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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셩 Oct 06. 2022

책을 멀리했던 내가, 다시 친해지기 까지

 

     

  내가 동네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로 소문이 났었다고 엄마가 내게 말한적이 있다. 간혹 놀이터에 가면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동네에서 좀 똑똑하다고 하는 아이들보다 나는 한글을 몇 개월 더 일찍 뗏다. 우리 엄마는 그런 내게 내심 기대가 컸다. 이 아이가 훌륭한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고, 호기심과 궁금한 것들이 많아 똑똑하고 큰 사람이 될 것 같았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책을 좋아하는 어린 꼬마로 성장하길 바랐다. 집 앞에 책 아저씨(중고책을 구매하시거나 책을 팔러 오시는 아저씨)가 오실 때마다 나와 함께 구경을 가자고 졸랐다. 책 아저씨의 낡은 봉고차 안에는 보풀이 불어난 낡은 책들과 표면이 반짝반짝 빛나는 책들이 함께 실려 있었다. 동네 좁은 길가에는 여러가지의 책들이 오와열을 맞춘 군인들 처럼 나란히 나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군인과는 정반대로 동화책 표지에는 귀여운 동물들이 실려져 있었고, 나는 그런 책들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너 엄마가 이거 사주면 읽을 거야?" 엄마는 내심 바라는 듯한 눈빛으로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새 책의 특유한 냄새를 좋아했고 빳빳하고 힘 있는 그런 종이 재질을 좋아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귀여운 동물들이 나를 보며 데려가달라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물론이지! 꼭 읽을 거야"라고 자신감 있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는 이번에도 약속을 지킬거라 생각했지만 나에게 한 번 더 속고 말았다. 집에 돌아가서는 그 동물들과 눈인사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4학년쯤 되었을 것이다. 나는 야구를 굉장히 좋아했다. 초등학교 1학년때 '야구덕후' 외삼촌으로 인해서 야구를 접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도 야구덕후가 되고야 말았다.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 없이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 가서 공 던지는 연습을 했다. 친구들은 공부를 하느라 바빳다. 나의 공을 받아주는 벽은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벽은 내가 던진 공을 받고 되던져주기까지 했다. 연습이 끝나고 항상 벽을 확인했다. 오늘은 벽이 얼마나 닳았지?

   야구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공부를 하지 않는 나에게 엄마는 잔소리를 했다. 친구들이 다들 가지고 있었던 그 흔한 휴대폰도 나는 가질 수 없었다. 어렸을 때는 영재라며 동네 아주머니들이 나를 칭찬했었다. 우리 엄마보다도 더 나를 기대하는듯한 아주머니도 몇분 있었다. 엄마는 그만큼 내게 기대를 많이 했을텐데, 많이 아쉽고 안타까울 것이다. 엄마도 다른 부모님들처럼 내가 '공부 잘하는 아이'이길 바랐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성적은 바닥이였다. 성적표를 부모님께 손으로 내밀 때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수학은 어느정도 했던 것 같은데, 유독 국어가 많이 부족했다. 국어는 나에게 너무 어렵고 버거운 존재였다. 나와 국어 사이에는 고개를 쳐들고 쳐다보아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벽이 존재하는 듯 했다.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한 선생님이 등장한다. 

  우리동네에 친한 친구들의 가족모임이 있었다. 우리 가족 단체는 함께 멀리 여행도 가고 다양하고 오랫동안 추억으로 남을 만한 체험들도 했다. 그 중, 친구 어머니께서 동화작가신 한 분이 계셨다. 그 아주머니는 책을 엄청 좋아하셨다. 쉬는 시간마다 책을 읽는다니 나에게는 가상에 존재하는 한 캐릭터 같았다. 그 아주머니의 제안으로 독서토론 모임이 개설 되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아이들이 함께 성장할 생각에 너무나도 기뻐했지만, 친구들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눈빛이였다. 

  그 수업 방식은 이러했다. 책 한권을 정하면 우리는 그 책을 일주일안에 읽고 주말에 모였다. 그리고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그 생각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발표를 한다. 글을 읽기 싫어하는 나에게는 큰 스트레스였다. 글을 읽어도 이해가 되질 않았고 앞에 문장을 자꾸 까먹었다. 책의 앞쪽 부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책과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글 읽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으니 재미도 없고 억지로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주말이 하루가 더 있어야 한다고생각했다. 그래도 엄마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그런 나를 위해서 주간 읽어야하는 친구 아주머니들 보다 미리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그리고는 나를 옆에 두고 책을 큰소리를 내어 읽어주셨다. 내가 책에 더 몰입하기를 원했는지 '큰따옴표'가 나오면 목소리가 바뀌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정말로 책을 이렇게 까지 읽어야 하나?' 싶었다. 친구들은 모두 나보다 책을 더 잘 읽었다. 그 중에서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어서 토론에 열심히 임하는 친구들도 몇몇 보였다. 그 친구들은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서인지 입이 굉장히 간지러워 보였다. 엄마는 내가 발표도 잘하고 친구들보다 더 똑똑한 아이였으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과 나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내게 '글쓰기'를 배우라고 권유했다. 글쓰기를 잘하면 말을 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하게 되면 머릿속에서 생각이 정리 되어 말을 더 논리있고 설득력 있게 할 수 있다. 친한 친구의 어머니가 우리 엄마를 설득한 모양이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나는 초등학생때 글쓰기를 배우게 된다. 그때 글쓰기를 배운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때 한 일중에서 가장 잘한 선택 같다. 

  글쓰기 수업은 우리집에서 한 주 그리고 친구집에서 한 주로 진행 되었다. 친구의 표정도 그닥 좋아보이지 않았다. 친구 역시 전쟁터에 끌려나온 한 병사 같았다. 둘다 입을 뾰로퉁 튀어 나온 상태로 수업에 임했다. 아마도 그 선생님은 우리가 정말 귀여웠을 것이다. 먼저 우리는 글의 뼈대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지는지를 배웠다. 글의 흐름을 점점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글을 그렇게 잘 쓰는 것은 아니다.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어휘력도 아직 부족하다. 이러한 몇개월 배운 글쓰기 스킬이지만 나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 글쓰는 것이 나는 즐겁다. 아마도 이 때 영향을 가장 많이 받지 않았나 싶다.

  어느덧 나도 이제 건장한 성인이 되었다. 나는 5년이라는 긴시간 끝에 중국 유학을 끝맺음 하고 프랑스로 방향을 틀었다. 왜냐하면 꿈이 많던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았기 때문이다. 하기 싫은 공부들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꿈 말이다. 바로 '미술작가'가 되는 것이 내 현재 꿈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모두 필요한 직업이다. 내게는 '천직'이나 다름이 없다. 작업을 구상하고 손으로 직접 만들때면 너무 행복한 순간의 연속이다. 여러번의 경험 끝에 이제는 막을 내릴 때가 되었다고 내게 말해주고 싶다. 

  어렸을 때 부터 생각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리고 생각이 남들보다 많았다. 그 중, 잡생각들도 많았지만 세상에 관한 호기심이 대부분이였다. '왜 나무는 나무지? 죽으면 정말 어떻게 되는 걸까? 우주는 얼마나 큰 걸까?' 질문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고 그 질문들의 해답을 들어야만 맘편히 발을 뻗을 수가 있었다. 답이 없는 답을 찾는 것, 답이 없는 답을 내 생각들로 풀어 내는 것. 나는 예술과 철학쪽에 관심이 있던 것이다.

  운이 좋게도 프랑스 파리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시는 미술 선생님을 만났다. 인생에서 세 명의 귀인을 만난다고 한다면 그 중 한 명이다. 선생님은 현직 미술작가로 활동하고 계셨다. 그것도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어깨만큼 내려오는 탈색을 두 번 정도 한듯 한 머리에 지적여 보이는 안경을 하고 계셨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아는 지식들이 넘쳐났다. 지식창고를 여러개 소유한 듯 했다. 선생님은 내가 질문 할 것들의 대본을 미리 숙지하고 있는 듯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던 선생님은 좋은 조언들과 생각들을 나에게 아낌 없이 공유했다. 똑똑하고 지혜로운 선생님과 대화를 하다보니 일명 '뇌섹남'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똑똑하고 지식이 넘쳐나면 어떤 사람들을 만나던 할 대화거리가 정말 많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든 응수 할 능력을 가진 것이 너무 멋있었다. 이 선생님의 계기로 23살에 나는 똑똑해지기로 결심한다. 

  아는 정보가 많다면 미술 작업을 구상하기에도 훨씬 수월하다. 내가 아는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서로 맞물리며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창의적인 생각들을 정리하고 그것에 맞게 자료들을 준비하고 연구해서 대중들에게 내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것이 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뿌려져 있는 모든 정보들을 흡수 하기로 마음 먹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원하는 정보를 얻기 정말로 간편하다. 궁금한 정보를 검색엔진에 검색하면 그에 관한 정보들이 수두룩 하다. 각자 입맛에 맞게 고르기만 하면 된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속독이였다. 속독법이 있어야 빠르게 많은 정보들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속독은 가성비 최고의 도구이다. 너무나도 필요한 내 삶의 꼭 필요한 비장한 스킬. 

  나는 앞으로 속독을 하는 법, 두뇌 활용 법 그리고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법에 대해서 연구하고 공유할 계획이다. 그리고 필요한 인생의 도구들을 공부하고 내게 접목 시켜보고 나를 시험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내게 어떠한 변화가 찾아오는지를 기록할 것이다. 내가 어떠한 노력들을 얼만큼 해서 새롭고 신비한 능력을 얻었는지를 남기고, 그것들을 공유할 것이다. 이것은 미래에 발전해 있을 나를 위한 나의 증명 그리고 증거자료로 남게 될 것이다. 나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극을 받고 함께 성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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