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역: 정의의 발산, '나'를 향한 수렴

두산인문극장 2025 : 지역 LOCAL

by yannseo
이제 막 쏘아 올린 '지역'이라는 공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찰, 그리고 사회학적, 인문학적, 예술적인 상상력들, 이를 한 데 모아 세상에 질문을 하는 곳. 올 한 해, '지역(LOCAL)'이라는 테마로 두산인문극장의 서막이 열렸습니다.


'지역'은 저에게도 각별한 단어인 터라 해당 테마를 보고 매우 반가웠습니다. 코로나 19로 모든 것이 멈춰있을 당시,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해야 했기에 혼자서 인적이 드문 동네를 여행해 보고, 그곳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는 시간이 제게는 일상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정겨운 동네들이 많았고, 숨겨진 맛집과 가볼 만한 공간들이 저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힘든 시기였지만, 주민들에게서 느껴진 인간다움, 손님은 적었지만 그래서 사장님과 스몰토크를 나눌 수 있었던 아늑한 시간은 여전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공간,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추상적이면서도 야심 찼던 소망, 그때 마주했던 지역들이 있었기에 가져볼 수 있던 열정이었고, 그 불씨가 여전히 남아 저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역이라는 것은 원대한 꿈을 심어줄 만큼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두산아트센터가 쏘아 올린 지역이라는 공. 저는 그 쏘아 올리는 공을 함께 던져보고 싶었습니다. 지역의 강력한 힘을 느껴본 당사자로서 이곳에서 지역을 마음껏 논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간절함이 닿았던 걸까요. 마침내 DO; 에디터의 자격으로 그들의 행보에 함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두산아트센터가 개최한 '지역(LOCAL)' 연작 프로젝트 제작발표회에 초청받음과 동시에 DO; 에디터로서의 첫 발걸음을 내뎌봅니다.













어디에 살고 있으며, 어디에 소속감을 느끼는가.


어디론가 향할 때면 지도앱을 켜봅니다. 손가락으로 찍는 어느 장소든지 지도는 그곳의 지점을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00시 00동 00-00. 심지어 생판 알지 못하는, 과연 여기에 사람이 살긴 할까 하는 장소에도 정확한 주소가 적혀있죠. 결국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주소가 붙어있는 장소와 함께하는 건 불가피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어느 지역이든지 무조건 지나칠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디에 살고 있는지,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도 우리는 지역과 불가분 한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필연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생각, 감정 등의 모든 지각들은 지역이 결코 단순한 영역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두산아트센터는 지역과 우리가 갖는 관계, 그리고 그 관계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사회적 주제들을 올 한 해 동안 이야기합니다. '지역'이라는 함축적인 개념을 통해서 우리가 한 공간을 경험하고 기억하는 방식, 소속감을 느끼는 모든 장소와 공동체, 그리고 주민들로 축적된 관계와 문화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한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방향을 제시하는 만큼, 이번 프로그램들도 총 8편의 강연들과 3차례의 공연, 1개의 기획전시들로 다양하게 진행됩니다.


특히 강연은 인류, 이주에서부터 저출산, 균형발전, 지방소멸까지 우리에게 밀접하고 체감되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사회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이슈들이고, 심화되고 있는 논점들이기에 이번 테마를 통해서 현대사회의 현 위치를 냉철히 꼬집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고찰이 이뤄지는 시간이 강연이라면, 공연과 전시는 보다 철학적인 고찰로 사람들에게 다가갑니다.


연극 '생추어리 시티'는 추방당할 위협, 차별, 불안정한 상황 속 인물들의 사랑과 우정을 담아냅니다. '미등록 이민자'라는 현실과 인물들이 갖는 감정 간의 괴리감이 비침으로써 불안정함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표현됩니다. 소속감이 없는 지역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인물이 현대에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집중해 볼 수 있는 연극입니다.


또 하나의 연극 '엔들링스'는 한국의 노년 해녀들과 미국의 극작가 하영의 이야기를 교차로 보여줌으로써 사회 속에 만연한 차별과 한계에 자신을 제한하지 않고 자신의 개체로서 엔들링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한 종의 최후 개체를 뜻하는 엔들링. 인물들은 어떻게 자신의 지역에서 스스로 엔들링해나 가는지, 인간과 지역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뮤지컬 '광장시장'은 이주민 여성 노동자 (미얀마)가 새로운 곳에서 정착하는 과정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그녀가 정착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이곳에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마음을 열고, 스스로 광장시장의 일부가 되어가는 스토리로 한 여성 이주민 노동자의 삶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미등록 이민자, 노년 해녀들, 미국의 극작가, 이주민 여성 노동자. 어느 하나 겹치는 등장인물이 없지만 공연의 시놉시스, 개요를 들으면서 '정체성', '이주민', '불안정성'이 공통적으로 머리에 남는 키워드였습니다. 교환학생으로 독일로 떠났었던 때가 생각이 나서였을까요.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기숙사로 전입 신고도 하고 주변 마트에서 식재료도 구하고, 시내에서 옷도 사 입으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의식주의 요건은 다 갖췄음에도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한국집에 대한 그리움은 도저히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물질은 충족됐지만, 어딘가가 허한 그 공허함은 어떤 것으로든 채워낼 수가 없었습니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주민의 삶. 3개의 공연이 관통하는 이 한 문장이 저의 이야기를 콕 집어주는 것 같아, 슬프지만서도 프로그램을 향한 기대감 또한 부풀어 오릅니다.


종로를 출발점으로 삼은 전시, Ringing Saga는 보다 직관적인 관점으로 도시를 재해석, 재구성한 전시입니다. '종이 울리는 거리'라는 종로의 전설을 넘어 우리의 감정, 사랑, 감각으로 종로의 무용담을 개인적 관점으로 해석합니다.

전시 Ringing saga 역시 기대가 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1호선을 자주 이용하는 승객으로, 종로는 친밀한 지역이지만, 한편으로는 정이 잘 가지 않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종로 쪽 지하철역들을 지나칠 때면 어르신들이 당신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저의 어깨를 세게 밀치시곤 했었는데, 그러한 기억들로 인해서 저에게는 그리 반갑진 않던 지역이었고, 스스로 이기적인 편견을 만들어낸 구간이었습니다. 이번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전시에 기대감은 종로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감정으로부터 드러납니다. 종로에 대한 다른 이들의 감정이 혹시 나의 이러한 편견들을 씻겨줄 수는 없을지, 앞으로 종로를 지나칠 때 어떻게 이들을 마주해야 할지, 종로에 대한 애증을 이번 기회에 풀어보고 싶은 마음에 Ringing Saga에 더욱 눈이 갔습니다.



지역문제는 계속해서 거론이 되고 있는 문제이며 한국은 특히 심화되고 있는 문제다. 지역 소멸과 중앙집중화는 전통의 소멸과도 이어지고, 저출산과도 연관이 이어지고 있는 복합적인 이슈다.
이는 밀도의 차원에서 발생된 문제들이다. 자연법칙에 따라 밀도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어지는 게 진리인데 우리는 그 반대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에너지 법칙으로 다시 바라본다면, 쏠림의 현상이 과열화가 되어 결국 폭발로 이어진다.

두산아트센터의 핵심 화두인만큼, 계속 반복되고 강조되는 말이지만, 단순한 지리적 구분만이 지역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 기억, 경험, 관계. 모든 가능성들이 존재하는 복합적이고 유기적인 공간이 지역이라는 곳입니다. 그래서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지역 문제들이 등장하는 것이죠.


사회는 늘 우리에게 물음표를 던집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너네가 어떻게 살아야 이 문제들이 해결이 될까?' 이에 대한 대답은 사실상 글쎄인 것 같습니다. 우리도 얼마나 이 사회가 심각한지 인지는 하고 있습니다. 애를 낳아야 하고, 지방으로도 움직여야 하는 것을요. 그러나 우리는 이 불안정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적어도 나를 받아줄 수 있는 곳을 찾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 학교를 찾고, 직장을 찾고, 삶의 터전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은 중심을 향해 뛰어듭니다. 끊임없는 이 불안함을 조금이라도 잠재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과열화의 폭발을 막아야 할 때입니다. 다만 자신을 향한 불안함에서 벗어나게 해 줄 무언가가 우리에게 먼저 주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그 폭발을 막아낼 용기가 모두에게 생겨나지 않을까요.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소망은 모두가 한 마음이니 말이죠. 지역도 결국 이러한 소망에서 생겨난 결과물이라 봅니다. 즉, 우리에겐 진정한 지역이 필요합니다.


지역을 정의한다는 건 너무도 무한한 일이라 어렵지만, 지역을 찾는 과정은 곧 내가 나다워지는, '나'라는 정착지에 수렴하는 과정인 듯싶습니다. 무조건 돈과 생계에만 집중한 삶이 아닌, 진심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러한 지역이 나에게도 존재하는지, 있다면 나의 지역은 어디인지. 이번 에디터 활동을 기회로 삼아 계속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도 이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당신의 지역은 어디인가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제, 애순, 그리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와 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