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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뻑곰 Aug 15. 2023

ELLEGARDEN,
내 펑크 음악의 기원

https://youtu.be/VN0LnNglDXs

그들의 내한에 기뻐하며 기린이(?) 때 커버할 엄두도 못 내던 Marry Me를 결국 완곡해냈다(정말 힘들었다).
최근에 한 달에 한 번씩 유튜브에 커버곡을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곡은 학창 시절 내 코원 D2를 가장 뜨겁게 달군 곡 중 하나인 ELLEGARDEN의 MARRY ME다.


아이묭의 <너는 록을 듣지 않아> 기타 커버를 시작으로 꾸준히 업로드 일정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내가 정말 사랑해 마지않던 엘르가든이 내한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일본의 멜로코어(요즘 이렇게 부르는 것 같기도 한데, 저는 장르를 세심하게 신경 써서 구분 짓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불편하신 점이 있으면 양해 부탁드립니다) 밴드 중 자신 있게 제일 좋아하는 밴드가 누구냐고 하면 첫 번째는 Hi-Standard, 두 번째는 ELLEGARDEN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만큼 엘르가든은 내 록 음악 인생에 있어 그 영향이 굉장히 지대한 밴드이다.


제 팝펑크 교주님들. 왼쪽이 ELLEGARDEN, 오른쪽이 Hi-Standard(출처 : https://hi-standard.jp/, https://kr.concerty.com/


내가 중학교 1학년 시절, 캐나다에서 결성한 펑크밴드인 Sum41의 <Makes no difference>를 누나의 MP3와 닌텐도DS의 응원단(리듬히어로) 게임으로 처음 접했고, 그것이 팝펑크를 듣기 시작한 최초의 시작점이었다. 그러면서 왠지 모르게 엘르가든도 자연스레 국민은행이었나...? 하여튼 CM송으로 처음 TV에서 접하게 되었다. <Make a wish>라는 곡으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보컬의 유려한 영어발음 덕분에 영미권 밴드인 줄만 알았는데 멜론에 그들을 검색했을 때 국적을 보고 굉장히 적잖게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바로 옆나라인 일본이었던 것. 14살 코흘리개 시절 듣던 일본 곡이라고 하면 애니송이나 웃찾사의 한 개그프로그램에서 나오던 오오츠카 아이의 퐁퐁퐁밖에 없었는걸. 그리고 일본인은 영어발음이 좋지 않다는 편견을 완전히 박살 내준 밴드이기도 했다.


https://youtu.be/A4YDH9f4Lkg

2002년 Sum41의 클럽 라이브 영상. 이 날것의 느낌이 너무 좋다.


그렇게 이들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고, 1집과 각 싱글들을 제외한 모든 엘르가든의 앨범을 사기에 이른다(작년에 나온 앨범은 아직 안 샀다). 보통 내가 음반을 사던 곳은 부모님 따라 강남고속터미널에 있던 영풍문고 옆에 붙어 있던 신나라레코드라는 곳이었다. 음반을 사고 CD플레이어로 재생을 하노라면 플레이리스트에서 맘에 드는 곡도 있고 별로인 곡도 있기 마련이라 듣고 싶지 않은 곡이 나오는 것 같으면 바로 삼각형 두 개가 겹쳐 그려진 버튼을 꾹 눌러주곤 했다. 그런데 이 밴드는 정말 싫은 곡이 단 한 개도 없었다. 모든 트랙이 심플함 아래 좋은 멜로디로 무장했고, 그 중심을 잃지 않고 있었다.




홍대 펑크씬에 들어와 밴드 활동을 할 무렵, 펑크 음악을 디깅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훌륭한 아티스트들의 노래를 들었지만 그럴수록 엘르가든의 존재가 위대하고 대단하게 느껴져만 갔다. 엘르가든은 서양의 팝 펑크를 벤치마킹 했지만 확실히 구별되는 아이덴티티가 있었다. 바로 곡의 흐름을 이끄는 메인 리프.

그때는 기타를 쳐도 통기타로 코드나 간단한 아르페지오밖에 치지 못하던 시절이라 일렉기타를 연주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잘 알고 있지도 못한 시절이었다. 그래서 막연히 그들의 음악이 좋다고만 느꼈다. 하지만 일렉기타를 제대로 잡기 시작했을 때, 지판에 손이 움직이는 것이 조금은 들숨 날숨처럼 익숙해질 무렵 엘르가든의 곡의 리프가 굉장히 창의적인 리프구나 하고 느끼는 시점이 있었다.


흔히 팝펑크 곡의 리프는 옥타브 주법부터 시작해서 그 룰과 클리셰가 정해져 있는 편이다(제 귀가 80% 정도의 곡이 이 법칙에 해당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 밴드의 리더이자 리드 기타리스트인 우부카타 신이치는 그 법칙을 깨부수고 창의적인 리프와 기타 솔로로 엘르가든의 곡들을 멋지게 채워나갔다. 예시곡을 하나 오타쿠처럼 소개할까 한다. 친절하진 못하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로써의 경험과 감상으로 말하고 싶었다. 기타리스트가 아닌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사실 대부분이 제 설명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https://youtu.be/zRL0VH37a-Q

スタ-フィッシュ(Starfish) 라이브. 호소미가 점프한 뒤 조명이 환하게 켜지는 연출은 지금 봐도 이 영상의 백미 그 자체다.


내가 좋아하는 3집 Pepperoni Quattro에 수록된 <スタ-フィッシュ(Starfish)>의 리프는 4,5번 개방현인 A와 D음, 그리고 옥타브 운지로 발현되는 F#음이 조화롭게 섞인 멋진 리프다. 내가 일렉기타를 다루는 것이 아기 걸음마와 다름이 없던 몇 년 전만 해도, 이 곡을 직접 귀로 카피하면서 지판을 더듬을 때 이 리프가 어떻게 연주되는 건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진짜 안 되겠다 싶어 참지 못해 귀카피를 포기하고 악보를 보았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단순해서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더 황당했던 것은 이 곡의 리프가 이런 미지의 주법이면서도 심플함이 돋보인다는 것에 소름을 느낀 나 자신이었다. 1,2박은 개방현으로 터트리면서 셋째 박에서 옥타브로 깔끔하게 뮤트 하며 뻗어주는 이 감칠맛이 미원이나 다시다 저리 가라다. 직접 기타로 연주해 봐야 이 원작자의 쫀득한 창의성을 100% 느낄 수 있다. 이 곡으로 나는 우부카타 신이치의 팬이 되었고, 나중에 깁슨에서 오쿠다 타미오와 함께 그의 정식 아티스트 시그니쳐 기타를 만들어 주었을 때에도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괜히 뿌듯해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아르페지오 주법과 리프메이킹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번뜩임과 그루브가 있다. 나는 더 나아가서 그가 세계적이며 독자적인 개성이 있는 팝펑크 기타리스트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덧붙이자면, 4집 Riot On The Grill에 수록된 <I hate it>의 기타 솔로는 보통의 팝펑크에서 나올 수 없는 그만의 프레이즈로 가득 찬, 눈물이 철철 흐르는 명 솔로라고 생각한다. 에그, 너무 신나서 주절대다 보니 카페 앞 유리가 내 콧김으로 하얗게 뒤덮인다.



처음에는 그저 듣기 좋은 밴드로 알게 된 엘르가든. 내가 허접하나마 기타를 잡게 되면서 그들의 곡을 카피하면서 더더욱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밴드이기도 하다. 2008년 활동 중지 이후 거진 15년 만에 우리 곁에 다시 찾아온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앞으로도 좋은 활동을 많이 펼쳐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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