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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가꼬 Nov 01. 2023

20살이던 1994년

추억을 소환하다


20살이던 1994년으로 떠난다


야간근무 날이다

새벽 5시 30분,  온 세상이 조용하다

간간이 새벽일을 위해 집을 나서는 사람들이

운전하는 자동차 소리만 들릴 뿐이다

언제나 그렇듯

밤은 무척 길고, 눈꺼풀은 무겁다

물 한 잔 마시며 잠을 쫓아보기도 한다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1994년 히트곡을 검색한다

슬그머니 삼성전자 이어폰 갤럭시 버즈를 꺼내 귀에 꽂는다

그리고 20살이던 1994년으로 떠났다


75년 토끼띠~

그들에게는 유난히 많은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학교 앞 리어카에서 햄버거를 처음 맛본 햄버거 세대이자,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전환되던 첫해를 보낸 수능 1세대이자, 국가부도 사태에 취업난을 온몸으로 겪은  IMF 세대이다



햄버거 세대


초등학교 시절 하루는 하굣길에 학교 앞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뭔가에 홀리듯 그쪽으로 모였다

포장마차와 비슷한 주황색 천으로 포장된 조금 한 리어카였다

그곳엔 처음 보는 글씨가 쓰여있었다 "햄버거"

난생처음 맡아보는 냄새다.

먹어보진 않았지만 맛있는 냄새인 것은 분명하다

그 당시 가격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초등학생이 하굣길에 주머니에 들어 있는 용돈을 꺼내서 사 먹을 수 있는

'쫀드기나 떡볶이"가 아니었다.

계중에 주머니에 큰돈을 가지고 있던 아이들이

사 먹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어떤 맛인지 궁금했다.

맛도 궁금했지만 모양도 만드는 과정도 신기하기만 했다

구름같이 몰려든 아이들은 한동안 계속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며칠을 그렇게 하굣길에 한참을 구경만 하다가

집으로 가서 엄마한테 학교 앞에서 본

'햄버거'를 설명하고 돈을 달라고 했다


"엄마~ 그러니까 햄버거라는 건데

먼저 버터 같은 거에 빵 2개를 구워, 그리고 동그랗고 커다란 고기를 굽고. 고기가 노릇노릇 구워지면  빵 한 개 위에 구운 고기를 놓고, 그 위에 야채를 올리고 소스를 뿌려 그런 다음 그 위에 다른 빵 하나를 더 올려"


엄마는 햄버거를 아는 걸까? 먹어본 적이 있는 걸까? 한참을 듣기만 하더니

아무 말 없이 돈을 건넨다. 너무 먹고 싶은 내 마음이 잘 전달됐나 보다

그렇게 학교 앞 리어카에서 햄버거를 처음 먹어본 햄버거 세대였다


수능 1 새대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전환되던 첫해 많은 아이들은 혼란에 빠졌다.

당시 암기 위주의 학력고사가 많은 경쟁교육을 유발하고 대학을 점수대로 서열화한다는 비판 여론 때문에 수능으로 전환됐다

수능은 단편적인 교과지식을 묻는 학력고사와 달리 종합적 고등 사고능력을 평가한다며 도입됐다

도입 첫해에는 8월과 11월 2차례 시험을 쳐서 좋은 성적을 택했고

난이도 조절 실패로 다음 해에 바로 없어졌다. 수능을 두 번이나 치른 첨이나 마지막 세대였다.

책을 많이 보는 학생이 유리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나는 그 당시 체대 입시생이었다.

고3 시절에도 무거운 책 대신 도시락과 츄리링만 가방에 넣어 다녔다.

나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시험이었다.

체대 입시생은 수능과 내신 이외에 체육 실기시험까지 준비해야 했다.

이전 데이터가 없던 우리들은 대학마다 다른 방식의 실기시험을 모두 준비해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혼란을 겪었던 수능 1세대였다.


IMF 세대


1996년 11월, 빡세다는 26개월간의 해병대 군 생활을 마치고 만기전역했다

세상에 나와보니 국가는 부도가 나있었다.

당시 내가 겪은 IMF 상황은 이랬다.

그토록 그리웠던 대학은 마치 빈 점포 같았다.

갑자기 부도가 나면서 직장을 읽은 부모들이 등록금을 내지 못하자 남학생은 군대로 여학생은 휴학으로 학교를 떠났다.

그렇게 자의반 타의 반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나도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보수나 환경보단 안정된 직장을 위해 경찰 공무원이 되었다.

1998년 6월 부산에서 처음으로 경찰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20대 초반이던 나는 세상을 너무 빨리 배웠다.

갑자기 직장을 읽고 백수가 된 가장들은 생계와 가게 빛을 고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많아졌고, 아침마다 평소보다 3배나 늘어난

변사사건을 처리해야 했다.

생계를 위해 붕어빵이라도 팔아 보겠다고 나온 사람들로 거리는 늘 북적였고,

대형마트에서는 아이 분유를 훔치다 적발된 엄마들도 있었다

영아보호시설에는 종교단체나 부잣집 앞에 버려진 영아들로 방안을 가득 채웠다

이것이 내가 본 1998년 6월의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의 모습이었다.





귀에 꽂힌 갤럭시 버즈에서는 1994년을 소환하는 노래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최대 실기 시험을 치르기 전날 밤 함께 시험을 치러 갔던 친구들과 긴장된 마음을 달래며 여관방에서 함께 불렀던  '김건모의 핑계', 갓 입학하고 풋풋했던 신입생 시절 대학가에서 자주 흘러나왔던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 한 학기가 끝나고 첫 번째 여름방학, 군에 입대하기로 마음먹고 용돈이라도 벌려고 수영장 안전요원으로 알바를 했던 시절 놀이공원에서 자주 흘러나오던 '마로니에 칵테일 사랑",  입대 전날 부대까지 함께 따라온 친구들과 밤새 불렀던 '김광석의 이등 병원 편지', 하루하루 달력을 지워가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군대 이등병 시절 즐겨듣던 '신성우의 서시'


노래를 듣는 동안 나는 마치 20살 그 시절로 돌아간 착각을 느꼈다

듣는 내내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였고,

여러 가지 추억들로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소환하고 싶었던 1994년, 지나고 보니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치열하고도 열심히였던 나의 1994년 이여 만나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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