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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가꼬 Nov 01. 2023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단풍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


작년 가을에 처음 알았다


단풍이 아름답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 인지? 여유가 생겨서 인지?

걷다가 보니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거리의 가로수에 잎이 떨어지는 것을

오랫동안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단풍이 짙게 물든 나무를 보았다

고개를 들어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모든 나무에 알록달록 물이 들어 있다

그전에는 몰랐다. 자세히 보니 보인다

낙엽은 더욱 아름답고,  자신의 마지막 역할을 다하고 바람에 날리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측은하기까지 하다

한 해가 가는 것이 아쉽기만 한

중년이 되어가는 나와도 많이 닮아 있다


그때부터 였을까?

마지막 하나 남은 잎이 모두 떨어질 때까지

매일매일 눈에 담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가을


아파트 입구 안내판에 전단지가 붙었다

'2023년 문화가 있는 날 클래식 콘서트'라는

전단지가 붙었다. 그 밑에는 '지음 앙상블'이란 단어도 보인다

도대체 지음 앙상블이 뭔지 검색을 해본다

지음은? 음악을 좀 아는 사람들이란 뜻이고

앙상블은? 2인 이상이 하는 노래나 연주를 말한다


아마도 음악을 좀 아는 사람들이 여러 명 모여 연주를 하는 것 같다

이전 같으면 관심도 없었던 클래식~

"현대 속 클래식: 일상을  아름답게 감상하다"라는 문구도 눈에 띈다

깊어가는 가을을 의미 없이 그냥 보내면 안될 것 같다

게다가 오늘은 주말이다


오늘은 클래식 공연날이기도 하다


밤새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주말이다. 아내와 아들의 모처럼 늦은 단잠을 깨우기 싫어

살금살금 작은방으로 가서 이불을 펴고 누웠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얼마 되지 않아 스르르 잠이 들었다

꿈인지 생신지 아들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지만

무거운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


얼마나 지났을까? 현관문이 크게 닫히는 소리가 나더니 조용해졌다

아내가 아들과 수영 강습을 갔나 보다

몇 달 전부터 아들은 주말 수영 강습 중이다

옆에 나란히 누워 있는 핸드폰을 일으켜 뉴스를 검색한다

언제나 그렇듯 그렇게 잠에서 깬다

아직 다 잔 것 같진 않은데 더 자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오늘은 클래식 공연이 있는 날이기도 하다


야간근무 다음날이면 루틴처럼 하는 일이 있다

일어나서 가볍게 밥 먹고, 가까운 산을 오르는 일이다

산에 다녀오면 밤새 쌓인 피로가 조금은 사라지는 느낌이다


공연시간이 다가온다


공연장은 아파트 바로 옆 박상진 생가 공원이다

씻고 옷 입고 나가면 5분도 안되는 거리

내가 이사 오길  잘했다고 생각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연장으로 가는 길에 벌써부터 클래식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리허설을 하고 있다

완전하진 않지만 음을 조율하는 소리가 들린다

잘은 모르지만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와 플루트 같은 악기들인 것 같다

빈자리에 앉는다. 남은 자리는 공연시간이 다가올수록 하나하나 채워진다.


연주가 시작된다.

아~ 이게 클래식이구나

음악을 들으며 지긋이 눈을 감는다

편안하다. 음악에 맞춰 고개를 움직인다



이제야~ 나이와 계절에 걸맞은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언제 트로트를 즐겨 들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오늘 이 분위기가 참 좋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내 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다.

계절이 익어 잎이 물들듯 내 머리에도 흰머리가 늘어가고

계급장처럼 늘어나는 얼굴 주름엔 보톡스를 맞는다

네온사인 화려한 번화가보단 조용한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낙엽이 흩날리는 동네 공원이 더 좋고, 시끌벅적한 트로트보단

앙상블이 더 좋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지나온 날을 생각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을 생각하기도 한다.

편안하고 안정될 것만 같았던 나의 중년은 아직 여전히 흔들리고 있고

나잇값을 못하는 것 같이 우울하기도 하고, 이제 정말 늦은 것 같다는 불안감이 몰려들기도 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김미경의 마흔 수업>에 나오는 구절처럼 너는 지금 잘하고 있고 지금처럼만 하면 되니 아무 걱정 말라는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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