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속으로
외벌이가 되니 예산이라는 것이 필요했고 거기에 맞춰 가계를 운영해야 했다. 맞벌이로 커진 씀씀이를 줄이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고 그런 과정에서 비상금 통장의 돈은 비어가기 시작했다. 명품을 사고 쇼핑을 좋아하진 않지만 먹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우리 집 사람들을 위해 단돈 10만 원이라도 벌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하지만 다시 연구실로 들어가긴 싫었다.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 위해 책을 뒤적거리고 돈을 번다는 사람들을 힐끗거리며 일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연구실에서 썩어가는 동안 세상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디지털노마드라는 말이 생겼고 유튜브를 안 하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었다. SNS는 하나라도 해야 했으며 그걸 이용해 돈을 벌어야 하니 브랜딩마저 알아야 했고 그걸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일명 시스템이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 다들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거였다.
더 웃긴 것은 다 쉽다고 했다.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이 모두 쉽게 할 수 있다고 하고 이렇게 하면 월 100. 저렇게 하면 월 1000이라고 한다. 세상에 그럼 돈 못 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인가. 이게 무슨 사기꾼 같은 행태인가 싶어서 유심히 본 것 같다.
레드오션이 되기 전에 벌고 그걸로 책 쓰고 강연 다니는 사람 반. 반짝이는 창의력으로 레드오션이지만 잘 비집고 들어가서 자기만의 노선을 구축한 사람 반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돈을 벌어 또 책을 쓰고 강연을 다니고 거기에서 또 자리를 잡으면 추종자를 모아서 더 비싸게 받고 강연을 한다. 잘 보면 다단계 같았다. 일명 다이아몬드 계급은 억대를 벌고 그 밑에 계급은 천만 원대를 벌고 그렇게 밑으로 내려가면 마지막에 엄청 많은 사람들은 거의 받지 못하고 거기서 바둥거리는 그런 다단계말이다.
그래도 지금이 이게 대세라면 이유가 있을 거였다. 누구나 일을 하지 않고 나에게 돈이 들어온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다들 뛰어들었나 싶기도 하고. 월급이 얼마 되지 않으니 부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처럼 아이를 봐야 하는 사람들은 밖에 나가서 아르바이트하기가 힘들다. 아이가 아프면 달려가야 했고 코로나시대에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나가서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들 그렇게 집에서 하는 일들을 찾아 헤매는 것 같았다. 뭐 나라고 다를까. 나 역시도 그러고 있었으니 말이다.
일단 내일 배움 카드로 동영상 편집하는 수업을 들었다. 유튜브를 할지 말지 모르지만 내일 배움 카드로 들으면 거의 무료라 일단 들어보자 싶어서 들었다. 배우고 깨달았는데 나는 유튜브를 보지 않는다. 신랑이 지나가는 말로 '그거 배워서 뭐하게?' 라고 물어봤을 때 우리 신랑은 알았던 것이다. 동영상도 안보면서 그건 뭐하러??
보지 않으니 트렌드 따위는 따라갈 수 없었고 흉내도 힘들었다. 영상을 안 보는데 센스 따위가 있을 리가. 다 배우고 알다니. 참 한심하기 그지없긴 하다. 그러고 나니 현타가 왔다. 아.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남들 따라쟁이를 하려는 것인가? 내가 그 정도로 돈이 급했나? 나는 왜 그랬던 거지? 이런저런 생각 끝에 알았다.
딸이랑 투닥거리는 과정에서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본 딸의 말 때문에 있다.
'그럼 엄마는 누군데?’라는 말에 말문이 막혔었다. 그때의 나는 ‘직업=나’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없는 거였다. ㅇㅇ엄마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 어디 가도 내 이름 석자를 말하고 다녔던 나인데 이제 ㅇㅇ엄마 말고는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이제 나는 뭘 하는 사람인거지? 그럼 나는 누구인 거지? 점점 나의 존재는 미궁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