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습니다
혹시 결혼하겠다고 했을까?
갑작스러운 학교장의 결혼 권유는 뜬금없었다.
하지만 당시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스멀스멀 '얼른 결혼하고 싶다'라는 욕망이 솟아나고 있었다. 하필이면 4월 5일에 셋째 형님(여자 친구의 오빠) 결혼일이어서, 인륜지대사를 1년 두 번 치른다는 것이 어려운 일일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자 친구와의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방년 스물셋의 꽃다운 나이인 여자 친구와의 이른 결혼은 내 인생 최고의 어젠다(agenda)로 등장했다. 이를 어찌해야 할지 나는 혼란스럽고 고민이 많아졌다.
드디어 박 목사님과 면담했다.
오랫동안 내가 교회에 출석했기에 나의 형편과 사정을 낱낱이 아시는 목사님께서는 이미 내 고민을 알고 있는 듯 평안히 미소 지으시며, 내 얘기에 귀 쫑긋 세우셨다. 잠시 나의 얘기를 듣는 듯하시더니, 중간에 내 말을 끊고 이내 짧고 명쾌하게 말씀하셨다.
“김 선생님, 두 분은 만 18세 이상이니 부모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습니다. 정 선생님께서 동의하신다면 결혼하셔도 됩니다. 제가 정 선생님과 면담해 보겠습니다.”
겨우 5분 면담 결과, 내린 목사님의 결론이었다.
순간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결혼을 권유하셨는데, 목사님께서는 아예 “결혼할 수 있다. 정 선생님과 면담 후 동의한다면 결혼해도 된다.”라고 하셨으니. 이제 공은 여자 친구에게 넘어갔다. 여자 친구와의 면담 결과에 따라 결혼 여부가 결정된다.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우리는 당황했다. 여자 친구와 목사님이 어떤 얘길 나눌지 자못 궁금했다. ‘나와의 면담이 5분 정도였으니, 여자 친구와의 5분 면담 후에는 결혼 여부가 결정되는 건가?’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슴속 초조함을 애써 눌렀다.
박 목사님께서 여자 친구를 불렀다. 여자 친구의 놀란 얼굴은 노래졌다. 내 심정도 노랗게 타들어 갔다. 여자 친구에게 알 수 없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하였다. 심한 부담감이 다가오더니 엄청 가슴이 짓눌렸다.
그때 목사님과의 면담을 생각해 보니 지금도 놀랍기만 하다.
면담 시간은 길어졌다. 한참 후, 30분 정도 지나 여자 친구의 면담이 끝났다. 여자 친구에게 뭐라고 묻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물어야 할지도 몰랐다. 어떤 얘기를 나누었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당시 내 마음으론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혹시 결혼하겠다고 했을까?’ 신규교사 발령받은 지 채 한 달도 안 지났는데, 갑자기 결혼 문제로 면담이라니 황당했다.
그 후 박 목사님께서는 알 수 없는 표정과 묘한 미소를 지으셨다. 우리 두 사람의 시선을 피하시며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박 목사님께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경천동지(驚天動地)의 깜짝 놀라운 결과를 발표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