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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을 단칸방에서 시작하길 잘했다

자주 부딪칠수록 얼른 적응한다


30년 넘게 각자 살아온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금방 적응하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작은 집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거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 나는 서른넷, 남편은 서른여덟 살이었다.  처음 만난 지 5개월, 데이트를 한 지 3주 만에 혼인 신고를 하고 부부가 되었다. 나흘 후에 남편이 먼저 보스턴으로 떠나고 나는 서울에 남아 배우자 미국 비자를 받았다. 

3개월 만에 보스턴에서 남편을 다시 만났다. 그의 집에 도착했다. 욕실과 부엌과 침실로 된 단순한 구조였다. 부엌과 침실 사이에는 가슴까지 오는 칸막이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런 집을 스튜디오라고 부른다. 한국어로 하면 ‘단칸방’이다. 가구는 퀸사이즈 침대 하나, 나무 서랍장 하나, 접으면 1인용이 되었다가 펼치면 2인용이 되는 접이식 테이블이 전부였다. 벽에 넓은 붙박이장이 있었다. 남편은 전날 업체를 불러서 청소했다고 말했다. 작지만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었다. 

남편은 5년 동안 요리를 하지 않아 집에 조리 도구가 하나도 없었다. 2주 동안 살림살이를 사서 채워 넣었다. 제법 신혼집 같아졌다. 처음 장만하는 '나의 살림'은 신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신혼의 달콤함은 곧 쓴맛으로 변했다. 성인 둘이 작은 공간에 있으니 여러모로 불편했다. 

가장 큰 문제는 남편의 코골이였다. 나는 누워서 잠이 들 때까지 한참이 걸렸다. 반대로 남편은 어디든 머리만 대면 순식간에 잠들었고, 곧장 코를 크게 골았다. 당연히 옆에 있는 나는 안 그래도 잠이 오지 않는데 코 고는 소리 때문에 괴로웠다. 남편 코를 막거나 몸을 흔들어 깨웠다. 그러면 그는 코를 골지 않으려고 옆으로 누워서 자는 등 신경을 쓰다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일어나면 둘 다 눈 아래 다크서클이 까맣게 올라와 있었다. 결국 우리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해결법을 찾았다. 내가 먼저 잠들고 나면 남편이 자는 거다. 


씻는 시간도 달랐다. 나는 옷을 골라 입고 화장하는데 15분 정도 걸린다. 반면, 남편은 샤워하는데만 20분 가까이 걸렸다. 나는 얼른 나가고 싶은데 한없이 느린 남편을 기다리다 보면 짜증이 났다. 

한 번은 데이트를 하려고 먼저 외출 준비를 마치고 얼른 나가고 싶어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좁은 방안을 서성거렸다. 마침내 수건으로 머리에 있는 물기를 털며 나오는 남편을 보자  쓴웃음을 지으며 비아냥거렸다. “야, 야, 빨래하냐?” 

밖에 나오니 밤새 내린 눈이 발목까지 쌓여있었다. 하얀 눈이 덮인 케임브리지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여보, 저기 첨탑에 눈 쌓인 것 좀 봐요. 예쁘죠?” 나는 그의 팔짱을 끼고 걸으며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그런데 남편의 표정이 어두웠다. 

우리는 일본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다. 나는 모처럼 나왔는데 즐거워하지 않는 남편에게 서운해하며 물었다. “여보, 무슨 일 있어요? 피곤해요?” 그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당신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았어요.” “네? 내가요? 언제요?” 그는 자신이 욕실에서 나왔을 때 내가 ‘야, 빨래하냐?’라고 한 것에 기분이 상했다고 했다. “사람마다 준비에 필요한 시간은 달라요. 상대의 다른 습관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고운 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편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나는 그가 이제까지 나와 다르게 살아왔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 친한 사람에게 짓궂은 농담을 하거나 핀잔을 주는 말버릇이 있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사람 사이에는 서로 존중하는 자세가 기본이다. 특히 말은 존중을 표현하는 강력한 도구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예의를 지키고, 소중한 사람일수록 예쁘게 말해야 마음이 전해지는 법이다.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달랐다. 나는 내 기분과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반대로 남편은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말로 표현하는데 서툴렀다. 나는 문제가 있으면 바로 말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반면, 남편은 웬만한 일은 혼자 삭이고 그냥 넘어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려면 상대방에게 자기 생각과 감정을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해와 서운함이 쌓이기 때문이다.

점차 서로의 표정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챌 수 있었다. 같이 잘 지내기 위해 상대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이른 시일 안에 서로를 파악하고 서로에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나갈 때는 남편이 먼저 일어나 준비했다. 자기 전에는 내가 먼저 빨리 씻고 나면 남편이 천천히 씻었다. 잘 때는 내가 먼저 잠들고 나서 남편이 잤다. 싸우면 도망갈 곳이 없으니,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단칸방에서 살며 알게 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것이다. 타인이 나의 습관, 성격, 생각, 감정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내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배우자가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서 해줄 거라는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다. 그보다는 최대한 상대가 기분이 상하지 않게 전달하는 법을 연습하는 편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자주 부딪칠수록 서로에게 빨리 적응한다는 거다. 만약, 우리가 방이 여러 개인 집에 살고 있거나 가까운 곳에 가족이나 친구가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다투고 나서 불편한 상황을 피하고자 각자의 방에 들어가 있거나, 나가서 누군가에게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우리는 방도 없었고, 갈 곳도 없었다. 그래서 살기 위해 어떻게든 빨리 대화하고 타협점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서로를 더 관찰하고, 서로가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결국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단칸방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한 것이 십 년 동안 서로를 배려하는 부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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