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글쎄, 고양이 간식이랑 장난감만 사 왔더라니까?"
"니 아빠 자식은 맞나 보다. 어쩜 그렇게 똑같니?"
나는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 하고 이어지는 엄마의 이야기는 이십오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셋째 이모는 신혼 초에 큰 병을 얻었고, 투병을 하며 아이를 낳았다. 오랜 내 기억 속 사촌 동생과의 첫 만남은 그녀가 한참을 인큐베이터에 있다 퇴원 한 후 였다. 어린 나는 이모가 임신을 했었는지도 몰랐다. 아주 마른 이모가 조금 살이 쪘네, 정도로만 생각했을 정도로 작게 태어난 아이, 아이는 또래보다 작았고 약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도 이모는 계속해서 투병생활을 이어갔고, 그나마 자매들 중 가장 가까이에 살던 엄마가 사촌 동생을 봐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우리 집은 넓은 정원이 있는 주택이었는데, 아빠가 출근할 때가 되면 우리는 모두 현관에 섰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배꼽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구십 도로 꾸벅 인사를 하면 아빠는 주머니를 뒤져 나와 동생에게 매일 용돈을 줬다. 사촌 동생이 우리 집에서 지내는 날이 늘어나면서 현관에서 인사를 하는 사람도 셋으로 늘어났는데, 아빠는 사촌 동생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나란히 서 있는 셋 중 돈이 손에 쥐어지는 것은 나와 동생뿐이었다. 아빠에게 가족의 개념이란, 나와 피를 나눈 자식들, 그리고 자식들의 엄마인 아내까지였다. 아빠는 예전부터 그걸 강조하던 사람이었기에 처조카인 사촌 동생은 그저 남일 뿐이었다. 손에 용돈을 쥐고 머쓱하게 서 있다 아빠가 현관을 나서면 그제야 돌아서는 우리를 뒤에 서서 지켜보던 엄마에게 그때의 일은 큰 상처를 남겼다.
"그때 걔는 돈도 모를 나이야. 그냥 십원만 줘도 좋아했을 그 어린애한테 그렇게 하던 니 아빠 생각하면 아직도 너무 슬퍼. 이모가 알아봐. 정말 가슴을 칠 일이야."
엄마는 한 번씩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자주 했다. 셋째 이모는 세명의 이모 중 내가 유일하게 반말을 하는 이모다. 그만큼 가깝게 지냈는데, 엄마보다 늦게 결혼한 이모는 정말로 좋은 사람을 만났다. 몇 년 전까지도 이모부와 같은 성을 가진 남자에 대한 환상이 있었을 정도로 정말 착하고 성실한 사람, 아내가 평생을 치료받아야 하는 큰 병에 걸려 아이만 데리고 헤어지라는 부모님의 종용에도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제 자리를 지킨 사람. 가까이에 살며 처가 어른들까지 챙기던, 여전히도 아내를 위해 성실히 일하고, 요리, 집안일까지 도맡아 하는 이모부덕에 이모는 아직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그런 이모부는 내가 아직 어린 시절, 외갓집에 갈 때마다 나를 데리고 가곤 했었다. 아빠 때문에 친정에 가지 못하는 엄마는 나를 이모네 차에 태워 외갓집에 가게 해주었는데, 이모부는 늘 내게 친절했고, 부족한 것은 없는지 살갑게 챙기는 사람이었다. 어쩌다 이모네 집에서 자는 날에도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었는데, 그래서 나는 세상에 저런 사람이 우리 아빠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사촌 동생을 없는 사람 취급하고, 동생이 우리 아빠의 눈치를 보는 것이 내내 미안했다. 내가 느낄 정도였으니, 어른인 엄마에게는 너무 명확히 눈에 보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주일에 서너 번씩 병원을 가야 하는 이모에게 우리 집에 아이를 맡기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기에 엄마는 아빠가 없는 동안에 동생을 더 살뜰히 챙겼다.
"엄마는 그때 이모한테 너무 큰 빚을 졌어. 동생한테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다정아, 나중에 엄마도 죽고, 이모도 죽고, 너희들만 남게 되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걔는 꼭 니가 친언니처럼 챙겨줘. 걔는 외동이라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면 세상에 혼자 남잖아. 그러니까 니가 꼭 챙기고, 자주 들여다보고, 자주 연락하고 그렇게 해줘."
엄마는 자주 사촌 동생을 부탁한다고 했고 나는 그때마다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동생은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출장을 왔다 우리 집에서 하루를 묵고 갔다. 출장이 잦은 동생이 작년에 고양이를 맡기고 갔고, 반년이 넘도록 나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원래 같이 사는 강아지도 있기 때문에 둘을 함께 키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돌보지 않으면 고양이가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봐주겠다고 한 것이 반년이 지나가고 있다. 동생은 펫샵 앞으로 데리러 와달라고 했고, 나는 고양이와 강아지를 한 공간에 둘 수가 없어 강아지를 데리고 동생을 데리러 갔다. 차에 타는 동생의 손에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반가움에 동생의 무릎으로 잽싸게 달려가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를 보며 동생은 말했다.
"고양이 간식은 주면 안 되잖아."
"뭐야, 너 고양이 간식만 샀어?"
"응, 얜 알아서 잘 먹겠지."
"야, 그래도 둘이 있는데 살 거면 둘 다 좀 사주지, 니 고양이만 그렇게 챙기냐."
동생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비닐봉지를 열어보니 고양이 간식과 장난감이 있었다. 나는 얼른 강아지 간식을 종류별로 꺼내와 강아지에게 주었다. 말 못 하는 짐승이어도 서운 할 것 같아 속이 여간 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도 그때의 아빠를 떠올렸다.
"어쩜 저렇게 한배에서 났는데도 니 동생은 인정머리가 없을까."
"천성인가 보지."
"내가 낳는 건 예쁘게 잘 낳아놨어. 내가 그렇게 낳은 건 아니야."
억울하다는 듯 잘 낳아놨는데 이상해졌다고 투덜대는 엄마의 말에 나는 결국 웃어버렸다. 예전에는 저렇게 자신의 테두리의 것들만 확실하게 챙기며 사는 동생의 테두리 밖에 이혼한 엄마가 존재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심 엄마가 벌을 받는 거란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딸보다 귀한 아들’을 그렇게나 사랑하던 엄마가 느낄 상실이, 내게 상처 주었던 게 되돌아가고 있구나, 하는 못된 마음.
"콩 심은 데 콩 난 거 아닐까? 아빠 심은 데 아빠 난거지…."
히익! 하고 엄마는 질색을 했다.
"그래도 니 아빠도 잘 보면 장점도 있는 사람이야. 엄마랑 안 맞아서 그렇지 마냥 그렇게 나쁜 사람만은 아니지."
"당연하지, 나도 내가 좋아하는 아빠의 면이 있어. 물론 끔찍해하는 면도 있고."
"아무튼 피가 섞인다는 건 진짜 무서운 거야.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똑같은 거 봐."
"어휴… 남자 잘 골라야지. 아빠랑 걔 보면 내가 고른 남자가 내가 낳고 키울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니까?"
"그냥 너는 너 닮은 딸만 하나 낳아 키워."
"다정하고 살가운 아들들도 있어. 우리 주변에 없어서 그렇지."
"하긴, 그것도 그렇다 그치? 그럼 아들 하나 낳아 키워."
"근데 엄마, 시집도 안 간 나랑 아직 세포로도 없는 자식 이야기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푸하하. 그건 그렇다."
고양이 간식으로 굴러간 스노볼이 구르고 구르다 결혼도 안 한 내 미래의 자식에게 까지 닿고 나서야 멈추자 엄마는 말했다.
"그런 생각을 미처 못해서 그랬을 거야. 그게 니 동생의 전부는 아닐 거고…. 너무 밉게만 보지 말고 그래도 니가 누나니까 그냥 이렇게 넘어가지 말고 꼭 이야기해 줘, 너무 내 것에만 몰두하지 말고 주변도 좀 둘러보라고."
십 년을 넘도록 전화 한 통 없는 놈을 엄마는 아직도 이해하고 싶나 보네, 하고 퉁명스레 말하는 내게 엄마는 힘주어 말했다. ‘평생을 못 본다고 해도 걔가 내 아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피를 나눈 사이라는 건 뭘까. 어떻게 저렇게까지 닮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고 그럴까. 나는 한배에서 난 동생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같은 부모아래서 자랐어도 어쩜 이렇게 다를까? 한 가지 면으로 그 사람을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내게는 없지만 동생만 가지고 있는 장점들도 많은 것만 보아도 저런 면이 전부는 아니다. 나만 자세히 보아도 사회생활이나 일 처리하는 방식은 아빠와 빼다 박은 듯 닮아있고, 감정적인 면면들은 엄마와 또 많이 닮아있다. 그 말을 바꾸어 말하면, 나는 엄마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고, 또 아빠와 전혀 다른 방식의 감정 프로세스를 가진 사람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닮은 것일 수도, 다른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아직 동생을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저 받아들이는 엄마의 태도를 보자면 나와 피를 나누었든 아니든 간에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비단 자식에게만 취해야 하는 태도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좁은 마음으로 아빠와 비슷한 동생을 보면서 모질고 나쁜 것만 똑 닮았다고 생각할게 아니라, 저런 면도 가지고 있구나, 모를 수도 있으니까 이야기는 해줘야지 하는 다짐을 한다. 예고 없이 불쑥 마주하는 순간에는 꼴도 보기 싫다고 또 엄마에게 투덜거릴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니까, 이야기해 주어야지. 잠시 미워하더라도 내게도 그런 면이 있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지 하는 반성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