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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부마 Nov 21. 2024

내 집은 '안온한' 장소인가

일본 드라마 <사자의 은신처>를 보고



보스턴 호텔에서 묵을 때, 배경처럼 틀어놨다가 푹 빠져서 봤던 넷플릭스 드라마, <사자의 은신처>


도쿄에 살던 코모리 히로토는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자 고향 집으로 돌아와 공무원으로 일하며, 자폐를 갖고 있는 동생 미치토와 함께 살고 있었다. 작은 자극에도 불안해하는 자폐증의 특성상, 매일 정해진 루틴에 따른 일상을 보내고 있는 어느 날, 자신을 '라이온'이라고 부르는 남자아이가 나타난다.

동생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코모리는 아이를 경찰서에 데려다주려고 하지만, 아이에게서 익숙한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일단 데리고 있기로 한다.

그때부터 평화로웠던 형제의 집에는 바람 잘 날 없는 날들이 이어진다. 

코모리, 미치토, 라이온이 점점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의 영역으로 상대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라이온은 자신의 본명도, 나이도, 부모에 대해서도 말하기를 거부한다. 에피소드가 이어질수록, 라이온이 엄마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하필이면 형제의 집에 오게 된 사연이 조금씩 밝혀진다. 의문을 풀어가는 전개가 꽤 흥미롭다. 


라이온의 사연을 알아갈수록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마땅히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해야 할 '집'이란 장소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문제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꼭 가족의 일원이 다른 약한 일원을 신체적으로 아프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욕감을 주는 언어를 사용하거나, 관심을 주지 않는 것 역시 안전한 집이라고 할 수 없다. 


어떤 가정이 이런 지적에서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가족은 가까운 만큼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쉽다.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반대인 경우가 많다.

특히 아이에게 부모는 태양과도 같은 존재다. 아이는 마땅하게 사랑받아야 하고,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나 역시 나단이(여덟 살 된 내 아들)를 한결같이 따뜻하고 편안하게 대하지는 않는다. 

"너를 위해서 가르쳐 주는 거야."라고 말은 하지만,  속을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귀찮음과 피곤함에서 비롯한 감정적인 행동인 경우가 훨씬 많다. 가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꾸만 내 식대로 평가하고 지적하고 비난하는 건 또 어떻고. 


'우리 집은 얼마나 안전한가?' 자꾸만 돌아보게 만드는 드라마였다. 


가족 구성원이 자신의 정서를 가꾸면서 안온하게 있을 수 공간. 바깥에서 열심히 사느라 피곤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안아주는 가족이 있는 장소.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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