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
나는 유달리 배앓이를 많이 하는 어린이였다. 커다란 내 방 침대에, 내가 사랑하던 말숙이 인형을 안고 끙끙 앓고 있으면, 엄마는 내가 아프다는 걸 어떻게 아는지 문을 열고 들어와 내 배를 만져주곤 했다.
슥슥 나아라, 엄마 손은 약손이다. 슥슥 나아라 엄마 손은 약손이다.
나는 엄마가 마치 하나님 같았다. 엄마는 안방에 있는데 어떻게 내가 아픈 걸 알고 나타나지? 내가 텔레파시로 엄마를 불렀나? 엄마는 멀리서도 내가 보이나? 온갖 상상을 하며 잠에 들곤 했다.
엄마가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졌다. 그뿐인가, 나이가 더해지고는, 자주 만날 수 없어도 전화기너머 내 목소리만 들어도 엄마는 나의 기분을 바로 알아차렸다. 내가 아무리 괜찮은 척을 해도, 울지 않아도 아주 미세한 떨림까지도 엄마는 알아챘다. 몹시 힘든 어떤 날은 생각지도 못하게 전화가 와서 괜찮으냐고 묻는 일도 있었고, 엄마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불쑥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나는 엄마 뱃속에서 엄마의 일부였던 내가 엄마와 연결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보지 않고, 듣지 않아도 다 아는 엄마는 마치 내게 신 같은 존재다.
혼자 사는 집은 크게 어지를 일이 없다. 일을 마치고 오면 늘 같은 자리에서 옷을 갈아입고, 그날 입은 옷은 바로 빨래통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냥 훑어본 내 집은 늘 정돈된 상태였지만 우울로 아프기 시작한 후부터는 구석구석 엉망인 곳이 많았다. 물건이 너저분하게 널려있는건 아니었지만 먼지가 쌓이는 곳이 많았다. 무언가를 할 의욕이 없어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는 정도도 할 수 없어 무기력하게 몇 달을 지냈는데 엄마가 왔다. 자식네 온 엄마들이 늘 그렇듯, 엄마는 가방을 내려두고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모든 건 제자리에 있었지만, 모든 것에는 먼지가 소복이 앉아있었다.
"우리 딸, 많이 힘들었구나."
엄마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이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든가, 그냥 귀찮아서 안 했다든가, 뭐든 말을 했어야 했지만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아는 것 같은 엄마에게 굳이 말이 필요 없단 생각을 했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있는 나를 뒤로 하고 집을 쓸고 닦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엄마를 쳐다보았다.
"니가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으면 치울 생각도 못하고 있었겠어. 아이고 이 먼지들 다 니가 마시는건데 기관지에 안 좋을 텐데…"
엄마도 내가 어린 시절에는 여느 엄마와 다르지 않았다. 아주 어릴 때는 늘 내 방은 엄마가 치웠고, 나이가 좀 들었을 때는 방 청소 좀 하라고 등짝을 맞는 일도 잦았다. 청소도 잘 안 하면서 내 물건에 손대는 것은 극도로 싫어해 내가 없는 때에 내 방에 들어가 청소하는 것도 싫어했었다. 그렇게 방청소로 지겹도록 엄마와 다퉜다. 그러다 독립을 하게 되고, 혼자 사는 내 집에 온 엄마는 저녁을 먹으며 말했다.
"크면 결국에는 이렇게 다 알아서 하게 되는데 어릴 때 잔소리를 좀 덜할걸 그랬어. 굳이 안 혼내고 안 싸워도 될걸 맨날 싫은 소리 하고 그랬네. 맨날 치워라 치워라 노래를 불러도 돼지우리처럼 하고 있더니 혼자 사니까 깔끔하게도 해놨네."
"내가 안치우면 아무도 안 치우니까 그대로 다 쌓이잖아 그건 또 싫으니까."
흐흐 웃는 내게 엄마는 그래, 잘한다 우리 딸. 하고 말해주었고, 이 후로는 혼자 사는 내 집에 오더라도 잔소리를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사실 엄마가 온다는 소식에 집안 꼴을 보고 무슨 소리를 할지 조금은 위축되어 있었는데, 엄마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예상치도 못했던 위로가 되었다.
엄마는 청소를 하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혼자서 잘 지내던 내가, 겉으로 봐서는 평소와 같은데 집 안에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혼자 있었을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어 싱크대에 설거지거리 하나 없이 사는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고 했다. 설거지거리를 쌓아두지 않는 일, 그게 네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이구나 하는 엄마의 말에 나는 결국 울었다.
엄마가 며칠 집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이 든 엄마를 부려먹는 못된 딸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청소와 빨래를 하고 매끼 밥을 차려주었다. 밥을 먹고 나면 과일도 깎아 내주었는데 얼마나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챙김을 받는지 그게 마냥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날, 엄마는 나란히 소파에 앉은 내게 말했다.
"다정아, 힘들겠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알지만, 이렇게 먼지가 소복이 쌓이도록 살면 니 마음도 뿌옇게 될 수 있어. 엄마가 다 치워뒀으니 먼지만이라도 털어내며 살든, 사람을 불러서 치우든 한번씩 치워. 결국에는 너랑 강아지가 이 먼지 다 마시는 거잖아."
"알겠어. 엄마가 다 쓸고 닦고 했으니까 나도 깨끗하게 치우면서… 노력해 볼게."
"환기도 하고, 불도 늘 밝게 켜두고. 엄마는 니가 이 어두컴컴한 집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거 같아. 얼마나 혼자 힘들까 하고…"
말을 잇지 못하는 엄마에게 나는 그저 괜찮다고, 앞으로는 깨끗하게 치우며 살겠다고 말했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사실, 엄마가 떠나고 나면 다시 덩그러니 남겨질 나는 그 말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몰랐지만 그 순간만큼은 꼭 달라지리라 생각했었다.
엄마를 공항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 마트에 들러 먼지떨이를 샀다. 그리고 늘 혼자였지만 엄마가 며칠 와 있었다고 온기가 더해졌던 집, 하지만 이제 또다시 혼자 있게 될 집 앞에 차를 대고 앉았다.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딸, 불편했을텐데 엄마랑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 엄마는 참 좋았어.
또 볼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 해질 때 까지 차에 앉아있지 말고,
강아지 혼자 집에 있을 테니 얼른 집에 들어가. 사랑해, 우리 딸.
나는 엄마가 떠났다는 사실에, 그리고 엄마를 내려주고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차에 앉아있을 나를 아는 엄마를 생각하며 크게 울었다. 이제는 멀리 떨어져, 일 년에 한 번도 못 보는 엄마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엄마를.
말하지 않아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