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메모장에만 일기를 쓰다가 다시 브런치에 글을 씁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단편소설을 읽고, 1500자 이상 독후감을 쓰라는 숙제를 받았다. 방학 마지막날 밤까지 글이 써지지 않아서 자책을 엄청 많이 했다. 어찌어찌 말 같지도 않은 작가에 대한 찬양과 주인공에 대한 공감을 억지로 써가면서 1500자를 채우고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국어선생님을 시작으로 여러 선생님들을 찾아가서 "선생님,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선생님들은 동일한 답을 주셨다."책을 읽으세요".
이후로 학교 도서관에 있는 별별 책들은 다 읽어 봤던 것 같다. 그래서 내 글쓰기 실력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었냐고 질문한다면, 아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도 아직 글쓰기에 대한 갈증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스티브잡스 열풍에서 시작된 인문학 열풍과 더불어, 중학교 시절 해결 되지 않은 욕망과 성공에 대한 욕망이 합쳐지면서, 책을 잘 읽고,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은 커졌다. 논술 수업을 듣고, 어려운 책들을 읽어도 내가 생각했을 때 주변에 글 잘 쓰는 친구들에 비하면 내가 글 쓰는 실력은 형편없다고 느껴졌다.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컸지만, 사실상 글쓰기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나는 미대에 진학했다. 그때부터 글쓰기와 책 읽기는 잠시 멀어졌다. (그래도 어린 시절 책을 읽지 않으면, 불안한 습관이 생겨서 읽지는 않더라도 '읽고 있는 책'을 설정해 놓고, 몇 달에 한 권은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방황을 하다 다시 인문학과 만나게 되었다. 사실 인문학을 시작한 계기도 중, 고등학교 때와 동일했다. 글을 잘 쓸려고, 그걸로 잘 인생 풀리고 싶어서.
다시 글쓰기와 독서를 시작하게 되고,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고 글을 다시 써 가면서, 지난 시간 내가 글쓰기와 책 읽기에 대한 시선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놓치고 있었던 점들을 깨닫고 배웠다.
1. 내 글은 내 심리상태와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조급한 성질 = 조사를 빼먹는 습관, 글을 다시 읽어보지 않는 습관
책임회피형 = 방어적이고 본인 주장이 없는 화법
완벽주의 = 내 글에 혐오감을 느끼고, 용두사미의 결론을 내리는 습관
2. 책에 있던 어휘와 문장에만 집중을 했다.
독서의 포커스가 "책 속의 고급스러운 어휘와 문장을 독서를 통해 터득하겠다"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니 책에 내용과 맥락에 집중하지 않고, 진짜 Text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3.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는 스스로의 질문에 솔직히 답하자면, "스티브잡스가 인문학이 중요하다가 했으니깐", "정용진이 세바시에서 인문학이 엄청 중요하다고 하던데". 어떤 구체적인 이유가 아니라 "옆집에 A가 한약을 먹고 키가 10cm 자랐다고 하는데, 나도 한번 먹어봐야지"와 같은 이유로 글쓰기와 독서를 접근했었다. "그냥 좋은 게 좋으니깐 하자. 어떻게 하다 보면, 나도 좋아지겠지". 내가 왜 배움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고, 타인의 견해에 의존해서 공부를 접근했었다.
과거에는 문장과 단어 암기를 통한 어휘의 성장, 옆에서 좋다고 하니 편승하는 지극히 한국적인(?) 이유에서 글쓰기와 책 읽기를 접근했었다.
하지만, 여러 도움과 가르침을 받고, 짧게나마 사회생활을 해보면서 글쓰기와 책 읽기가 어떤 면에서 필요한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 내가 발견한 인문학이 가져다주는 힘은 맥락을 파악하는 힘이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 교과서 적인 결론처럼 들릴 수 있지만, 경험들을 하면서 어른들은 '행간을 읽는 법'이라고도 표현하는 이 힘이 나에게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한 생계와 관련된 경제가 나와 밀접해지면서 맥락을 파악하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그 속도를 따라잡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갑자기 앤디비아가 전 세계 시총 1위 되었는지, 왜 러시아가 갑자기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또 앞으로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 것인지, 사건 이전 맥락을 모르면 그저 '먼 이야기'로 인식되고 기회의 폭은 작아진다.
두 번째는 진실을 보는 힘이다. 개인 미디어 발달과 알고리즘의 고도화로 우리가 뉴스를 접하는 방식이 점점 개인 선호에 맞춰지고 있다. 오늘날의 미디어를 소비하는 방식이 나에게는 시원하고, 만족스러울 수는 있지만, 진실과는 멀어지거나 미디어 생산자의 의견에 의존하는 경우가 생겨날 수 있다. 실제로 한쪽에서는 대통령이 내일이라도 탄핵될 것 같이 영상을 만들고, 한쪽에서는 곧 야당 대표가 감옥에 갈 것처럼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 그럼 그 두 채널을 교차해서 보고 중간을 맞추는 것이 답일까? 아니다. 그것도 위에 내가 한 말과 일맥 상통한다. 맥락을 파악하고, 숫자를 통해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을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과정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글쓰기와 독서를 통한 연습이 필요하다.
여기까지 내가 글쓰기와 독서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와 시행착오 과정에서 얻은 인사이트들을 두서없이 적어 봤다. 사실 사람이란 게 다 그렇게지만, 내가 책과 글쓰기를 대하는 자세와 기대점이 어떤 경험을 하냐에 따라 또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부족하지만, 내가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있는 거 보면, 책과 글쓰기는 나를 해치는 방향으로 인도하지는 않을 것 같다.
서두르다 체하지 말고, 천천히 나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