, 나도 데려가 달라고 떼를 썼다. 아빠는 나갈 거면 집을 다 치워놓고 나가라고 방문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정말로 어떻게 할 요량이었다면 방문을 부수고라도 들어왔을 사람이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은걸 보면 아빠도 사실은 엄마가 정말로 집을 나갈까 봐 겁이 났던 게 아닐까. 엄마는 우는 나를 보며 한숨을 푹 쉬고는 가지 않을 테니 가방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나는 엉엉 울며 갈 거면 같이 가자고, 나도 데려가 달라고 엄마에게 매달렸고, 엄마는 다시 한번 가지 않을 테니 가방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제야 나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두려움의 기억이다. 


 유기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나는 늘 엄마가 나를 버리고 갈까 두려웠다. 사춘기 시절 방황을 하면서도 나는 밖으로 나돌지언정, 엄마가 내가 모르는 사이 밖에 가거나 하교 후에 연락이 되지 않으면 잠시도 견디질 못했다. 이십 년도 훌쩍 지났고, 독립을 한지도 오래지만 여전히 나는 한 번씩 그날의 꿈을 꾸고, 잠에서 깨어 엄마에게 전화해선 한참을 울곤 한다. 그때로 돌아가 겁에 질린 나를 그때로 돌아간 엄마가 달랜다. 엄마가 너를 버리고 가, 마는 아무 데도 안가. 이제는 아빠랑 싸울 일도 없잖아. 다정한 말에 또 지금의 나로 돌아온다.


 사실 나는 그날의 일을 평생 후회했다. 엄마의 삶을 보며 내가 엄마의 발목을 잡지 말았어야 했다고, 엄마가 떠난다고 할 때 떼쓰지 않고 보냈어야 했다고. 그랬다면 엄마는 일찍이 편해졌을 텐데 그날의 내가 엄마를 지옥 속에 더 있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잊히지 않는 기억 속에서 나는 오래도록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어린 나로 돌아간다면 지금의 마음처럼 엄마를 보낼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없었을 것 같다. 수십, 수백 번을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다른 길은 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날의 엄마와 나는 프레임 속에 남은 채로 흘러온 것이다. 





 마음이라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실제로 나는 우울이 극심했던 몇 년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 정말로 없어진 것은 아닐 테지만 안개가 뿌옇게 낀 듯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아래 깊숙이에 넣어둔 기억들은 먼지조차 쌓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기억이 나를 집어삼킬 수는 없다. 악몽에서 깨어나면 어른이 내가 있다.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 있지만, 더 이상은 싸우지 않는 엄마와 아빠가 있다. 아마도 그날의 기억은 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잊히지 않겠지만, 아무것도 없이 울며 짐을 싸는 그날의 어린 나는 더는 없으므로 메마른 시간 속에 갇히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과거는 힘이 없다는 말을 믿는다. 


 스스로를 돌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지나간 불행을 지금의 나와 나누지 않고, 과거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닳게 하지 않는 일, 지금의 내가 마주하는 사소한 문제들을 과거의 불행과 결부시키지 않고 담담하게 마주하는 일만큼은 힘을 써서라도 하려 한다. 서늘해지는 계절에 문득 떠오른 기억은 여전히 따끔거리지만 잠식되지 않을 만큼 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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