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기타를 하나 샀었다. 내무부장관님께서 기왕이면 좋은 기타를 고르라고 200만원을 선뜻 무이자로 빌려주신게 시작이었다. 장관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또다른 메인 기타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마침 밴드 내에서도 싱글픽업 기타가 있었으면 하는 니즈가 있기도 했고.
가난의 계절을 지나 다시 마주한 뮬은 불경기를 맞아 예전과 같은 활기참은 없지만, 여전히 많은 매물들이 등록되어 있었다. 뮬이라는 곳은 전공자 혹은 취미생들이 쓰던 소중한 악기들에 값어치를 매기고 중고로 판매하는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가판대. 나는 용돈을 받아 신이 난 채 백화점 장난감 코너를 종횡무진하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으로 뮬을 둘러보았다. 내 스스로가 가난해서 장터를 안보려고 애쓴 그 짧은 세월동안 악기들의 중고 시세는 세계 원화시장의 영향을 받아 본연의 가치보다 강력한 버프를 얻기도 하고 디버프를 받기도 하였다. 이는 물론 현재진행중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예산과 기타의 값어치를 저울질하고, 내가 정한 나름의 가격 범주와 그간 귀로 쌓인 경험으로 악기를 고른다.
뮬을 둘러보면서 느끼는 것이, 나는 개성있으면서도 내게 맞고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기타를 원하는 요상한 홍대병에 걸렸다. 남들이 많이 쓰는 악기는 정말로 그 명성에 걸맞는 아웃풋이 있음에도 말이다. 깁슨 레스폴을 가지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 사운드적으로 단 한번도 실망을 시킨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비합리적인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야 '...역시 좌펜더 우깁슨인가'라는 후회섞인 투덜거림으로 이 여정을 끝낼것만 같다.
하지만 기타의 선택권은 온전히 내게 속한 것이 아니었다. 장관님의 입김을 무시하고 구매할 수는 없는 노릇.
“이거 어때…?”
“으악, 색이 뭐 이래. 생긴 것도 진짜 구리다.”
펜더 57 리이슈 스트라토캐스터를 보여줬을 때, 장관님은 역겹다는 표정으로 진심을 다해 57의 생김새를 혹평하고 있었다.
”너무 흔하게 생겼는데 색까지 구려!“
그래. 문제는 투톤 선버스트였다. 선버스트는 장관님 눈에 용납할 수 없는 색상이었다. 흔하고 '틀'같아보인다는 이유 때문이다. 내게는 색상과 상관없이 펜더 57 리이슈가 중고로 130이면 정말 괜찮은 가격인데. 그 이후로도 눈물을 머금고 다른 기타들을 보여주었지만, 시큰둥한 장관님 반응에 나도 함께 시무룩해졌다. 온전히 내 돈이 아닌 것 때문도 있지만, 기왕 빌려준거 나도 장관님도 보기에 예쁜 기타를 사고 싶었다. 아버지가 그러셨다. 느 좋아하는 것만 하지 말고 남들도 함께 만족시키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몸소 겪는 중입니다, 아버지...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장관님이 갑자기 내게 호들갑을 떨면서 뮬 링크를 보냈다.
“동현아, 이거 봐 봐. 진짜 개멋있게 생겼음!”
“?”
뭐야, 대체 어떤 기타인데. 장관님도 맘에 드는 기타 매물을 내게 몇개 보여주긴 했지만 그 땐 오히려 내 취향에 맞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이번에는 어떤 기타일까 싶어 진짜 설레는 마음으로 링크를 눌렀다.
그리고 그곳엔 호피무늬의 픽가드가 달린 새끈한 텔레캐스터 사진이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기타인데…? 아, 그래. 프린스가 생전에 쓰던 그 호피무늬 텔레캐스터였다.
고인돌가족 플린스톤이 생각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