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흙 위에서 다시, 삶을 일구다

제6장 ; 치유텃밭과 치유음식, 그리고 회복의 시간

by 조영빈

제6장 ; 치유텃밭과 치유음식, 그리고 회복의 시간

유럽의 들판에서 새로운 꿈의 씨앗을 품고 돌아와, 자격증과 책,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그 씨앗을 심을 땅을 막 고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제 타인의 회복을 돕는 실천가로서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삶은,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가장 혹독하고 위대한 스승을 보내왔다.


다른 누구의 밭이 아닌, 바로 내 몸의 밭을 일구어야 할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암’이라는 이름의 낯설고 무거운 씨앗이 내 삶의 한가운데 툭, 하고 떨어졌다. 지난 수십 년간 타인의 성공과 실패, 조직의 성장과 위기를 컨설팅해왔던 나는, 정작 내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을 무시한 채 달려왔다. 결국 멈춰 서야만 했다. 치유 농부를 꿈꾸던 내가, 가장 먼저 절박한 치유의 대상자가 된 것이다.


이 장은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길었던 터널에 대한 기록이자, 내가 그토록 말해왔던 '치유'라는 단어의 의미를,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다시 배우는 과정이었다. 내가 꿈꾸던 치유농장이 다른 누군가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살리기 위한 절박한 생존의 현장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1. 멈춤의 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다


터널의 시작: 불안과 함께 걷는 시간

그동안 나는 늘 타인의 밭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열매를 맺을지, 어떤 방식으로 땅을 일궈야 공동체가 풍요로워질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내 몸이라는 밭을 진지하게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2024년 늦여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몸의 밭에 ‘암’이라는 낯선 씨앗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것은 내 삶의 모든 것을 잠시 멈추게 한 작지만 무거운 씨앗이었다. 모든 것은 2024년 8월, 익숙했던 정기 진료실의 무거운 공기에서 시작되었다. “어라? 이게... 좋아지질 않네요.” 담당 의사의 무심한 듯 무거운 한마디는 내 마음에 불안의 씨앗을 심었다. 12월에 찍은 MRI 결과는 “이상 징후가 보이니 조직검사를 해봅시다”라는 권고로 이어졌고, 그때부터 ‘혹시’ 하는 생각들이 밤마다 잠을 쫓아냈다. 가족에게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내가 겪고 있는 두려움의 무게를 감히 나눌 수 없었다.


2025년 1월, 조직검사를 통해 ‘초기 전립선암’이라는 진단과 마주했을 때, 나는 더 이상 컨설턴트도, 전문가도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생의 막다른 길 앞에 서 있었다. 3개월 후로 잡힌 수술 날짜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힘든 터널이었다. 그 고요하면서도 잔인한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 삶의 맨 얼굴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생각했다기보다, 삶이 얼마나 당연하지 않았는지를 절절히 깨달아갔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남은 시간이 정해져 있다면 사랑하는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들이 떠올랐다. 나는 조용히 펜을 들어 그 마음을 기록했다.


[만약 내게 남은 시간이 정해져 있다면]

나는 지금 전립선암 수술을 앞두고 있다. 초기 진단이지만 ‘암’이라는 단어는 내 삶에 작은 균열을 만들었고, 그 틈 사이로 나는 나도 몰랐던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내, 언제나 내 곁을 지켜준 사람. > 당신에게 너무 많은 경제적 부담을 안긴 것 같아 늘 미안한 마음이 크다. 내가 감당했어야 할 짐을 함께 지게 해서, 때로는 당신의 웃음을 잃게 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그럼에도 묵묵히 나를 안아준 당신에게…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

딸, 네가 선택한 길이 얼마나 험하고도 의미 있는 여정인지 안다. 박사과정을 겪으며 힘들어할 때, 나는 너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지. 그게 늘 마음에 남는다. 하지만 네가 가진 깊이와 성실함은 반드시 너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줄 거야. 너는 내 자랑이다.

아들, 너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하면서도 아버지로서 해준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에 늘 미안함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된 너를 보며, 오히려 내가 배운다. 책임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작년엔 며느리가 우리 가족이 되었고, 올해 초엔 손자가 태어났다. 그 작고 귀여운 생명 하나가 내 마음을 얼마나 따뜻하게 만드는지, 새로운 가족이 내게 얼마나 큰 위안과 용기를 주는지, 요즘처럼 약해지는 마음 속에 그들은 정말 살아갈 이유이자 희망이다.

남은 시간 동안은 이 사랑을 말로, 시간으로, 온기로 전하고 싶다. 더는 미루지 않고, 더는 망설이지 않고. 지금 내가 살아 있는 이 순간, 나는 나의 시간을 선택할 수 있고, 그 시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며 수술 전날 밤을 맞았다. 병원 침대에 누워, 나는 조용히 나 자신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수술 전날, 나에게 보내는 글]

오늘, 나는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어제부터 이어진 금식으로 몸은 조금 허기지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안하다. 긴 시간 동안 걱정하고 준비해온 만큼, 이제는 모든 것을 믿고 맡길 때가 왔음을 느낀다.

수술은 나를 더욱 건강한 삶으로 이끄는 통로가 될 것이다. 나는 두려움 대신 희망을 품고 있다. 건강을 되찾아, 다시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믿는다. 밝은 햇살 아래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하루를 살아갈 그날을 기대한다.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에게 고맙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 자리까지 걸어온 나를 다정하게 다독인다. 그리고 내 몸과 마음이 함께 회복할 수 있도록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수술도, 회복도 모두 잘 될 것이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수술의 날, 고통과 재탄생의 기록

2025년 4월 30일. 그날 아침의 공기는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이동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향하는 동안, 나는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하얀 천장의 형광등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공기,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 모든 것이 오래전 아버지를 보내드릴 때의 그 풍경과 선명하게 겹쳐졌다.

수술실 문 앞에서, 나는 조용히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수면 마취제가 몸으로 퍼져 들어오는 순간, 나는 모든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무거운 옷을 벗어던지고 내 몸을 온전히 의사에게 맡겼다. 진짜 시련은 마취에서 깨어난 회복실에서 시작되었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깜빡이는 기계 불빛만이 보였고,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고립감에 극심한 공포가 밀려왔다. 병실로 돌아온 후 며칠간은 가래와 가스로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숨 한번 제대로 쉬는 것, 시원하게 방귀 한번 뀌는 것이 그토록 절실하고 위대한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65년을 쉼 없이 달려오다 멈춰선 침대 위에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과 마주했다.


[회복 중, 나에게 보내는 편지]

어제 수술을 마치고, 지금 나는 병실에 누워 회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몸은 아직 무겁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맑고 조용하다. 쉬지 않고 달려온 65년, 참 열심히 살아왔다. 가족을 위해, 일터를 위해,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쉼 없이 걸어왔다. 돌이켜보면 후회는 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나에게 너무 엄격하지 않았을까? 한 번쯤, 스스로를 토닥이며 쉬어가도 괜찮았을 텐데.‘ 이제야 비로소 나를 바라본다. 아프고 나서야 들리는 내 안의 목소리. 그래서 오늘은 조용히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정말 수고 많았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너를 안아주고 싶어. 이제는 너 자신을 위해, 조금 더 다정하게 살아도 돼."

죽 한 그릇 앞에서 아버지를 만나다

수술 5일 차 아침. 나흘 만에 처음으로 미음이 아닌, 분홍색 식판에 담긴 흰죽을 받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 평범한 죽을 바라보는 순간, 모든 기억의 강물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1994년 3월,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힘겹게 숨을 쉬시면서도 “얘야, 집으로 가자” 말씀하셨던 아버지.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온 가족을 머리맡에 앉혀두고 막걸리 한 사발을 청하셨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한 잔씩 돌리신 뒤, 모든 것을 정리한 사람처럼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그때 나는 장남이면서도 병실을 자주 지키지 못했다. 그 무거운 시간을 내내 지켜준 것은 형 같은 동생이었다.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사무치는 그리움에, 죽 한 숟갈에 뜨거운 눈물이 섞여 떨어졌다.


나는 깨달았다. 아버지가 돌아가고 싶어 했던 그 ‘집’이 바로 내가 만들고 싶었던 치유농장의 원형이었음을. 내 생의 끝은 병원의 차가운 침대가 아니라, 아버지처럼 흙냄새나는 자연 속에서, 사랑하는 이들 곁에서 존엄하게 마무리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 그 소망이 나를 이 길로 이끌었고, 지금 이 죽 한 그릇이 나를 다시 살게 하고 있었다. 병상의 나는 그렇게, 비로소 아버지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퇴원 전날: 희망의 문을 열며

열흘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날 밤, 나는 희망의 문을 열 준비를 했다.


[내일, 퇴원을 앞두고]

내일이면 병원을 나선다. 이 침대 위에서 보낸 시간들, 그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생애 처음으로, 나는 나를 위해 멈추었고, 나를 위해 누웠으며, 나를 위해 아팠다. 지난 6개월은 65년 인생 중 가장 불안하고 긴장된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을 통과했다. 피하고 싶은 시간을 정면으로 마주했고, 결국 그 끝에서 다시 살아 있는 나를 만났다. 몸이 조금 가벼워졌고, 마음은 더 단단해졌다. 이제는 이곳을 떠나 내 삶의 자리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다. 병원 문을 나서는 발걸음엔, 불안이 아닌 희망이 함께할 것이다. 새로운 삶이, 더 건강하고 따뜻한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안다. 그리고 그 삶은, 분명 이전보다 더 빛날 것이다.


창밖을 보며 내 집 정원을 생각했다. 잔디는 무성해졌을 것이고, 백합은 놀라울 만큼 자라 있을 것이다. 그 작은 마당에 가득할 생기를 떠올리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이제 나의 삶으로, 불안의 그림자를 훨훨 털어버리고 다시 흙을 밟으러 간다. 그 길 위에는 분명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꿔나갈 새로운 희망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제2부: 길 위에서 길을 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