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단 한 분뿐인 우리들의 어머니
어머니를 뵈러 급히 목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초조한 나의 마음을 몰라주고 버스는 연신 가다 서기를 반복한다. 하긴 주말이니 그럴 수밖에.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글쓰기란 쉽지 않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그간 여섯 번째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시는 어머니에게 여느 병원의 간호사 이든 간에 으레 주사 놓을 혈관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간호사의 능력은 천차만별, 숙련도에 따라 주사 놓기 좋은 혈관을 찾는 거며 실제로 주사 놓는 스킬(skill)이 달랐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 팔다리 이곳저곳은 퉁퉁 붓고 온통 멍투성이었다.
광주 B병원 입원 후, 2주째 들어서 어머니는 갑자기 폐결핵 판정을 받고 음압 병동에 격리되었다.
결핵의 일반적인 증상인 가래, 객혈, 기침, 열, 체중 감소도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독한 결핵 치료약을 먹고, 토하고, 객담검사의 고통을 호소해야만 했다. 매일 X-ray 촬영에다 혈액검사도 힘든 일이었다.
음압병동 입원 4일째 되던 날, 간호사가 폐결핵은 오진이었다며 어머니를 일반 병실로 옮겼다. 물론 담당의사의 오더(order)가 있었을 것이다.
문제 삼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음압병동에서의 4일은 어머니의 건강을 극도로 악화시켰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무 말없이 오셨더라. 셋째도 오더니 뭐라고 하더라"라며 섬망 증상에다 손발 떨림까지 생겼다.
입원 후 3주째 목요일에 동생은 간호사의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의 폐렴 염증수치가 높아 잡히지 않으니 호흡기 내과가 있는 병원으로 전원 하라는 것이다.
동생은 갖은 항생제만 다량 투입하는 광주 B병원에 주말 동안 어머니를 방치하기에는 위험하다며 급히 목포 H병원으로 옮기려고 서둘렀다. 하지만 병실이 없어 입원하지 못하고 월요일 오후에 폐결핵 정밀검사를 하기로 예약했다.
어머니는 집으로 모시려는 동생 권유를 물리치고 그만 모텔에 투숙하겠다고 하셨다. 이미 광주 B병원에서 폐결핵이 아니라고 판정받았지만, 찝찝하다며 아들의 호의를 물리친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다.
비록 자식일지라도 부담주기 싫으면 효심을 여지없이 누르고 만다.
어머니의 지나치게 예민한 성격은 주위 사람들에게 냉정함으로 비쳐서 온갖 설화를 낳았다. 나는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어머니 모습을 봐왔고, 실제로 속상해왔기에 일말의 서운함을 토로하며 오해하는 주변인들에게 궁색한 변명을 할 때가 많았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어머니의 병이 원망스럽다.
나는 바란다. 간절히 기도한다. 다음 주 월요일 오후에 어머니께서 폐결핵 정밀검사를 받고 이상소견이 없어서 약 먹으면서 정상생활을 해도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반드시 들을 수 있기를 고대한다. 그리고 그토록 건강하셨던 어머니가 꼭 건강하시길, 하나님께서 어머니에게 건강의 축복을 해주시기를 기원해 본다.
부디 예전 건강을 되찾아 더 오랫동안 우리 6남매 곁에 있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2025.10.25. 글쓴이: 김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