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orever young Oct 22. 2023

진심이 통했던 중재의 기억

'뿌듯함'이 뭔지 느끼게 해 준 일

살다 보면 다양한 모임을 가지게 되는데, 당연한 일이지만 모임에 따라 마음이 편한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 원인을 생각해 보면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겐 좀 특별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모임 인원수. 나에겐 10명 이내의 모임이 편하고, 그 이상이 되면 불편해진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인간관계에 대한 다양한 조언이 있지만, 인구수가 이렇게 중요한 요소일 줄은 몰랐다. 이것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를 비교하면서 무리의 인원수를 비교한 내용을 보고 착안해 내 주변의 모임을 관찰해 보다 얻은 결론이다. 완전한 나의 뇌피셜이므로 근거는 희박하다.


이 관점이 잘 들어맞는 것 중에 하나로 대학교에서 하는 고향 고등학교 동문회다. 부산에서 한 학년 8백~9백 명인데, 대학이 한 학년 3백 명이라 동문회를 하면 딱 5~7명 사이가 된다. 자주 보기 힘든 동문까지 합해도 10명이 안된다. 그래서인지 다른 모임보다 편하게 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됐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하니, 모교의 이웃에 있는 여고와 조인트 동문회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래봐야 신입생 한 명, 여학우가 드문 이공계 대학이라 딱 그 정도였다. 그 신입생 후배는 화학공학과였다. 그렇게 가끔 하는 동문회에서 보는 정도로 알고 지냈는데, 어느 말 학교 공지에 그 여학생이 징계를 받았다는 내용이 올라왔다. 의아해서 그 후배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아무것도 모른 체 화학공학과에 들어왔는데 두 학기를 지내보니 수학과로 전과해야겠다고 결심을 했고, 그래서 누구보다 수학 수업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지금 수강 중인 일반 수학 101 과목에 목숨을 걸다시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과목 교수님(박종국 교수님)도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교수님이 결강을 해서 다른 교수님이 수업에 들어오셨는데 “박종국 교수님 그만두셨어, 앞으로 계속 내가 수업을 하게 될 거야”라고 하셨다. 이 말은 사실은 농담이었고 다른 학생들은 농담인 줄 바로 알아들었는데, 혼자만 그 말이 진짜라고 알아들어서 너무나 낙심이 컸으며, 그래서 다음 날 학교 게시판에 이전 박종국 교수님 다시 오게 할 수 없느냐, 새로운 교수님 수업은 도저히 못 듣겠다고 글을 올렸다. 그것을 본 수학과 학과장 교수님이 직접 연락해서 "새로운 교수의 문제점을 말하라. 적절한 이유가 아니면 너는 우리 학과의 교수를 부당하게 모욕한 것으로 징계하겠다."라고 했고. 어쩔 줄 몰라 시간만 보내다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라고 말해줬다. 이 후배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징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과장을 만나 오해를 일으킨 부분을 설명드렸다. 똑같은 말도 듣는 사람의 지위나 자리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밀란 쿤데라의 <농담>이란 소설이 여기에 딱 맞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학과장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적절한 일을 한 것을 인정하지만, 그 결과가 수학과로 전과하고자 하는 학생의 마음을 접게 만들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나의 중재가 성공해서 그 후배는 전화 위복으로 수학과 교수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전과를 했고 졸업까지 했다. 


대립된 양쪽의 주장의 외양만 볼 것이 아니라,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합의를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시작이 된다. 이 사안에서 후배는 교수에게 모욕이 될 수 있는 글을 공개된 게시판에 올린 잘못을 했지만, 학문에 대한 열정에서 나온 것이기에 학과장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학과장도 학생의 잘못된 행동을 꾸짖고 처벌할 수 있지만, 그것이 학생의 공부를 막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합리적 대안으로 학생을 이끌었다. 이 일의 마무리는 후배를 수학과 학과장실로 데리고 가서 세 명이서 마주한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학과장이 후배에게 징계로 인한 불이익은 전혀 없을 것이고, 전과의 절차는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말했을 때, 그때의 따뜻한 분이기. 나에게도 큰 뿌듯함을 느끼게 해 준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럽고 억울해서 펑펑 울었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