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적 무박 2일 여행
매년 여름은 다시 온다. 개개인마다 느끼는 여름의 시작은 다르겠지만 나는 은하수 촬영을 시작으로 나의 여름이 시작된다.
은하수를 꼭 여름에만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여름이 아닌 계절에 은하수를 보려고 하면 너무 늦은 혹은 이른 시간에만 가능하다. 전갈자리가 남쪽하늘에 떠오르고 여름의 대 삼각형을 알리는 백조자리가 하늘 중앙에 보이면 완연한 여름이라 나는 생각을 한다.
지난 주말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토요일 오전이었다. 출근해서 간단한 정리를 하고 습관적으로 날씨와 달의 상태를 확인했다. 달은 오후 8시 조금 넘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는 초승달. 낮에는 조금 흐리다가 밤에는 맑아지는 날이라 한다.
별관측 혹은 별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달은 최고의 빌런이다. 달이 밤하늘에서 너무 밝기에 달 없는 날이 최고의 관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날이다. 물론 그날 기상 상태도 좋아야 하고 무엇보다 인공조명이 없는 어둡고 하늘이 열린 공간이 필요하다.
주로 내가 별을 보기 위해 가는 곳은 집에서 차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주변에 민가도 없고 적당히 하늘도 열려있는 장소이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은 더 멀리 가고 싶어졌다.
6년 전인가 집에서 차로 약 6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Great Smoky Mountain 국립공원으로 은하수 촬영을 간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내가 별사진을 찍은 지 너무 오래되어서 엄청 많은 실수를 했었고 덕분에 건진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원래 계획했던 장소에 안개가 너무 많아서 별도 안보였고 차선책으로 선택한 장소에는 너무 사람들이 많아서 제대로 된 촬영도 할 수가 없었다.
토요일 오전에 할 일을 휘릭 처리하고 Great Smoky Mountain 국립공원으로 떠났다.
우발적인 여행이다. 무박 2일. 집에 돌아가서 카메라 장비만 챙겨서 떠났다.
일기 예보상으로는 내가 촬영 장소로 생각한 그곳은 오후 9시경부터 맑을 거라 한다.
생각해 보니 출발 전까지 아무것도 먹은 게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한잔 한 것이 전부였다.
가는 길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햄버거 하나 사서 절반 정도만 먹고 두었다.
이것이 나중에 나를 살려(?) 주었다.
오후 2시 반경에 출발했다. 별일 없으면 오후 9시경에 도착할 거라 예상을 했다. 그 시간이면 적당히 하늘도 어둡고 별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것이고 은하수는 동쪽 하늘에서 올라오기 시작할 시간이었다.
가는 길 풍경은 완연한 여름이다. 고속도로에는 적당히 차들이 있고 나도 풍경을 보면서 그리 급하지 않게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중간쯤 갔을 때 내비게이션이 띵 하면서 빠른 길을 알려준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나는 목적지인 Great Smoky Mountain 국립공원 초입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올라갈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네비가 알려준 길로 가다 보니 시골길로만 가고 있다.
결국 목적지인 Great Smoky Mountain 국립공원 Clingmans Dome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후 8시 45분. 해는 막 서산을 넘어갔고 뉘엿뉘엿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배가 고팠다. 다행히 먹다 남겨 놓은 햄버거와 약간의 감자튀김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차에서 내려 하늘 상태를 보니 별들이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해발 1775 미터. 산 아래에는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것들이 보인다.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번보다는 상태가 훨씬 좋았다.
장비를 꺼내기 시작했다. 삼각대, 광각렌즈 광해를 줄여주는 필터 등등 촬영을 위한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나처럼 은하수를 촬영하러 온 사람들이 몇몇이 보인다. 혹은 밤하늘의 별을 보러 온 사람들도.
이들이 결국 빌런이 되었다.
별을 보기 위해서는 그리고 별 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불빛은 또 하나의 적이다. 그런데 그런 기본적 상식(?)이 없이 온 사람들이 핸드폰의 플래시를 켜고 돌아다니고 촬영 중에 갑자기 자동차 라이트를 켜고 그러는 악행(?)을 저지른다. 물론 그 장소가 나 혼자만의 장소가 아니기에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다 하겠지만 그래도 너무 심한 경우도 있었다. 덕분에 망친 사진들이 제법 된다.
시간이 10시가 넘어가니 은하수가 동쪽 하늘에서 올라오기 시작한다. 전갈자리는 진작에 남쪽 하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산등성이에 가려졌던 백조좌도 올라오기 시작한다.
은하수는 북쪽 카시오페이아 자리에서 시작되어서 백조자리를 관통하고 남쪽 전갈좌 옆으로 펼쳐져있다.
적당한 장소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촬영을 시작했다. 날이 많이 추워졌다.
가져간 긴팔 점퍼 하나만으로는 추위를 이기기 힘들었다. 6월 중순인데도 산은 춥다.
시간이 지날수록 은하수는 동쪽 하늘에서 점점 하늘 중앙으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점점 더 어두워지는 하늘이 반가웠다. 생각만큼 별들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뿌옇게 은하수가 보이고 집 주변에서는 보이지 않던 별들도 보인다. 중간중간 포커스에 이상이 없는지를 확인하면서 촬영을 계속했다.
주변에서 촬영하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나간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은하수를 촬영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벌써 새벽 2시.
배고픔과 한기가 더 느껴진다. 나도 장비를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맘먹었다.
이상하게도 별을 볼 때는 다른 생각이 하나도 안 든다. 배고픔도 추위도. 그리고 시간의 흐름도 잊는다.
약간의 미련이 남아 돌아가는 길에 다른 촬영 장소를 물색하다가 추위에 떨었던 몸이 그만 돌아가자라고 외친다. 그래 이 핑계로 다음에 또 와야지 생각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다시 약 6시간의 운전.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거의 없었다. 드문드문 커다란 트레일러만 다닌다. 배가 너무 고파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을 검색했다. 거의 절반쯤 왔을 때였다.
'Waffle House' 미국식 기사식당이라 해야 하나? 간단한 샌드위치와 음료를 파는 곳이다. 그곳에서 가볍게 식사를 했다. 먹고 나니 한기도 좀 사라지고 몸이 좀 풀렸다. 따뜻한 커피와 계란 프라이와 헤쉬 브라운을 먹었다. 집까지는 아직 3시간이나 더 가야 한다.
집에 오는 길 여명이 밝아오고 낮게 안개가 낀 들판도 보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새벽의 모습.
그래도 은하수를 보고 오랜만에 별들도 많이 보고 한 기쁨과 성취감이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물론 집에 도착해서는 죽은 듯이 일요일을 침대와 한 몸이 되어서 보내겠지만 그래도 은하수를 보고 촬영함으로 나의 여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나의 여름은 옥수수도 수박도 모기도 아닌 은하수 관측과 촬영으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