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의 행동 동기-회피 동기에서 접근 동기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내가 충격받은 것과 당시 상황이 그다지 관련이 없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대략적으로 말하면, 급우 A와 B를 좀 떨어져서 보고 있는데, B가 A에게 하는 행동이 좀 심하게 비굴해 보여서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옆에 있던 또 다른 급우 C에서 B가 왜 저러냐고 물었더니 충격적인 답이 돌아왔다.
"A가 싸움 잘하잖아. 넌 A가 우리 반 싸움 1등인 것 몰랐어?"
'싸움 잘한다'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고, 그 의미가 그렇게 체계적으로 친구들 사이에 룰로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도 C의 보충 설명을 듣고서야 알았다. 난 C에게,
'A랑 B가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싸움 잘하는지 못하는지 어떻게 알아? B는 왜 싸워보지 않고 자기가 진다고 생각해?' 같은 바보 같은 질문을 한참을 했다.
'싸움 등수'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동물의 왕국>에서 봤던 동물들이 서열 다툼하던 것이 떠오르면서 친구들이 그 동물처럼 느껴졌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엄석대와 그 무리를 보는 전학생이 당시 나였다. 싸움의 목적이 높은 서열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후로 그런 친구들과 거리를 두게 됐다.
동물의 행동을 취할 때 작동하는 동기는,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하는 접근 동기와, 무언가 하기 싫어서 하는 회피 동기가 있다고 한다. 이 둘은 명확히 반대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는 것은 식욕을 채우기 위한 접근 동기인 동시에 굶어 죽지 않으려는 회피 동기이기도 하다.
X세대 이전과 이후를 행동 동기를 적용해 본다면, 이전 세대는 회피 동기가 주였다면, X세대부터는 접근 동기가 훨씬 중요해졌다고 생각한다. 싸움 잘하는 사람의 폭력을 피하려 하기보다는, 부당한 요구를 당당히 거부해 내 자존감을 세우려는 접근 동기가 더 강해진 세대가 X세대 이후다.
학창 시절 폭력적 상황에 놓인 때가 더러 있었다. 덩치가 좋았던 탓에 또래에게 당한 일은 없었지만, 선배나 선생님, 선임들로부터 위협받는 일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자세는 그들이 원하는 반대를 보여줬다. 때려서 말을 잘 들으면 더 때릴 것이기에, 때리면 그들이 싫어할 일을 더 해서 그들의 의지를 좌절시켰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렇게 살았고 군복무도 했지만, 다행히 내 이런 의지가 꺾여본 일이 없다. 운이 좋았던 탓도 있지만 90년대 초반부터 널리 퍼진 'X세대'라는 단어 덕도 크다고 생각한다. 나의 대척점에 있던 사람들 중에 나를 꺾어놓고 말겠다고 오기를 부렸을 사람도, "X세대라서 그래."라는 말에 포기했던 것 같다.
그래서 '거침없는 낙오자"가 X세대의 수식어가 된 것 같다.
그는 거침없는 낙오자다. 그래서 당당하다. 승리를 거둘 자격이 있다.
대중음악 평론가 강헌과 가수 신해철과의 인터뷰 중에서 서태지에 관한 대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