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aboard!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 역

by 요부마
프로비던스 역(좌) / 로드아일랜드 스테이트 하우스 (우)



코로나 팬더믹 이후 처음으로 프로비던스 역에 왔다.

프로비던스 역은 로드아일랜드 스테이트 하우스(Rhode Island State House)라는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의 주정부 사무소 건물 건너편에 있다.


로드아일랜드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과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당일치기로 뉴욕에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가족이 아닌, 맘이 잘 맞는 또래 친구들과 뉴욕으로의 기차 여행이라니...... 설렌다.

프로빈던스에서 뉴욕까지는 기차로 3시간이 좀 넘게 걸린다.

프로비던스 역은 이전 그대로였다.

12월의 토요일 아침이었지만, 역은 한가한 편이었다.

여유 있게 역에 도착했기 때문에 뉴욕행 기차가 올 때까지 2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역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전광판을 보며 몇 번 플랫폼에서 기차를 타야 하는지 확인하면서, 친구들이랑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문득, 남편과 처음으로 프로비던스 역에 왔었던 때가 떠올랐다.


7년 전, 남편과 나는 결혼한 지 일 년 정도가 된 신혼이었고, 보스턴에 살고 있었다.

남편과는 2013년 12월에 서울에서 만났다. 당시에 나는 서울에 살고 있었고, 남편은 보스턴에서 혼자 살며 일을 한 지 5년 정도가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나는 남편과 결혼하면 쭉 보스턴에서 살 줄 알았다. 평생은 아니더라도 최소 몇 년은 보스턴에서 살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남편은 로드아일랜드 주에 있는 브라운 대학교에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전까지 '로드아일랜드'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이곳에서 이틀 동안 면접을 보게 된 남편을 따라서 프로비던스에 왔다. 1박 2일 동안의 면접 일정을 마친 후, 우리는 보스턴으로 돌아가는 저녁 기차를 타기 위해서 역에 왔다.


남편도 나도 매우 지쳐있었다.

당시에 나는 버스, 기차, 역 등 공공장소에서 나오는 영어 안내 방송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날도 우리 기차가 도착할 때쯤에, 역 안의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왔다.

"All aboard!"

나는 남편을 보고 "지금 방송에서 뭐래요?"라고 물었다.

남편은 다 알아들었다는 듯이, "음, 기차가 만차라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남편을 보고 "그럼 우리 어떻게 해요......?"라고 물었고,

남편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음 기차를 타야겠네요."라고 말했다.

나와 남편은 다음 기차가 언제 오는지 물어보려고 매표소 직원에게 갔고, 그에게 우리가 끊었던 기차표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직원은 방송 못 들었느냐며, 다음 기차까지는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랬다......

"All aboard"는 기차에 사람이 꽉 찼다는 말이 아니었다. "지금 기차가 왔으니, 모두 승차하세요!"라는 뜻이었다.

그날 남편과 나는 역 안의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남편은 "이런 공공장소에서 나오는 기본적인 대화도 못 알아듣는데, 내가 어떻게 미국에서 대학 교수를 해요......"라며 침울하게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남편에게 짜증을 냈었을 텐데, 그날은 세상 긍정적이고 여유로운 성격의 남편이 이런 일로 심각해지다니, 나는 놀라우면서도 그런 그가 안쓰러웠다.


몇 달 후에 남편은 브라운 대학교에서 교수 제의를 받았고, 우리는 프로비던스로 이사를 했다.

7년 전에는 어색하기만 했던,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던 프로비던스 역.


이사하고 일 년 후에 나는 첫 아이를 낳았고,


두 돌이 된 아들은 기차를 매우 좋아했다.

그 당시에 <토마스와 친구들>이라는 기차를 주인공으로 한 영국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는데, 거기서 매번 나오는 말이 있었다."All aboard!"

남편은 평생 그 단어를 잊을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시끄러운 소음을 싫어하면서도 실제로 역 안으로 빠르게 들어오는 고속 열차를 보고 싶어 하는 아이를 위해서

나는 한 손에는 유모차를 밀고, 한 손으로는 아이 손을 잡고 자주 프로비던스 역에 왔다.

특별한 계획도 없이 이곳에 와서 플랫폼에 내려가 기차를 기다리기도 하고, 시간이 맞으면 기차를 타고 프로비던스 공항에 가서 하늘로 떠오르는 비행기를 보며 아이와 크루아상 하나를 먹고 돌아오기도 하고, 보스턴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때는 어디 가기 위해서 기차를 탄 것이 아니라, 기차를 타기 위해서 어디로 갔다.

프로비던스 역에 처음에 왔을 때, 이 역은 우리에게 의미가 없었다.


그냥 처음 듣는 이름의 잘 모르는 동네에 있는 작은 역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작이 어찌 되었든 우리는 이곳에 터전을 잡았고 7년을 살았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나의 가족,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서 추억을 만들었다.

때론 다른 도시에서 오는 친구를 맞이하고, 돌아가는 친구와 마지막 인사를 하기도 하고,

다른 도시로 출발할 때는 여행에 대한 기대로 설레어하기도 하고, 여행을 마친 후에 피곤한 몸으로 이곳에 도착하면 집에 왔다는 편안함을 느꼈다.

프로비던스 역은 그렇게 내 인생의 일부가 되었고 남편에게는 인지 못할 기억을 남겨주었다.


다음에는 어떤 일로, 어떤 마음으로 이 역에 다시 오게 될까?

새로운 곳에 가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나를 보러 온 반가운 얼굴을 마중하러 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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