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비던스, 리즈디 뮤지엄 카페 Pearl
2015년 10월 2일 금요일,
남편과 내가 처음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에 있는 프로비던스라는 도시로 이사한 날이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여기 오는 한국 사람들은 다 언니(요부마)를 거쳐가야 해."라고 말할 정도로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사람과 더불어 아는 곳도 많아졌다. 다행히 나는 새로운 곳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었고, 그것은 미국에 온 지 8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곳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내 삶의 활력소이며 기쁨이니까.
내가 처음부터 이곳, 프로비던스라는 작은 도시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일명 '도시녀'였다. 1981년 한국 서울에서 태어났고, 태어난 이후로 줄곧 서울의 중심부에서 살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는 혼자서 일본 도쿄에서 8개월 정도를 살았다. 서른 살에는 다시 혼자서 미국 뉴욕에서 2년 정도를 살았다. 이후 서울에 돌아와서 산지 2년 정도가 되었을 때, 미국 보스턴에서 일하다 잠시 서울로 출장을 왔던 남편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반년 뒤에 우리는 결혼을 했고, 나는 도 혼자서 커다란 이민 가방 하나를 들고 남편이 살고 있던 보스턴의 단칸방(멋있게는 스튜디오라고 부르지만, 방이 없이 한 공간에 침실, 키친, 욕실이 있는 단칸방이다.)으로 들어왔다.
보스턴은 미국 동부에서 뉴욕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나는 내가 쭉 그곳에서 살 줄 알았다. 하지만 보스턴에서 산지 딱 일 년이 되었을 때, 남편은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에 있는 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남편이 처음 면접을 가기 전까지 나는 미국에 '로드아일랜드'라는 주가 있는 줄도 몰랐다.
로드아일랜드는 미국에 있는 50개 주 중에 가장 작은 주이다. 남편의 면접은 1박 2일 동안 진행되었는데, 남편이 하루 종일 면접을 보는 동안, 나는 다운타운에 있는 호텔에 묵으면서 호텔 주변을 걸어 다니거나, 구글에서 맛집이나 괜찮은 카페를 검색해서 우버를 타고 돌아다녔다. 처음 본 프로비던스는 작고 아담하고 예쁜 도시였다.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프로비던스에 대한 나의 첫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심심한 동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 도쿄, 뉴욕, 보스턴과 같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번화한 도시에서만 살다가 프로비던스 같은 작고 조용하고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동네는 나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나는 면접을 보고 온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여기는 작고 예쁘기는 한데...... 나는 여기서 못 살 것 같아요......" 남편도 "여보가 여기가 너무 싫으면 어쩔 수 없죠. 보스턴에서 살아야죠."하고 대답하길래, 나는 안심했었다. 하지만, 프로비던스에 있는 대학에서 남편이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좋은 조건을 제시하였고, 결국 우리 부부는 프로비던스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하자마자 나는 첫 아이를 임신했고, 2016년 가을에 출산을 했다.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프로비던스의 작은 공용 아파트는 세 식구가 살기에는 좁고 불편했다. 1년 반 후에 우리는 프로비던스에서 차로 17분 정도 떨어진 공립학교가 좋은 교외의 동네로 이사를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에 이사한 지 7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곳에 사는 것이 꽤 만족스러워졌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친절하고 따뜻하다. 처음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이방인 여자에게 상냥하게 대해주었다. 아이와 베이커리나 상점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후로 우연히 몇 번을 더 마주치다 보면 어느새 친구가 되어있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 사람들과도 많이 알게 되었는데, 특히 내가 결혼과 임신 기간 중에 종종 올리던 블로그 글을 보고 나에게 메시지로 연락을 해오는 사람도 있었다. 낯선 곳에서 혼자 적응해야만 하는 외로운 시간을 보냈던 나는, 이곳에 처음 오는 사람들에게 내가 살면서 알게 된 정보를 알려주기도 하고, 종종 만나서 차를 마시자고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지금은 동네에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한국인 가족들이 늘어나면서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 번 모여서 함께 밥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아이들을 함께 놀리기도 하고, 서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도와주기도 하면서 지낸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은 나로 하여금 이곳을 좋아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이유는 '좋은 장소'이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프로비던스와 이웃 동네들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곳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뮤지엄, 갤러리, 도서관, 서점, 카페, 식당, 상점, 모파상, 공원, 바다, 호텔......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도 하고, 신나게 하기도 하고, 설레게 하기도 하는 나의 취향에 맞는 공간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리즈디 뮤지엄 안에 있는 카페이다.
리즈디 (RISD) 대학교는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의 약자로 미국에서 매우 유명한 4년제 명문 사립 미술대학이다. '미술계의 하버드', '공대는 MIT, 미술은 RISD'라고 불릴 정도로 명성과 역사를 지닌 학교이다. 처음에는 로드아일랜드의 작은 도시, 프로비던스에 이런 유명한 미술 대학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살아보니 프로비던스는 보스턴까지 기차나 차로는 1시간, 뉴욕까지는 3시간에서 3시간 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문화적인 트렌드를 경험하기에 좋고, 복잡한 대도시와는 달리 조용하지만 아름다운 장소들이 많아 혼자서 사색을 하고, 공부와 창의적인 작업에 집중하기에도 좋다.
리즈디 뮤지엄 1층 로비에는 볼트 커피라는 유명 로컬 커피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카페, 'Cafe Pearl'이 있다.
보통 토요일 오전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혼자서 생각을 하고 싶어서 이곳에 온다.
맛있는 카페 라테 한 잔을 주문해놓고 집중해서 일을 하다가, 출출해지면 이곳에서 직접 구운 비스킷을 주문해서 먹기도 한다.
나의 첫 번째 e-book인, <건강하게, 자유롭게, 우아하게 미니멀 쿡>도 거의 이곳에서 썼다.
퇴고를 할 때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5시간 동안 있었던 적도 있다.
글을 쓰다가 막히거나 좀 걷고 싶을 때는 미술관 안을 걷는다. '마크 로스코', '엘스 월스 켈리'의 작품에서부터 인상파 작가인 '고갱', '고흐', '르누아르', '모네' 그리고 '로뎅'의 조각 작품, 중세시대 작품, 아시안 미술작품 등을 보다 보면 시간이 지나도 소중하게 간직된 작품들에 대한 경탄과 작가들의 노력에 숭고함, 겸손함을 느끼고 다시 나의 보잘것없지만 소중한 글에 집중하게 된다.
내가 이곳을 특별히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냉방과 난방이 아주 잘 되어있다는 거다.
코비드 이후, 석유 값이 엄청나게 올라서인지, 최근에 갔던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난방을 해주지 않았다.
지난번에 갔던 한 카페에서는 글을 쓰면서 머물렀던 한 시간 동안 너무 추워서 손도 얼고, 머리도 추워서 두통이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리즈디 뮤지엄 안에 있는 이 카페는 몇 시간을 머물러도 춥거나 덥지 않고, 딱 일에 집중하기 좋은 온도를 유지해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이 작고, 사랑스럽고, 따뜻한 동네에 구석구석을 소개해주고 싶다. 만약 나처럼 얼떨결에 이곳에 오게 된 사람이 있다면, "여기도 이렇게 사람이 잘 살고 있으니, 안심하고 오세요~"라며 안심시켜주고 환영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