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치유농업 전문가로 가는 길
제5장 치유농업 전문가로 가는 길
2019년 유럽에서 돌아온 내 가슴은 새로운 열정으로 뜨거웠다. 나는 그곳에서 단순한 농업 기술이 아닌,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며 서로를 살리는 삶의 방식을 보았다. 하지만 돌아온 현실 앞에서, 그 뜨거운 열정은 이내 길 잃은 불씨처럼 위태로워졌다.가슴속에는 ‘사람을 살리는 농장’이라는 거대한 그림이 그려졌지만, 막상 그 그림을 현실의 땅 위에 펼쳐낼 구체적인 도구도, 체계적인 언어도 내게는 없었다.
열정만으로는 부족했다. 내가 겪은 감동을 다른 이들에게 설득하고, 나의 꿈을 함께 꿀 동료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을 담아낼 단단한 ‘그릇’이 필요했다. 수십 년간 컨설턴트로 살아왔던 나는, 이제 다시 배우는 자의 낮은 자세로 돌아가야만 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강단이 아닌 책상으로, 전문가가 아닌 학생으로 돌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이 장은 그렇게, 뜨거운 가슴에 차가운 지성을 더하고, 뜬구름 같던 영감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 분투했던 나의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1. 새로운 출발, 자격취득과 첫걸음
네덜란드에서 이어진 인연, 첫 번째 문을 열다
모든 것의 시작은 네덜란드 견학에서 맺어진 소중한 인연 덕분이었다. 나는 그 인연을 통해 네덜란드 유학파가 운영하는 치유농업 전문 교육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10년 넘게 컨설턴트로서 강단에 서서 누군가를 가르치던 내가, 다시 학생이 되어 책상에 앉는 것은 낯설고 어색한 일이었다. 그러나 배움에 대한 갈증은 모든 어색함을 밀어냈다. 교육과정은 내가 유럽에서 막연히 느꼈던 감동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들의 시스템이 어떤 철학 위에서 작동하는지를 체계적인 언어로 풀어주었다.
그 배움에 심장이 달린 것은 경북 경산의 ‘바람햇살농장’을 방문했을 때였다. 지적 장애를 가진 자녀들과 부모들을 위해 오직 사랑만으로 직접 일군 그곳은, 단순한 농장이 아니었다. 흙과 손이 만나는 곳마다 희망이 자라고, 뿌리내린 식물들 사이로 삶의 기운이 피어오르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정원’이었다. 발달장애를 가진 한 청년이 묵묵히 방울토마토 곁가지를 따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 뒷모습을 대견함과 안도가 뒤섞인 눈으로 바라보던 어머니의 표정. 나는 그 풍경 앞에서 ‘치유는 누군가를 위한 선물이면서도, 결국은 자신을 위한 회복’이라는 진리를 온몸으로 깨달았다.
‘사는 말’을 하기 위한 강단의 시작
교실에서 배운 이론과 농장에서 느낀 감동이 내 안에서 하나로 섞여가던 2020년, 강화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업·농촌의 가치와 치유농업’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이전에도 수없이 강단에 섰지만, 이번은 완전히 달랐다. 나는 더 이상 책 속의 지식을 전달하는 이론가가 아니었다. 유럽의 현장과 국내 사례를 두 눈으로 보고, 두 발로 걷고, 두 손으로 만진 사람이었다. 내 말에는 흙냄새가 묻어 있었고,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강의가 끝난 후 한 노년의 농업인이 다가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선생님 말씀이 바로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요.” 그 순간, 나는 내 말이 비로소 이론을 넘어 사람의 마음에 닿는 ‘사는 말’이 되었음을 느꼈다. 이 강의를 시작으로, 나는 점차 ‘현장형 치유농업 전문가’로 불리게 되었다.
배우는 자의 낮은 자세, 치유농업사 국가자격 도전기
현장을 누빌수록 역설적으로 이론적 기반에 대한 갈증은 더욱 깊어졌다. 나는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2021년, 치유농업사 국가자격에 도전했다. 그러나 첫 도전은 서류 전형 탈락이라는 뼈아픈 실패로 끝났다. ‘컨설팅 경력 10년’이라는 타이틀에 안주하며 스스로를 과신했던 내 안의 오만을 후려치는 회초리였다.
그 실패는 내게 겸손과 성찰을 가르쳤다. 다음 해, 나는 최고농업경영자 과정을 먼저 이수하며 나를 증명했고, 다시 도전하여 마침내 한경대학교 양성과정에 합격했다. 예순이 넘은 나이를 잊고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 142시간의 교육을 받았다. 학습부장을 자처했고, 까마득한 후배뻘인 동기들과 머리를 맞대고 법규를 외우고 이론을 토론했다. 현장 강의와 컨설팅으로 책상에 앉을 시간이 부족했던 나는, 직접 만든 오디오 파일을 들으며 길 위에서 수험 준비를 해야 했다. 1차 시험은 무난히 통과했지만, 진짜 싸움은 2차 논술 시험이었다. 숨 막히는 정적이 감도는 시험장. 시작 종이 울리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에이!” 하는 탄식과 함께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답안지를 내고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내 머릿속도 하얘졌다. 약 20분간 지문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주위에서 들려오는 펜 소리만이 내 심장을 초조하게 두드렸다. ‘정신 차리자.’ 겨우 마음을 다잡고 시험이 끝나는 순간까지 마지막 한 자까지 답안지를 채웠지만, 시험장을 나서는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불합격이구나.
합격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고, 마침 아들과의 베트남 여행을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이륙 직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합격자 발표 사이트를 눌렀다. ‘합격’. 겨우 커트라인을 넘은 점수였지만, 그 두 글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자격증 한 장이 기뻐서가 아니었다. 실패를 딛고 다시 배움을 택했던 나의 용기가, 나이와 경력을 내려놓고 배우는 자의 자세로 돌아갔던 그 시간이,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봐 준 아들 앞에서 마침내 얻어낸 작은 증명이, 내게는 그 어떤 성공보다 값진 위로였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나는 베트남의 밤하늘 아래서 아들과 함께 뜨거운 축하주를 나누었다.
2. 책이 나를 이끈다, 철학이 삶이 되다
퍼머컬처가 내게 ‘어떻게(How)’ 농장을 일굴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도구를 쥐여주었다면, 그 도구를 어떤 마음으로, ‘왜(Why)’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깊이를 더해준 것은 바로 책들이었다. 배움의 여정 속에서 만난 몇 권의 책들은 흩어져 있던 나의 생각과 경험을 하나의 단단한 세계관으로 엮어주었고, 어두운 밤바다의 등대처럼 내가 나아갈 길을 환히 비춰주었다.
그 첫 번째 등대는 토비 헤멘웨이의 『가이아의 정원』이었다. 치유는 어디서 오는 걸까? 사람을 회복시키는 농장은 어떤 철학을 품어야 할까? 그런 질문에 갈증을 느끼던 내게 이 책은, 정원은 가꾸는 ‘장소’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속삭여주었다. 저자는 인간 중심의 오만한 시선을 허물고, 지구가 살아있는 하나의 유기체임을, 우리가 자연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을 통해 우리가 회복되어야 함을 일깨웠다. 치유농장이란 특정 프로그램의 집합이 아니라, 사람과 흙, 식물과 곤충, 계절과 마음이 함께 살아가는 ‘관계의 생태계’를 디자인하는 예술이라는 것. “거대한 마스터플랜보다, 한 평의 정원을 세심히 돌보는 것이 더 큰 혁신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나는 거창한 계획 대신 한 뼘 텃밭에서, 한 그루 허브를 심는 일에서 치유의 본질을 찾기로 했다. 이 책은 ‘치유농업이란 사람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일’이라는 나의 첫 번째 철학적 기둥을 세워주었다.
그다음 나를 뒤흔든 것은 조시 티켈의 『대지에 입맞춤을(Kiss the Ground)』이었다. 이 책은 농업 기술서가 아니라, 땅과의 관계를 회복하자는 시인 같은 외침이었다. “땅을 돌보는 것은 곧 나를 돌보는 일이다.” 이 문장을 곱씹으며 농장을 걸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땅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전엔 어떤 작물을 심고 얼마의 수익을 낼지를 계산했다면, 이제는 이 흙이 숨 쉬고 있는지, 이 땅이 기뻐하는지를 먼저 느끼려 했다. 이 책이 내게 던진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우리는 매일 밥상 위에서 지구를 바꾼다.” 그때부터 나의 치유농업은 단순히 몸에 좋은 음식을 넘어, 로컬푸드 기반의 저탄소 힐링푸드 프로그램으로 확장되었다. 흙을 만지는 행위가 곧 나를 돌보는 치유의 시작이며, 그 흙에서 난 것을 먹는 행위가 지구를 살리는 입맞춤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의철 작가의 『기후미식』은 그 철학에 시대적 사명감을 더해주었다. “우리는 매일의 식사를 통해 지구를 바꾸고 있다.”는 문장은 충격이자 통찰이었다.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담론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구체적인 실천이 바로 ‘밥상’에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무경운, 퇴비, 제철 로컬푸드, 저탄소 조리법. 치유농업은 단지 개인의 건강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에 응답하는 윤리적 실천 공동체가 되어야 했다. 내 농장의 밥상은 더 이상 단순한 힐링 푸드가 아니었다. 그것은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생명을 살리며, 관계를 회복하는 작지만 단단한 저항이자, 회복의 선언이 되었다.
댄 바버의 『제3의 식탁(The Third Plate)』은 그 선언에 따뜻한 사회적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지난 밥상을 돌아보았다. 서울에서 효율만을 위해 허겁지겁 때우던 ‘연료 보충’으로서의 제1의 식탁, 귀향 후 가족과 이웃의 온기가 오가던 ‘관계’로서의 제2의 식탁. 그리고 마침내 내가 꿈꾸는 밥상은, 누구든 찾아와 존재만으로 환영받으며 함께 둘러앉는 ‘공동체’로서의 제3의 식탁임을 깨달았다. 치유농업의 본질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제3의 식탁을 차리는 일이었다. 그 밥상 위에는 작물뿐만 아니라 토양, 계절, 땀, 기다림, 웃음, 이야기, 회복, 즉 삶 전체가 올라온다. 우리는 매 끼니 어떤 식탁을 만들지 선택하며, 어떤 세계를 만들어갈지를 결정하는 존재임을 배웠다.
마지막으로 자크 아탈리의 『생명경제로의 전환』은 나의 이 모든 꿈에 ‘지속가능성’이라는 단단한 날개를 달아주었다. 책은 “왜 우리는 생명을 해치는 방식으로 경제를 운영하는가?”라고 물었다.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치유농업이 단순히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넘어, 기존의 성장 중심 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확신했다. 치유농업은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죽이는 경제’가 아니라, 더 깊이 연결되고 순환하며 사람과 흙, 공동체를 함께 살리는 ‘살리는 경제’의 시작점이다. 돈이 목적이 아닌 도구가 되고, 이윤보다 존재의 회복력이 중심이 되는 곳. 그것이 내가 꿈꾸는 치유농장의 모습이자, 생명경제로의 전환이 시작되는 작은 땅이다.
『가이아의 정원』에서 시작해 『생명경제로의 전환』에 이르기까지, 책들은 흩어져 있던 나의 경험과 생각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엮어주었다. 나의 농장은 이제 단순한 텃밭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계를 회복하는 생태계이자, 지구와 입 맞추는 실천의 장이며, 기후위기에 응답하는 공동체이고, 누구에게나 열린 제3의 식탁이며, 생명경제가 시작되는 살아있는 실험실이다. 나는 그 철학의 땅 위에, 이제 조용히 두 발을 딛고 서 있다.
3. 연구자에서 실천가로
실행력의 강화: 퍼머컬처와 연구모임
치유농업사 자격과 책들이 내 머릿속에 단단한 철학을 세워주었다면, 퍼머컬처는 내 손에 흙을 만지고 길을 낼 수 있는 구체적인 도구를 쥐여주었다. 나는 오랫동안 연구자였다. 강의실에서 마이크를 잡고, 현장의 사례를 분석하며 치유농업의 가능성을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내 손은 언제나 펜과 키보드로만 채워져 있었고, ‘알고 있었지만 아직 해보지 않은’ 지식의 공허함이 나를 맴돌았다.
그 근본적인 전환은 내 몸의 가장 깊은 곳에서 시작되었다. 전립선암 진단과 수술, 그리고 이어진 회복의 시간은 내게 치유가 무엇인지를 이론이 아닌 생존의 언어로 가르쳐 주었다. 책에서 배운 지식이 아니라, 텃밭에서 갓 틔운 새싹을 바라보고 내 손으로 기른 채소로 차린 밥상이 내 몸을 다시 살리고 있었다. 치유농업을 설명하는 것과 그것을 살아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나는 마침내 연구자의 책상을 떠나 실천가의 밭으로 걸어 나가야 함을 절감했다.
그 첫걸음은 ‘퍼머컬처(Permaculture)’를 배우기 위한 고된 순례였다. 나는 매주 용인에서 제천까지 왕복 6시간의 거리를 오가며 72시간의 정규과정을 이수했고, 충남 아산에서는 한국형 퍼머컬처인 ‘키친가든’을 배우며 내 농장의 실제 모델을 그렸다. 흙을 만지고 텃밭을 디자인하며, 나는 컨설팅 보고서 수백 장을 쓰는 것보다 더 큰 희열과 자신감을 얻었다. 내 손으로 만든 퇴비가 땅을 비옥하게 하고, 내가 심은 씨앗이 싹을 틔우는 것을 보며, 지식은 머리가 아닌 흙에서 자라남을 깨달았다. 퍼머컬처는 땅을 디자인하는 기술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 안에서 삶을 다시 디자인하는 지혜였다.
그 지혜를 함께 나눌 동료들이 필요했다. 2025년 이른 봄, 나는 뜻을 함께하는 치유농업사들과 ‘퍼머컬처 커뮤니티 케어팜(PCC) 연구모임’을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스터디가 아니라, 우리의 꿈을 가평의 땅 위에 펼쳐낼 공동의 설계도를 그리는 과정이었다. 우리의 여정은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과정과 같았다. 첫 모임에서는 각자의 꿈과 현실을 나누며 미래를 열 씨앗을 심었고(3월 3일), 두 번째 모임에서는 퍼머컬처의 12가지 원리를 배우며 철학의 뿌리를 내렸다(3월 18일). 세 번째 모임에서는 야외로 나가 직접 삽을 들고 열쇠구멍 두둑과 허브 스파이럴을 만들며 희망의 줄기를 세웠다(4월 5일). 네 번째 모임에서는 인지장애 어르신과 청소년 등 대상자의 삶을 헤아리며 맞춤형 프로그램을 설계하며 가지를 뻗었고(4월 15일), 마지막 모임에서는 아이들이 흙에서 밥상까지 생명의 순환을 배우는 프로그램을 구상하며 마침내 환한 웃음의 꽃을 피웠다(5월 17일).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나는 암 수술 후 회복기를 보내고 있었다. 동료들이 화이트보드 위에서 치유 프로그램을 설계할 때, 나는 내 몸의 회복일지를 쓰며 치유를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텃밭에서 자라는 감자싹처럼, 내 몸도 다시 싹을 틔우고 있었다. 내가 겪는 회복의 과정은 연구모임의 논의에 생생한 현실감을 더해주었고, ‘회복’이란 결국 나와 흙, 나와 식물, 나와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이어질 때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체감하게 했다. 어느 날 모임이 끝나고, 한 동료가 말했다. “선생님, 이제 강의에서 말하는 단어가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분석이 많았다면, 지금은 체험이 묻어납니다.” 그 말이 내게는 가장 큰 격려였다. 연구자에서 실천가로 옮겨 가는 내 발걸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강단 위의 나와 밭고랑 사이의 내가 비로소 하나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머리와 가슴, 그리고 손의 통합]
유럽에서 돌아온 나는 '치유농업'이라는 하나의 꿈을 꾸는 몽상가였다. 그러나 이 5장의 여정을 통과하며, 나는 비로소 그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도구와 언어,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춘 실천가가 되었다. '치유농업사'라는 국가자격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공적인 언어'를 주었고, 『가이아의 정원』에서 『생명경제로의 전환』에 이르기까지 책들은 나의 꿈에 '깊은 철학적 뿌리'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배움의 마지막 퍼즐은, '암'이라는 시련을 통해 내 몸이 직접 완성했다. 흙의 감촉이 통증을 잊게 하고, 작은 새싹이 삶의 의지를 북돋우는 그 경이로운 체험은, 결코 이론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몸의 지혜'였다. 머리로 익힌 지식(자격), 가슴으로 품은 철학(책), 그리고 손과 몸으로 체득한 지혜(실천). 이 세 가지가 비로소 하나로 통합되었을 때, 나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제 연장을 벼리는 시간은 끝났다. 다음 장부터는, 이 단단해진 연장을 들고 우리 모두의 집을 짓는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