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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정 Dec 27. 2022

안녕히


 나는 올해가 지나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소수의 나열인 나이로 들어선다. 시즌마다 꼭 들어야 하는 곡이 있고, 이 맘 때면 늘 정원영 님의 「겨울」을 듣는다. 크리스마스 리스를 문에 달고, 양말을 창에 달아둔다. 매번 해도 지겹지 않은 일들, 겨울, 크리스마스, 연말, 온통 내가 기다려오던 것들이다. 


 내게는 오랜 습관이 있다. 12월이 되면, 한 해 동안 버리고 싶었던 것들을 생각하고 정리하기 시작한다. 어떤 해는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이기도 했고, 어떤 해는 내려놓지 못한 마음들, 또 어떤 해는 내게 독이 되는 걸 알면서도 놓을 수 없던 연인이기도 했다. 한 해의 에너지가 조금 남아있는 어떤 해는 그 모든 것이기도 했다. 이별의 방식은 간단했다. 끊어내기. 미련 넘치는 인사는 전하지 않고, 정리된 마음만으로 묵묵히 걷는다. 일상이 일이 된 어느 나이부터 나는 새해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 만 같은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라는 것이 내게는 커다란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사실은 별 일 없이 더해진 나이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내가 있다고 느낀 후로는 스스로를 위해 힘을 써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해 동안 시달려온 마음을 위한 맺음. 


 올해는 어떤 것들을 버려야 할까. 나는 버린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한 단절을 의미하므로. 하지만 어떤 것들은 품고 있는 것 만으로 내게 독이 되어 내 삶을 피폐하게 하므로 반드시 올해, 두고 가야 하는 것이다. 버린다는 말보다 두고 간다는 말이 더 나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떠나가든, 그것을 떠나보내든 더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 되는 일임에는 틀림없기에.


 여름 즈음부터는 집의 반을 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십 년 전 어느 날 유학을 하던 시절에 탔던 기차 티켓조차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지운과 함께 했던 여행에서 들렸던 박물관의 표도 여전히 가지고 있고, 어느 날 소금 호수에 놀러 가 사온 작은 소금 결정도 여전히 품고 있다. 영과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에 주고받은 작은 선물도, 그녀가 만들어 준 열쇠고리, 크리스마스 카드. 십오 년 전에 훈이 준 스타벅스 기프트카드도 잔액이 0이 된 채로 내 서랍에 들어있다.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이 준 편지가 여전히 낡은 상자에 담겨 침대 밑에 차곡차곡 있고, 내가 여행을 갈 때도 늘 챙겨가는 곰인형 역시, 이십 년 전 아빠가 낯선 나라의 어느 샵에서 80달러를 주고 산 물건이다. 이렇듯 많은 것들을 끌어안고 사는 삶을 살다 보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엄마의 남자 친구였던 아저씨는 음악가였다. 자신의 재능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주변에 나누며 사는 사람이었는데, 최소한의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정도만이 늘 자신의 몫이라 여기는 사람이었다. 물질적인 것들은 아저씨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살던 집에 갔을 때도 엄마는 자질구레한 짐들이 참 많았는데, 아저씨의 것이라고는 옷 몇 벌, 그리고 우주에 관한 다큐를 좋아해 그것을 보기 위해 산 TV가 다였다. 그렇게 사는 삶이 나는 슬프다고 생각했었다. 생이 다 해 사라진다 해도 정리할 것들 조차 없는 삶.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기억될만한 특별한 물건 하나 없이, 그저 지금 살아있는 ‘나’에만 집중하는 삶. 모든 삶은 유한하고, 우리는 언젠가는 죽는데 저렇게 아무것도 없이 사는 일이 너무 쓸쓸하진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 아저씨가 떠나고 잠시 엄마와 살던 내가 혼자 떠난 다고 했을 때, 엄마는 내게 가지고 가고 싶은 게 있냐고 했다. 나는 아저씨가 늘 안방 침대에 누워 보던 TV와 아저씨가 쓰던 이불 커버를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게 벌써 십 년 전의 일이고, 여전히 그 TV는 내 침실에 있다. 


 나는 이번에 이 TV를 버리기로 했다.






 엄마는 늘 내게 짐을 줄이고 또 줄이라고 했다. 삶에서 네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라고, 그러니 안 좋은 일들을 떠오르게 하는 물건이나, 사람들, 네게 독이 되는 것들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고 했다. 엄마도 아저씨를 만나 그렇게 움켜쥐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늘 가벼웠다. 이사를 가더라도, 여행을 떠나도 엄마에겐 챙길 것들이 많지 않았다. 나는 그러다 엄마가 죽으면 내가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하냐고 물었고 엄마는 죽은 후에 그런 물건들 속에 엄마가 담겨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지금 내가 만날 수 있는 엄마, 지금 우리가 함께 보내는 시간, 그런 순간들을 잘 담아두면 훗날 굳이 손 때 묻은 흔적들을 보지 않아도 기억할 수 있다고, 그렇게 우리는 가볍게 살아야 한다고 엄마는 말했다. 






 며칠 전, 한 때 무척이나 가까웠던 친구와 통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반년을 넘도록 연락을 끊는 건 반칙이라며 장난스레 온 메시지에 오랜만에 답을 했고, 그렇게 통화로 이어졌다.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다 친구가 말했다.


 "사십 대가 되니까 부정적인 기운을 풍기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멀리 하게 돼. 그 감정이라는 것은 내게도 분명 영향을 끼치잖아, 매사 삐딱한 태도로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멀리 해야 해. 누군가를 고쳐 쓸 수 있다는 건 정말 오만한 생각이야.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를 아끼고 잘 다독이면서 살자. 다른 사람이 상처 내도록 두지 마."


 삶이 유한한 것처럼 모든 관계도 유한하다. 그것이 흔하디 흔한 이별로 끝이 날지, 아니면 영원할 것처럼 이어지다 죽음으로 끝이 날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나를 괴롭게 하는 관계가 지금은 놓을 수 없는 전부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로 인해 부서지고 깨지는 나는 끝까지 남아 나와 함께 가야 한다. 타인에게 나를 상처 낼 권리가 있을까? 그게 없는 거라면 나는 왜 상대가 마음껏 나를 할퀴도록 두고 상처받는 걸까? 


 나는 정리해야 할 몇몇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떠날 사람들을 떠올리니, 한 해 동안 같은 자리에서 나를 행복하게 했던 사람들도 떠올랐다. 해가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 나를 소중히 여겨주고 다독여주는 좋은 사람들이 멀어져야 할 사람들보다 많음에 안도감을 느끼며,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조금 더 귀하게 여기고 지키자는 생각이 드는 날. 새로이 시작될 한 해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고, 아마도 나는 그저 나이가 한 살 더 해진 채로 크게 달라지는 것 없이 그대로 나일테지만, 놓아야 할 관계들과 물건들을 정리하고 나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작하는 발걸음이 더 가볍지 않을까. 2022년의 끝자락,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 그리고 마지막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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