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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루투카 Oct 05. 2022

직장인의 골프를 포기하는 과정


골프는 필수다.               


골프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지금이야 골프의 진입장벽이 낮았지만     

내가 골프를 배울당시만 해도 골프라는 운동 자체가 워낙 고급이라는 이미지도 있었고 지금처럼 스크린 골프장, 실내 연습장이 많지 않던 시기였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고, 부모님도 소박하고 검소하게 사셨던 터라 내가 골프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사람들만 즐기는 사치 운동이라 생각했다. 어느 순간 주변에 골프 인구가 하나둘 늘어가고 월요일에는 주말 라운딩 이야기, 수요일부터는 부킹 이야기가 들렸다.   

             

주먹보다 작은 공을 멀리 보내는 저 운동이 뭐가 그리 재밌을까? 들어보니 주말 라운딩은 새벽부터 준비하고 중간 집결지에 만나서 한차로 백을 옮겨 싣고 한 시간씩 달려서 경기도 인근 골프장으로 간다고들 한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동료에게 물었다.                

"땅에 딱 달라붙어 있는, 가만히 있는 공을 쳐서 멀리 보내는 게 그렇게 재밌어?"               

"야! 죽어있는 공을 내가 쳐서 살려내는데 재미없을 수가 있냐?"               


그래. 운동 신경이라고는 개미 눈물만큼도 없는 나는 축구, 족구, 테니스, 농구, 탁구 살아있는 공을 치면 매번 죽이기밖에 더 하랴. 죽어있는 공을 살려보자!                         


그렇게 시작된 100돌이의 골프 생활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연습하고, 자기 전까지도 동영상을 보며 골프만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중고 클럽이 아닌 나만의 아이언을 구매하고 포장을 벗길 때의 그 기쁨은 첫 차를 샀을 때의 그 감동과 버금갔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내의 잔소리가 늘어갔다.   

             

야근.. 회식.. 연습장.. 스크린.. 라운딩..                

돈도 돈이지만 골프에 정말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야근이나 회식이 없는 날은 연습장을 가거나 스크린에서 시간을 보내고, 주말 라운딩에 새벽부터 출동해서 저녁 회식까지 하고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오는 경우가 늘어나니 당연히 잔소리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나의 고칠수 없는 고질병 중 하나가 '거절 못하는 병'이다. 원래 성격도 그런데 골프를 하면 더 거절하기가 힘들어 진다. 약속을 취소하는건 골퍼들 사이에서는 7대 죄악에 버금가는 극악무도한 짓이라 상을 당하거나 천재지변으로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라운딩 약속이 우선이다.  

그렇기에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고 평일 연가를 써서 라운딩을 하기도 하고, 주말에 급한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댄 적도 있다. 이런 날은 라운딩 내내 불편한 마음 때문인지 슬라이스에 뒷땅에 영 실력발휘가 안된다. 


골프가 재밌고 즐거웠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멋진 자연을 감상하려고 시작한 운동인데 점점 사람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 2년전 모든 장비를 당근마켓으로 팔아버렸다. 코로나 때문에 야외 스포츠가 더 인기가 많아져서 좋은 가격을 받았다. 그 돈으로 아내 가방 하나, 신발 하나를 사주고 3가족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다. 


이제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다. 고급진 잔디와 조경이 있는 클럽하우스가 대신 집근처 공원에서 번쩍번쩍 광이나는 클럽 대신 아이와 핸드폰 하나씩 들고 포켓몬 사냥을 한다. 

평일 저녁 연습장 대신 아내와 동네한바퀴 산책을 하며 대화가 늘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벗어버리면 몸도 마음도 편하다.


아직도 나에게 맞지 않는 옷들이 많다. 이런 옷들은 정리하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 인생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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