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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성인 Aug 18. 2023

꿈을 위한 진혼곡

파괴자 마약

 원제 Requiem For a Dream. 동명 소설이 원작인 해당 영화를 감상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화려히 부활한 브랜든 프레이저의 신작 'The Whale'을 본 뒤 영화의 감독인 대런 에러노프스키의 필모그래피를 뒤적이다가 눈에 들어온 작품이다.


 능력 있는 감독과 더불어 엘렌 스틴과 제니퍼 코넬리, 그리고 자레드 레토까지 나오는 빵빵한 배우진의 영화 'Requiem'을 밝은 분위기로 설명하긴 어렵다. 마약과 관련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마약을 다루는 영화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Requiem'의 경우 강렬한 편집으로 인해 마치 본인이 마약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만약 마약에 빠진다면 편집으로 표현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비슷한 방식으로 중독되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덕분에 마약이 무섭다는 느낌과 화가 무섭단 느낌을 함께 받았다.



 필자는 깜짝 놀래키는 것을 제외하면 호러보다 스릴러에 대한 공포가 좀 더 크다. 겁이 많진 않으오히려 일반인에 비하여 무덤덤한 면모가 많지만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보단 실현가능성이 높은, 인간에 의한 범죄와 같은 건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약을 매개로 이야기자면 마약은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최면제와 비슷하다. 다만 마약을 하는 자의 정신과 육체를 짓밟는 최면제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 한국에선 마약 관련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펜타닐을 투여하고 마약을 밀수한다는 기사가 자주 보이며 금년 마약 중독 치료 예산이 벌써 전부 소진되었다 등의 소식이 들려오는 것을 통해 마약청정국가라 불리던 대한민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유가 무얼지 생각해 보았다.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으나 미디어에서 다루는 마약의 느낌이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크다 생각했다. 금단의 열매처럼 다뤄진 과거와는 달리 오히려 약간 쿨하고 섹시하게 보이는 경향을 띠며 표현되다 보니 마약에 대한 이미지가 성인의 일탈행위 정도로 인식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는 성인을 동경하는 미성년들에게 마약에 대한 욕구를 증폭시켰고 그로 인해 청소년의 마약 문제가 시작된 것이라 본다.


 미디어의 잘못이라 주장하는  아니다. 제대로 된 사람은 자극적인 영화와 음악을 즐기고도 보고 듣는 그 순간에만 머무른다. 원래가 이상한 자들만이 영화나 드라마, 게임 등을 현실에서 따라 하며 모방범죄를 일으킨다는 타란티노와 에미넴의 말처럼, 마약을 하는 이들은 미디어 때문에 마약을 찾는 것이 아닌 그들의 악하고 약한 인간성이 선행되기에 마약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의 영향이 전무하다는 것 또한 아니다. 대중문화는 본질적으로 소비자를 현혹케 하며 그에 따른 책임성을 무시할 순 없다. 청소년 이용불가와 같은 등급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연령 등급제와 같은 건 시대에 따라 수위의 범주가 변하겠지만 마약과 같은 부류는 시대와 문화에 가둬둘 수만은 없다.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을 매우 잘 만든 영화라 생각한다. 조폭 문화를 멋있어 보이게만 만들지 않았고, 인물들의 성격이나 스토리를 찌질하게, 다시 말해 현실적으로 묘사하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마피아나 일본의 야쿠자처럼 한국의 조폭이 큰 규모라 할 순 없지만 그와 별개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계엔 조폭 영화가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폭력이 가장 심각했던 시기와 겹친다. 아직도 조폭 문화를 선망하는 이들이 있지만 '범죄와의 전쟁'은 이전 조폭영화들과는 달리 억지 의리, 낭만 건달 등을 강조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현실을 알지 못하는 청소년이나 성인들에게 조폭생활에 관한 헛된 상상을 어느 정도 접게 했지 않았을까 한다.


 이처럼 미디어가 원인은 아니지만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Requiem'역시  주연 배우들의 잘생기고 이쁜 외적 모습과 영화라는 매체가 주는 파급력 때문에 마약에 대한 낭만적인 감상을 심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좋은 원작과 감독 대런 에러노프스키의 역량 덕에 그러한 건 없었다. 심연으로 추락하는 마약중독자의 처절한 말로를 보여주었기에 마약중독현실적인 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게 진짜 해피엔딩 아닐까 싶다. ​제목도 너무 잘 지었다. Requiem For a Dream, 꿈을 위한 진혼곡이라는 뜻이며 마약이라는 것의 핵심을 꿰뚫는다.


레퀴엠 (2000)


 좋아하는 밴드 중 하나인 얼터너티브 락그룹, OneRepublic에겐 Counting Stars라는 노래가 있다. 밴드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인데 해당 곡 후렴 시작 직전의 벌스에 'everything that kills me makes feel alive'라는 가사가 있다. 직역하자면, '나를 죽이는 모든 것이 내가 살아있다 느끼게 만들어'란 뜻이다. 철학적인 문장이기도 하며 동시에 영화에 대입할 수 있다고 느껴졌다.


 프랑스아즈 사강처럼 자신에겐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기야 하고 나에게도 있지만, 그녀와는 달리 쾌락을 위해 건강과 미래를 희생하는 마약이 날 파괴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내게 있어 나를 죽이고 파괴하는 것이 마약과 같은 술, 담배, 게임, 도박 등등 혹은 성욕과 돈, 명예 같은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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