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에 일어나서 서핑을 하는 게 이제야 조금 익숙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타면서 연습을 했다. 여태까지는 날이 흐려서 덥다는 걸 못 느꼈는데 해가 쨍쨍하니까 땀이 줄줄 흘렀다. 의자에 앉아서 쉴 때 더위를 참지 못하고 수박 주스를 한 잔 사 먹었다. 리욘이 내가 서핑 하는 걸 봤다면서 일어서는 게 굉장히 빠르다고 칭찬을 해줬다. 숙소로 돌아와서 연습할 때 궁금했던 걸 몇 가지 여쭤보고 빵 5조각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쿠룸바베이에서 봤던 친구 애플(역시나 본명은 아니고 별명이라고 한다.)을 어제 봤던 곳에서 2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혹여나 내가 오지 않을까 염려가 됐는지 메시지로 재차 확인을 하길래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애플은 의자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다며 석양이 잘 보이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했지만, 어른들이 걱정하기 때문에 멀리 가지는 못한다고 말하고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애플의 끊임없는 플러팅이 시작됐다.
같이 온 지인을 가리키며 남자친구 아니라 그냥 친구가 맞냐, 이렇게 좋은 애인데 왜 남자친구가 없냐, 너랑 같이 걷고 싶고 같이 얘기 하고 싶다, 오늘 저녁을 같이 먹고 싶은데 내가 네 집 앞까지 데리러 갈 수 있다, 한국에 와보고 싶냐 물었더니 너 때문에 가고 싶다고 하지를 않나, 내 입으로 얘기하기 민망할 정도였다.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는 게 귀엽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할까 싶어 고마움도 느꼈다. 한국에서 한 번도 안 당해본 플러팅을 스리랑카에서 처음 경험해 보다니. 사람 일이라는 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제 처음 봤으면서 ‘I like you’를 몇 번이나 해대는지 참 웃겨 죽겠다.
애플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둘 다 영어를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실력이 아니라서 대화를 하다 막힐 때는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소통했다. 속도는 느리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최대한 정확하게 알아들으려고 노력했다. 1시간 안되게 대화를 하다가 나는 서핑을 하러 갔다. 저녁을 같이 먹지 않겠냐는 제안은 애둘러 거절하고, 대신 내일 오전에 함께 서핑을 하러 가자고 했다.
서핑을 타다 나와서 해변을 걸으며 챙겨온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항상 느끼지만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친절하다. 앞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손을 흔들면서 오늘 서핑은 어땠냐며 물어봐주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걸 보고 포즈를 잡아주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고 해서 인사를 건네면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게 분명할텐데.
바다를 보면서 앉아있는데 옆에서 백인 남자 한 명과 서핑샵에서 일하는 스리랑카인 두 명, 백인 여자 한 명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재밌어 보여서 쳐다보다가 마침 공이 내 쪽으로 굴러오길래 껴도 되냐고 물어보고 둥글게 모여 같이 공을 가지고 놀았다. 점차 사람이 많아졌고 6명까지 늘어났던 적도 있었다. 각기 다른 국적과 나이, 성별을 가지고 있었지만 친밀감을 높이기에는 공놀이만한 게 없다. 실컷 공을 튕기다가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들을 스리랑카에선 하루에도 몇 번씩을 더 한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서 공놀이에 끼워 달라고 하거나, 자주 보는 친구에게는 영어도 잘 못하면서 먼저 대화를 시작한다거나,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씨익 웃어보이거나. 살아가는 환경과 문화, 분위기가 이래서 중요하다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