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것이 되어 더 잘 쓰이길 바라며>
에세이는 뭔가 감상에 차서 이때다 하고 쓰는게 답인...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럴 일이 생겼다.
아, 음악을 관두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후퇴와 전진의 반복이다. 나는 잠시 뒤로 물러나야 할 때를 택했고, 위 사진에 있는 오랫동안 정든 소중한 친구들을 장터에 내놓았다. 생활고로 아무리 힘들어도 팔 생각일랑 추호도 없던 친구들인데. 뮬 중고게시판에 들어갔을 때, 눈물을 훔치며 키보드를 두드려 쓴 것 같은 궁상섞인 어느 한 판매자의 글을 읽으며 물건 하나 파는데 뭐 이리 말이 많나 싶어 코웃음치던 내가 지금은 그 사람들과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웃기다 못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앞으로 전진만 있을 줄 알았던 내 인생에 정말로 크나큰 고비가 닥쳤다. 이 고철덩이 친구들과 이별하면 조금은 숨통이 트이겠다고 생각했으나, 이건 임시방편일 뿐 음악을 하기 위해선 무슨 일이든 병행해야만 한다는 확신이 점점 들고 있다. 24살에 했던 다짐을 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야 다시 떠올리는 것은 아직 내가 철이 덜 들었다는 반증인 것일까? 요지경인 세상 속에 타인의 통념을 무시하고 여자친구의 도움을 얻어 내게 적합한 답을 찾기 위해 애썼지만 파릇한 20대는 한순간에 지나가 버렸다. 내가 꿈꾸던 원대한 비전은 조금씩 흐려지고 당장 월세나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고민하는데만 머리를 굴린다.
깅낭보이즈의 <표류교실>의 코러스 페달 소리에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평생 쓸 일이 없는 이펙터인줄 알았는데, 평생 쓸 페달로 이녀석을 일본에서 데려왔다. 정말로 제일 정이 많이 든 페달이다. 중고거래가 악기구매 이력 중 90% 이상인 나에게 몇 안되는 신품으로 구매한 녀석이기도 했고, 그 어떤 노브도 없이 프리셋만으로 좋은 소리를 내주는 이 친구에게 악감정이란 생길래야 생길 수가 없는 것이었다.
특히, 초록불꽃소년단의 <한겨울밤의 꿈>이라는 곡의 인트로 리프는 이 코러스로 녹음한 것이다. 보통은 음원을 드라이 소스로 받고 플러그인 이펙터로 모듈레이션이나 공간계 이펙팅을 주는 게 일반화되어있는데, 코러스 사운드만큼은 포기를 못해서 이걸로 녹음하자고 양퐁퐝한테 졸랐던 기억이 난다(양퐁퐝은 이때 엔지니어링 총괄이었다).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웠고,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게 되어 기뻤다. 그런 친구를 오늘, 팔았다. 후퇴라고 하기에는 마음이 알약을 씹는 것처럼 굉장히 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