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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ver young Nov 06. 2023

이과 남자의 문과 까기

남의 인생을 연구하느라 자기 인생을 바치는 것은 이해불가

니체 연구의 권위자입니다.


철학자들끼리는 누구 철학을 연구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수학에서 "오일러 연구의 권위자입니다." 이런 말은 없다. 물리학에서 파인만 연구로 학위가 나올 일은 없다. 과학사 전공은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것은 과학이 아니다. 철학자를 연구했으면 철학사학자지 철학자가 아니다. 문학에서도 셰익스피어 연구자가 문학인인가? 그런 것 연구할 시간에 자기 작품을 쓰는 게 맞지 않나?


옛날의 대가가 타임슬립으로 현재로 온다고 하자. 그들의 지적 능력 말고 사망한 시점의 지식만으로 한다면, 피타고라스는 대학 입학이 어렵고, 가우스, 뉴턴은 학부생, 오일러면 학부 졸업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들을 너무나 존경하지만 그들에게 배울 것보다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많다. 허준이 지금 세상에 와서 환자를 진료할 수 없고, 튜링이나 폰노이만이 현재 컴퓨터를 다룰 수 없다.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거인들의 어깨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If I have seen fa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

그런데 아직 논어, 맹자, 플라톤, 헤겔 연구하는 것이 학문일까 싶다. 그들은 비행기도 없고, 인터넷, 인공지능이 없을 때 자신의 깨달음을 지적 유산으로 남겼다. 물론 지금도 참고가 될만한 좋은 내용이 많다. 그런 것을 공부하는 것은 취미 활동이면 될 것 같다. 뉴턴이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더 멀리 본 것처럼 바라보는 것이 학자의 자세가 아닐까? 어깨를 빌어준 거인을 존경하지만 거인들은 자기 발아래에 두고 있다는 말이다. 왜 인문학자는 대가들을 자기 발아래에 두지 못하고 스스로 그 발아래에 머물러 있는 것을 학자의 자세라고 할까? 학자로서 평생을 남을 연구하는데 보낸다는 것, 남의 인생 연구에 자기 인생을 바친다는 것, 이해하기 어렵다. 


자기 군대 작전 통제도 못 하는 군대 만들어 놓고, "나 국방장관,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드럭 거리냐


라는 말처럼, 현재의 자살 문제, SNS, 스마트폰, AI 문제에 의견이나 생각해 볼 문학 작품 못 만들면서 철학자고 문학연구자라고 하면...


거인의 어깨가 아닌 발밑에 들어가는 이유


인문학계는 끌어주고 밀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자리를 보존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공계도 그렇지만 조금 덜 한 것 같다. 능력치가 비교적 객관적으로 나와서, 뛰어난 사람을 짓밟기 어렵고 무능한 사람이 실력을 감추기 비교적 쉽지 않다.

 

영화 <넘버 3>에서 송강호가 똘마니들에게 하는 말, 일면 '무대뽀 정신'의 일부

송 :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헝그리정신이야... 헝그리... 배가 고프다는 뜻이지.
       ...
     현정화 걔도 라면만 먹고 금메달 3개씩이나 땄어
똘 : 임춘애입니다. 형님.
(일방적 폭행)
송 : 니들 내 말 잘 들어. 내가 하늘이 빨간색 하면 그때부턴 무조건 빨간색이야! 내가 현정화라 그러면 무조건 현정화야. 내 말에 토. 토. 토... 토다는 새끼는 전부 배반형이야 배반형. 배신!!!


인문학자들의 태도가 여기의 똘마니 같아서가 아닐까 한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소재가 됐던, 성균관대학교 입시 문제 출제 오류 사건에서,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 한 수학과 교수를 윗사람 교수와 총장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쫓아냈다. 그 수학과 교수는 이 일로 재판을 받으면서 재판장이 틀린 것을 지적해서 또 판사에게 존경심이 없다고 불이익을 받는다. 그래서 결국 석궁을 들고 판사를 찾아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객관적 사실을 말하는 이과 사람과 상하관계와 권위로 억압하는 문과가 부딪힌 사례인 것 같다.


사실과 진실을 담으려면 사용하는 말의 정의(definition)부터 일치시켜야 함에도 문과에서는 이 작업을 생략하고 주장부터 하는 경우가 흔하다. 유시민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에 소개한 파인만의 일화에서 처럼, 개념 정의는 하지 않고 자기만의 언어로 주장부터 하는 것도 이와 관련 있지 않을까? 정의는 권리가 있는 윗사람이 하는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사용하는 말의 정의를 힘 있는 자가 한다면 '정의는 강자의 논리다.'라는 말에서 '정의'의  영어는 justice면서 definition도 된다. 이과 사람이 가장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논리의 옳고 그름을 따질 때, 그것을 주장한 사람의 지위부터 살피는 것. 이런 것은 학문이라 할 수 없다. 학문의 즐거움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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