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참, 다른 별에서 온 아이들이지. 얘들아! 하루빨리 한국말을 배워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날아다니며 맘껏 조잘거리길 바란다.'
나는 그런 바람을 '날아라 참새반'이라는 학급 이름에 담았다.
딴 별 아이들은 1학년 2명, 2학년 2명, 3학년 1명이다. 오빠·여동생인 남매와 누나·남동생인 남매가 있었고, 여학생이 한 명이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재위탁 학생으로 60일간 한국어를 배웠다고 했다.
출신 나라도 달랐다. 캄보디아 2명, 카자흐스탄 2명, 키르기스스탄 1명이다.
서로 소개하고 인사를 나누는 시간!
첫 만남이지만 한국어를 몰라서 그런지 아이들의 침묵이 길어진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나는 자연스레 휴대전화기의 통역 앱(application)을 열었다. 먼저 러시아어로 세 명의 아이들과 간단한 인사말을 주고받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이 호응해 주었다. 커버 화면을 보며 내 말을 보고 듣고, 재치 있게 마이크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이어서 나머지 두 명의 학생을 위해 통역 앱을 작동시켰는데, 캄보디아어는 없었다. 재빨리 구글 번역 앱에서 크메르어를 찾아 대화했다. 나름대로 만족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이제 좀 더 마음을 열어가야 한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벌써부터 심각한 어려움이다. 별에서 온 특별한 아이들에게 한국어는 너무 어렵다. 그러니 한국별에서 한국 학생들과 소통하지 못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용기 내어 손짓, 발짓하며 표현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최소한의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별 아이들도 당연히 한국의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감정, 느낌, 욕구를 가졌을 텐데, 그래서 쉬지 않고 말하고 움직일 텐데 그럴 수 없다.
내가 이주배경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아이들에게서 공통으로 느끼는 마음이다. 그들은 학교에서 한국 학생들을 피해 나 홀로 시간을 외롭게 갖는다. 때로는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한국어를 아예 모르니 무시당할 수밖에 없다. 얼른 한국말을 배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또한 돈 벌러 한국에 온 부모님마저 한국어가 서투르다. 최소한 가정에서 한국어 학습 지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심리적 지지선마저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이들에게 한국은 공포(恐怖) 일 수밖에 없다.
일선 학교의 담임 선생님들은 이 특별한 아이들의 어려움을 잘 알기에 한국어 공유학교에 위탁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섯 명의 아이들에게 다섯 가지 색깔로 한국어를 덧칠하려고 한다. 1학년 두 명은 한국어 출발점이 너무 달라서 똑같은 색을 칠할 수 없다. 한 명은 한국말을 잘못하지만 읽고, 쓰기는 잘한다. 다른 한 명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눈만 말똥말똥하다. 2학년 두 명도 마찬가지이다. 한 명은 재위탁 학생으로 한국어를 배웠고, 다른 한 명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아이이다. 3학년 한 명은 한국에서 태어났을까? 제법 한국어를 아는데, 캄보디아에서 4년 지내다 다시 한국에 와 한국말을 다 잊어버렸다. 그래도 제일 한국어를 잘할 수 있는 아이이다.
학년도 다르고 출발점 수준이 다른 아이들이기에 한국어 교육은 어렵다. 이주배경학생들은 학생 개인의 가정 형편, 한국어에 대한 접촉 경험, 드러나지 않으나 엄연히 상존하는 정서적 어려움 등을 고려하여 아이들의 행동, 성격, 흥미, 동기 등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어쩌면 특별한 한국어 교육이기보다 한국어 특수교육(特殊敎育)을 한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오늘도 나는 다섯 명의 특별한 이주배경학생들에게 한국어 특수교육을 했다. 좌충우돌(左衝右突), 이따금 감정 기복마저 심하게 작동하는 한국어 교수·학습의 연속이지만, 무려 45년간의 교육경력을 총동원하니 그래도 할만하다. 아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