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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ver young Oct 22. 2023

난 원래 취지를 따랐을 뿐

내 맘대로 살아봤던 중2의 추억

'중2병'이란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의 중2 때 기억은 어느 때보다 밝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중2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반장을 했던 해, 그리고 '전교 1등'이란 타이틀을 처음 달아본 해로 기억된다. 난 다른 사람들을 통솔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아 반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중1 때 학교 도서관에 도우미를 하면서 알게 된 도서관 담당 선생님(양순화 선생님)이 2학년 담임이 되면서, 선생님이 나를 반장으로 의도적으로 만들었다. 임시 반장으로 나를 정하고 팍팍 밀어주는 모습을 보이니, 내가 스스로 경험도 없고 해서 못하겠다고 빼긴 했지만 속수무책(?)으로 반장이 되어버렸다. 


뜻하지 않았던 일이지만 그래도 내심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중2였으니까. 전교 1등도 그래서 하게 된 것 같다. 성적이 최상위권이긴 했지만 '점수 더 받기 위한 공부'는 싫어해서 1등을 차지한 적은 없었다. 당시는 매달 월례고사가 있었는데, 전교 1등을 하려면 거의 올 백점을 받아야 해서 쓸데없어 보이는 것도 다 외워야 했다. 구구단을 쓸모없다며 외우지 않은 내 성격에 교과서에 나온 쓸모없는 표까지 다 외우는 것은 못할 짓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반장이 되고, 친구들에게 주목을 받다 보니 할 수도 있는 짓이 됐다. 1학기에 두 번 정도 전교 1등을 해서 조회 시간에 단상에 올라가 우등상을 받았는데, 그 후는 답을 맞히면서도 이 따위 것을 기억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교 1등 하기 위한 공부는 하지 않았다. (믿거나 말거나) 


공부를 하는 것은 내 지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 원래 취지다. 억지스럽고 하찮은 것을 물어보는 한심한 문제까지 맞혀서 시험 성적을 잘 받는 것이 아니다. 난 공부의 원래 취지를 따랐을 뿐.


 반장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학교 어딜 가도 '반장'이라고 불러주고, 그래서인지 선생님들 중에 학생에게 짖꿎은 장난이나 과한 체벌 등 불쾌감을 주는 선생님들에게 항의를 할 수 있게 됐다. 어찌 보면 선생님들이 내 눈치를 보게 만든 것인데, 이 중에는 나를 반장으로 만들어주신 담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르지 않는 내가 당시 20대 중반의 여자 선생님에겐 다소 버거웠을 것이다. 건강도 좋지 않은 편이라 결근도 잦았다. 그러던 중 가을 체육대회 준비를 하다가 선생님이 "반장 네가 알아서 다해."라고 하셨다. 반 대항 대회라 대표 선수를 뽑아야 하는데 아이들이 협조를 잘 안 해주니 다소 홧김에 지른 말이었다. 처음엔 나도 급우들도 당황했지만 평소에 잦은 결근을 하신 탓에 선생님 없이 일을 해본 일이 몇 번 있어서 못할 것도 없다고 여겼다. 


 난 무슨 자신감에서인지 선생님이 조금 하다가 만 것을 없던 것으로 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우리 반 대표로 경기에 나갈 사람을 완전히 자발적 의사에 맞긴 것이다. 선생님은 기존에 달리기를 잘하는 것으로 알려진 애들을 내보내려 하니까 그 친구들이 어디가 아파서 못한다는 식으로 거부를 해서 일이 어그러졌기에 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체육대회의 원래 취지는 그날 하루 운동장에서 신나게 노는 것이지 다른 반보다 점수 많이 받아 1등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날 대표로 나오는 애들이 똑같이 나오다 보니 그들은 나가고 싶은 의욕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나가고 싶은 애들로 선발을 하고, 겹치는 경우 가위바위보나 당사자 간에 원하는 방법으로 정리해서 선발을 마쳤다. 그리고 응원 단장도 하던 친구가 아닌 하고 싶은 친구로 정했다. 얼떨결에 선발 기준을 정했지만 다행해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고, 단지 '이래도 될까'하는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체육대회 당일 우리 반은 전체가 스타가 됐다. 거의 모든 종목에서 독보적 꼴찌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애 첫 대표 선수 경험을 하는 친구들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격려를 많이 받았다. 어쩌다 꼴찌를 면할 것 같은 친구가 있으면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해줬다. 어차피 종합 순위는 꼴찌라 신경 쓸 일이 없고 끝에서 한 명만 제쳐도 1등 한 선수보다 더 좋아했고 응원하는 친구들도 덩달아 기뻐했다.


그렇게 체육 대회 모든 경기가 끝나고 시상식을 하는데, 우리 반은 전원 해당 사항이 없으니, 응원석에 모두 모여 응원단장 리딩에 따라 우리끼리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2학년 6반, 1등'이라는 소리가 스피커로 나왔다. '최우수 응원상'인가 뭔가 급조된 상인 것 같았다. 내가 반장 자격으로 얼떨결에 시상대에 올라 상을 받고 내려왔더니, 학생주임 선생님께서 우리 반이 대회 내내 활기차게 응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특별히 만든 상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내가 한 일은 개혁이니 혁신이니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체육대회 원래 취지를 따랐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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