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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in Dec 23. 2023

안녕 Torrey Pine

겨울 토리파인 스테이트 비치, 2023 Fall을 마치며

샌디에이고살이 중에서 가장 마음 깊이 머무른 곳은 토리파인 스테이트파크/비치가 아닐는지.

보고 또 보아도, 날이면 날마다 다른 빛과 아름다움을 안겨준 그곳.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그리움이 밀려온다.

어쩜, 날마다 이렇게 다른 모습인 거니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 보라빛 구름과 저멀리 빛나는 금빛 석양이 황홀하게 아름답다
유독 새들이 많이 날던 날,  한국의 장맛비 같은 시원한 비가 이날 밤 샌디에이고에 내렸다. 샌디에이고에는 참 드문 폭우



J와 H가 23년 가을 학기를 마쳤다.

J를 생각하면, 그가 가진 능력에 비해 이곳 미국 생활에서 얻어갈 수 있는 그 무언가의 1/3도 얻어가지 못한 느낌이다. 그에겐 비교적 쉬운 미국 수업에도 진중하지 못했고, 한국 입시 준비와 돌아갈 생각에 이곳 학교 생활에 전념하지 않았다. 지난 1년은 그래도 영어도 꽤 늘고, 학교 생활도 곧잘 하는 느낌이었는데, 이번 학기는 영 어정쩡했다. 덕분에 내 맘도 괜한 걱정으로 불편하기 일 수. 겨우겨우 이번 학기를  마쳤다. AP과목과 Honor과목으로 거의 꽉 채운 시간표였는데, 시험은 잘 봐도 숙제와 수업태도가 엉망이니 성적이 좋을 리가 없다. 아쉬운 건 내 몫, 귀찮아하는 것은 본인 몫. 1/4이 한국인이라는 K와도 친해지고, 본인 말로는 영어도 늘었단다. 좀 더 영어를 해왔어야 하나, 너무 커서 왔나.. 안타까운 마음은 내 몫이지만,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것은 J의 책임. 그래도 의미 없는 시간은 없을 것이다.

대학교 교정같은 이 멋진 고등학교에서 미국 미드처럼 멋진 청춘을 즐겨보면 얼마나 좋아

그러나 J는 미국 올 때 들고 온 모든 책을 다 보았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반짝이는 눈으로 즐거워하며 공부를 했다. 대견하다. 무엇이든 해낼 것 같다. 

J는 스스로가 무게를 두는 일에 좀 더 집중했을 뿐이다. 난 그냥 이런 것을 해낸 J가 정말 멋지다. 

J가 혼자서 풀어낸 꽤 많은 책들~ 저기 통합과학이 있는 사진의 것은 H가 또 푼거.. J가 푼걸 또 H가 풀어서 책이 너덜너덜



H는 캘리포니아에서 손꼽아주는 공립고등학교에서도 올 A를 받아 주었다. 

참 기특하다. 미국 학교는 솔직히 A에 관대한 것 같다. 그래서 H가 특별히 잘하는 아이인 것 같아서 기특하다는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쯤 되면 이곳 아이들과 진심으로 융화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환경에서도 자기 자리매김을 해낸 것이 기특하다. 묵묵히 자기 일을 성실히 잘 해온 그것이 멋지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이고 최선을 다하는 게 기특하다. Self esteem이 높아지고 있다. 마음 깊이 자신감이 채워지길 바란다. 원래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H였는데, 이곳에서 테니스도 잘 치게 되고, 농구도 좋아하게 되었다. 운동신경도 별로 없고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많이 못했는데, 이곳 미국에서 운동을 좋아하게 되었다. 덕분에 키도 부쩍 크고 멋있어졌다. H를 보면, 좀 더 어릴 때 이곳에 오는 것이 더 많은 것을 흡수하게 되다는 생각도 든다. 성실하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성향도 한몫했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 가장 영어를 영어답게 구사하는 H, 나는 네가 참 부럽다.

재학증명서와 성적표를 발급받으러 H의 학교를 다시 한번 찾았다. 중학생이 고등학생도 되어보고. 신통방통



아, 그리고 J는 이번에 제자가 생겼다. J가 수학을 가르친 9학년 S가 50점대 수학에서 95점으로 성적이 훌쩍 뛰어올랐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zoom으로 가르쳐줬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신뢰가 쌓였다. J는 갈 때마다 매우 귀찮아했는데, 그래도 꼬박꼬박 잘 해낸 것이 어딘가. 누군가를 가르쳐보고, 덕분에 영어로 오래오래 말해야 하고. J에게 더할 나위 없이 긍정적인 경험이었을 것이다. 마지막날 작은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받아왔다. 내가 받은 양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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