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적 렌즈를 통해 보는 결혼
우리는 왜 혼자 살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구태여 남자 혹은 여자를 만나 지키지 못할 수도 있는, 평생을 약속하고 지지고 볶으며 가정을 이루고 살아갈까?
누구나 이 같은 생각을 대부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인간은 외로우니까? 정서적인 동반자가 필요하니까? 늙고 쇠약해졌을 때 나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서? 자녀를 낳기 위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서?
각자가 가진 나름대로의 이유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에 대해, 그리고 결혼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면 수많은 관점에서 그것을 바라볼 수 있다. 인문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생리학적으로, 그리고 경제학적으로 볼 때, 그에 대한 대답과 이유들은 각각 달라진다. 같은 사물이라도 다른 렌즈를 통해서 보듯이 말이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사랑'이나 '결혼'같은 개념에 대해서는 경제학적 관점으로 바라보지지 않는다. 숭고한 무언가를 차갑고 날카로운 도구로 들여다보는 것이 두려워서일까? 아무리 냉혹하고 차가운 현실이라지만, 원초적인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 안에서 순수하고 계산적이지 않은 마지막 희망을 제시해 주는 힘을 가진 단어이다. 그 마지막 희망마저 구태여 차가운 경제학적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심리일 수도 있겠다. 모종의 죄책감이랄까.
하지만 '달러와 섹스'라는 책의 저자인 마리나 애드셰이드는 우리가 그렇게 조심스레 여기던 '사랑'이라는 단어를 철저하게 경제학적 시선으로 분해한다.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그녀는 2008년도부터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섹스와 연애의 경제학>을 강의하고 있다. 이 과목은 인기가 너무나도 폭발적이어서 아직까지도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혹독한 수강신청 전쟁을 치러야 한다고 한다.
개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랑과 연애, 그리고 결혼이라는 행위는 대단히 신비롭고 오묘한 무언가이다. 평소엔 느껴보지 못했던 종류의 호르몬이 분비 패턴을 겪으며 우리는 신비로움에 휩싸인다. 하지만, 조금 더 거시적으로 본다면, 그리고 특히 경제학적으로 접근한다면 그 과정은 꽤나 패턴화 되어있는 뻔한 것이다. 남녀가 어떠한 계기로 만나서 서로에게 (혼자 지내는 것보다) 더 큰 효용을 줄 거라는 판단을 한 뒤, 암묵적인 계약을 맺고 함께 살아가며 그 효용을 누린다.
이렇게 딱딱하게 말해서 기분이 조금 이상하지만, '나는 그(녀)와 있을 때는 어떤 걱정도 생각나지 않아. 너무 행복해'라는 로맨틱한 말도 결국 '그녀는 내게 엄청난 효용이 있어'의 하위 범주에 속하는 말이다. '매일 밤 너와 함께 한 이불을 덮고 자고, 아침에 함께 눈을 뜨고 싶어'라는 로맨틱한 말도,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너와 함께 사는 것은 내게 큰 효용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판단되고, 우리 사이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커졌으니, 이제 우리 공식적으로 계약을 맺자'라는 말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물론, 현실에서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우리의 무의식은 그렇게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렇듯, 연애와 결혼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관점에서 접근하고 다양한 예시를 통해 우리를 설득시킨다. 그리고 '성'이 어떻게 '돈'이 되는지 그 메커니즘을 풀어헤친다. 극단적인 예로 포르노 플랫폼은 그 어떤 플랫폼보다 이용자가 많고, 충성 유저들이 많으며, 가격에 대한 저항도 극히 적다.
이야기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연애 시장과 결혼 시장에 대한 깊은 고찰과 함께,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도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제시한다. 경제학적이라고 해서 '돈'에 대해 얘기한다기보다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대 효용의 관점에서 주로 설명한다.
작가가 말하는 결혼의 효용은 크게 세 가지인데, 그것은 저비용 고효용의 섹스, 생물학적 자녀, 그리고 경제학에서 말하는 '비교우위'이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든다면 책을 다 읽어보면 어느 정도는 납득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생각보다 놀라웠던 점은 이 책의 저자는 여자 교수라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책의 내용 자체가 '경제학'을 조금 더 재미있고 쉽게, 일상생활에서 적용하여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인 대학 강의 커리큘럼을 압축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냉소적인 부분도 있다. 이 부분은 책의 초반부에 작가도 언급한다. 실제로 본인도 이렇게 생각하며 살지는 않으며, 의도적으로 더 극단적인 경제학 렌즈를 통해서 사랑과 연애와 결흔을 다루었다고.
책을 읽다 보면, 참.. 사랑과 결혼이라는 것도 별거 없는 건가 하는 회의감도 언뜻 드는 순간이 있었지만,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결코 경제학적 렌즈를 통해 설명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사랑'에는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관점은 흥미로웠다. 다소 냉소적이지만, 어차피 결혼은 현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저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을 뿐.
활성화된(thick) 시장과 비활성화된(thin) 시장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비활성화된 시장은 참여자가 적기 때문에 구매자나 판매자 모두가 원하는 상품가격으로 거래를 하기 어렵다. 하지만, 활성화된 시장에서는 참여자가 많기 때문에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흔쾌히 거래에 동의할 수 있는 가격을 협상하기 쉽다.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매우 활성화된 시장이자. 이 시장에서 구매자이자 판매자로서 내가 거래하고자 하는 ‘가격’을 상대방에게도 내가 최선의 상대인 동시에 그도 내게 최선인 상대를 만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면, 나 역시 온라인에 뛰어들어 연애 상대를 찾아 나서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는 온라인에서 애인을 찾는 것이 오프라인보다 쉬워서가 아니라, 시장이 활성화될수록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상대방을 찾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데이트 시장 참여자들은 남녀 불문하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시장에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감가상각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애초에 자신의 시장 가치를 부풀리지 않고 정확하게 평가해서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가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전에 서둘러 거래를 마치고 시장을 빠져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적 접근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처음부터 자신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솔직히 인식하고 자신이 원하는 모든 조건의 충족보다는 어느 정도 타협할 수 있는 수준에서 상대방을 찾는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파트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므로 데이트 시장은 더욱 빨리 균형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 작가가 말하는 '경제학적'으로 맞는 결혼식의 신랑 선언
“나는 신랑이라는 이름으로 신부인 당신과 결혼 생활에서 지켜야 할 계약을 맺는데 동의합니다. 나는 과거 내가 신부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한 자질을 모두 갖춘 여성을 몇 명 만난 적이 있지만, 그들이 나를 남편감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결국 당신을 내 아내로 선택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당신은 학력이나 수입 면에서 내 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젊음과 미모로 이를 보상하고도 남았기에 내 신부로 선택하기에는 충분하였다는 점을 맹세합니다. 당신의 가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감가상각될 것이고 또 나로서는 새 여자를 찾는데 비용도 별로 들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는 새 아내를 찾고 싶다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나는 당신에게 충실할 것을 맹세합니다. 나는 우리 가족의 번영을 위해 당신과의 분업을 통해 일할 것을 맹세합니다. 또한 당신이 기대하는 가계소득에 부합하는 수입을 올리기 위해 나의 인적 자본을 끊임없이 투자하겠습니다. 이성적으로 들리지는 않겠지만, 여하튼 마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헤어지지 않을 것을 기대라도 하는 것처럼 자식들의 양육과 자산 운영에 투자할 것을 맹세합니다.”
- 작가가 말하는 '경제학적'으로 맞는 결혼식의 신부 선언
“나는 신부라는 이름으로 신랑인 당신과 결혼 생활에서 지켜야 할 계약을 맺는데 동의합니다. 나는 과거에 신랑감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한 자질을 모두 갖춘 남성을 몇 명 만난 적 있지만, 그들이 나를 신붓감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결국 당신을 신랑으로 선택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당신은 키나 매력 모두 내 기준으로 볼 때 흡족하지 못하지만, 높은 학력과 직업 때문에 이를 보상하고 남았으므로 내 신랑으로 선택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음을 맹세합니다. 앞으로 내가 낫는 자식들은 모두 생물학적으로 당신의 아이일 것을 보장합니다. 비록 좀 더 유전적으로 뛰어난 자질을 지닌 남자를 만나게 되었을 때 외도를 하고 싶은 유혹도 느낄 수 있겠지만 말이죠. 당신이 우리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만큼 충분한 돈을 벌어다 줄 것이라는 전제하에, 나도 아이들의 인적자본을 위해 내 인적자본을 희생할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들리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여하튼 나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우리 결혼과 자산운영에 투자할 것을 맹세합니다. 마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죠.”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오로지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결혼의 목적은 결국 다음 두 가지로 귀결된다. 살림에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의 효율적 생산, 그리고 궂은날에 대비한 보험가입이다. 생활에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는 개인이 직접 만들 수도 있고 시장에서 구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룰 경우에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이를테면 더 적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결혼을 통해 생산할 수 있는 상품 또는 서비스로 우선 섹스와 사랑을 들 수 있다. 섹스는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살 수 있지만 사랑은 그럴 수 없다. 또한 시장에서 돈을 주고 섹스를 사면 가격이 비쌀뿐더러 감염위험도 있고, 신분이 드러날 경우 망신살이 뻗치거나 조롱을 당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고비용이다. 만일 성매매가 불법적 행위일 경우에는 경찰에 잡힐 수도 있고 때로 폭력이 수반될 위험도 있다. 불편함도 불편함이지만, 무엇보다도 시장에서 섹스를 사는 것은 결혼 생활을 통해 성관계를 갖는 것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 물론 사람들은 매춘 시장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술집이나 온라인 헌팅 등을 통해 일회용 섹스 상대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행위 역시 매춘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위험부담이 있다. 게다가 사람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일회용 섹스 시장을 이용하는 데 있어 감수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 흔히 결혼한 사람은 싱글들보다 성관계 횟수가 적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아마 당신은 섹스의 질과 양은 다른 문제가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앞에 언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2개월 동안 오직 한 사람의 상대와 섹스를 한 사람의 행복도가 여러 명의 파트너와 섹스를 한 경우에 비해 훨씬 높았다. 섹스를 결혼이 제공해 주는 ‘서비스’의 일종으로 볼 때,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서비스를 미혼자에 비해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이 제공해 주는 상품 또는 서비스의 두 번째 예는 생물학적 자녀이다. 모든 부부가 아이를 원하는 것은 아니며 아이를 갖고 싶어도 못 낳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자식을 원하는 이성애 부부라면 결혼이야말로 가장 적은 비용으로 아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연애만으로도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연애 외의 또 다른 방법으로도 출산을 할 수도 있지만 역시나 모두 비용이 많이 들고 이용도 불편하다. 결혼을 통해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아이 아버지가 자신의 시간이나 자원 또는 그 둘을 모두 제공해 줄 것이라는 보장을 받는 것이다. 남성 쪽에서 보면 결혼은 자신이 양육을 돕는 아이가 생물학적으로 다른 남자가 아닌 바로 자신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보장해 준다. 이렇듯 결혼은 생물학적 아이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효과적으로 아이를 얻는 방법이다. 사실상 서로 섹스를 즐기고 임신 능력도 있는 부부에게 있어 생물학적 아이를 얻는 데는 거의 아무 비용도 들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결혼의 세 번째 기능은 가장 경제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요리, 세탁, 청소 등의 가내 서비스 생산이다. 결혼을 하면 이런 서비스를 보다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데, 이는 두 나라 간의 무역과 비슷한 메커니즘이다. 두 나라는 각자 자급자족할 때보다 서로 거래를 할 때 더 큰 이득을 누릴 수 있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각자 잘하는 일이 따로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가사노동에 더 유능하다면 그 사람에게 가사를 맡기고 다른 사람이 그 외의 일을 함으로써 이익을 늘릴 수 있다(경제학에서는 이것을 비교우위라고 부른다).
(출처 : 마리나 애드셰이드, '달러와 섹스', 생각의 힘,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