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이 아니라, 그 때문이다.
나는 "생각을 좀 해봐야겠어."라며 차를 몰고 떠났던 그의 연락을 하루종일 기다렸다. 하루를 꼬박 안절부절못하며 핸드폰만 쳐다보았지만,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는 연락은커녕, 내가 건 전화를 받지도, 보낸 문자에 응답도 없었다. '화가 많이 났나 보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한국에 돌아온 후로, 혼자 취업하고 그를 기다렸던 나에게 너무 매정하고 가혹했다. 다시 전화도 걸고, 문자를 보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조금 더 지나자 이번엔 그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혹시, 사고라도 났나? 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한 달이 지났다.
나는 말 그대로 멀쩡하게 길을 걷다가 갑자기 총을 맞은 기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나를 일부러 차단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정신이 멍해졌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거지? 그때 그 말을 하지 말 걸 그랬나? 내가 일본에서 와서 너무 못나게 굴었나? 내가 평범한 회사에 취업해서 실망한 건가?' 자아비판과 반성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들어갔다.
한편으로는 '어쩌면 오늘 연락이 올지도 몰라.' 하면서 그를 기다렸다. 관계가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지도,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못한 채. 제삼자가 보면 '너 차인 거야.'라고 말했을 거다. 그러나 나는 그가 "헤어지자"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여지를 남겨놓고 있었다.
요즘 인기인 넷플릭스 드라마 <트렁크>에서 5년이 다 되도록 잠수 탄 남자 친구의 집을 드나들며 쓸고 닦는 인지(서현진)를 보며, 친구인 시정(전혜진)이 말한다. "그 새끼가 헤어지자는 말 한 마디면 해주고 떠났으면 인지 이렇게 까지 안 했어. 그 말 한마디를 안 해줘서 인지가 이러고 있는 거라고!"
거의 일 년이 다 되도록 나는 가슴 한 편에서 그를 기다렸다. 한 달에 한 번,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게 전화도 걸었다.
그러다 우리 사이가 진짜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그의 미니홈피 대문 사진에 올라온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피부가 뽀얗고 참하게 생긴 여자의 사진을 보았을 때였다.
그제야 머릿속에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도쿄에서 전화 너머 그의 목소리가 짜증이 섞여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일이 고돼서가 아니라, 그가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그녀였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내가 한국에 돌아온 후에 연차가 높아진 그가 병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건, 병원에서 나오고 싶지 않도록 만드는 그녀가 있었을 거라는 거. 그가 떠나던 날,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꽁무니를 뺀 것은, 차마 자기 입으로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 생겼어."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는 거.
나는 그와 나, 둘 만을 놓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둘 사이에 새로운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일 년 동안 나 자신이 얼마나 못났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분석하고 자책했었다.
그 사실을 알았다고 그에 대한 미련이 바로 연기처럼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의 새로운 여자 친구가 곱상한 외모의 여의사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배우를 포기하고 꾸역꾸역 회사에 취업한 나 자신이 더욱 못나보였다. 나는 그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과 이제까지 살아온 27년의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뒤늦게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 전형도 검색해 봤지만, 세포 하나하나 이과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반년 정도 지났을 즈음, 어느 날 늦은 밤에 그에게 보자는 연락이 왔다. 나는 일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 나갔다. 그가 보고 싶었고, 궁금했다. 신천 역 뒷골목에 있는 양꼬치 집에서 백세주를 시켜놓고 마주 앉았다. 나는 그때 왜 그렇게 떠났고, 연락을 하지 않았는지 묻지 않았다. 그가 그대로 일어서서 나가버릴까 두려웠던 것 같다. 이런저런 겉도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그는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2년이 다 되도록 나는 회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남자친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그만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돌아와 준다면 나는 무조건 받아들였을 거다.
그러나 다음 날 그는 잘 들어갔냐는 연락조차 없었다. 내가 먼저 '잘 들어갔어?'라는 문자를 보냈고, 그는 짧게 그렇다고 답했다.
내 마음은 화산이 폭발하고 난 후의 잿더미 같았다. 어떤 일에도 의욕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드라마 <섹스 앤 시티>를 보면서, 뉴욕에 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 꽃 한 송이가 피어나듯. 유일하게 하고 싶은 일이었다. 나는 결국 퇴사하고 뉴욕에 갔다.
뉴욕에 도착해서 일 년 정도 지났을 때인가? 별생각 없이 오랫동안 접속하지 않던 미니홈피에 들어갔다. 쪽지 하나가 와 있었다. 보낸 사람은 '그'였다.
'지희야. 전화 안 받네? 제발 나한테 전화해 줘.'
쪽지를 보낸 건 사흘 전이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아마도 당신은 내가 이쯤 되면 정신을 차렸을 거라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발'이라는 말을 쓸 정도면, 분명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였다. 어쩌면 연로하신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지도 몰랐다. 어찌 되었든 그는 지금 나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전화 연결음만 울리다가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갔다. 나는 그가 걱정되었다.
그의 미니 홈피에 들어갔을 때,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푸핫!!!!'하고 웃고 말았다.
그의 홈피 대문에는 그때 그 여의사가 하얀 가운 대신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멀쑥하게 턱시도를 빼입고 서있는 그의 팔짱을 끼고 웃고 있었다.
그 순간에 정말 신기하게도 그에 대한 애정과 미련이 드라이아이스가 증발하듯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2년이라는 시간을 이런 못난 사람 때문에 힘들어한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동시에 결혼을 앞두고 지난 여자친구에게 연락하는 남자와 결혼한 여자에게 동질감과 애잔함을 느끼며 속으로 '파이팅!'을 외쳤다.
잠수이별을 당한 사람은 상대가 아무 말도 없이 떠난 이유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을 하나씩 곱씹으면서 '그때 내가 그 말을 해서 그가 떠난 것이 아닐까? 내가 왜 그랬을까?'라며 후회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상대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목에 쇠사슬이 묶인 서커스 코끼리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잠수이별을 한 사람이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한 이유는 (대부분) 나 때문이 아니다. 바로 그 사람의 문제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상황을 피한다는 게 타이밍을 놓쳐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있는 경우.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하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비겁함.
또 다른 이유는 자기감정에만 충실한 자기중심적인 성향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니 지난 연인의 기분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집안에 일이 생겼거나, 사업이 잘 풀리지 않거나, 싸움에 휘말린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처리해야 할 문제가 있으니, 연인이 나를 걱정하는 것 정도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내 인생 살듯이 상대도 알아서 살겠지 하는 거다.
유일하게 잠수당한 사람에게 원인이 있는 경우는, 몇 번이나 헤어지자고 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아서다. 이별 이야기를 꺼냈더니, 죽겠다고 협박하거나, 크게 화를 내거나, 사람들 앞에서 난처한 행동을 하거나. 그래서 헤어지자고 말하는 게 두렵다.
그런데 이렇게 상대를 괴롭힐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라면 가만히 앉아서 '상대가 잠수 이별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까? 당장 그, 그녀가 있는 곳을 수소문해서 난리를 치겠지. (나도 그럴 생각을 해보기는 했다. 차마, 실행하지 못했을 뿐.)
잠수 이별을 하는 사람의 심리는 여러 가지가 있다. 상황도 제각가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 그녀는 당신의 인연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종종 연애 상담 사이트나 전문가가 '헤어진 연인에게 다시 연락 오게 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을 본다. 하지만 여러 가지 연애와 백 번 이상의 선과 소개팅을 한 후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 십 년째 잘 살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부디 당신의 소중한 돈과 시간을 그런데 쓰지 말라는 것이다.
엄마가 해준 따뜻한 미역국 먹고 그런 취급당하고 다니지 마라.
헤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 잠수 이별을 한 상대는 최대한 빨리 잊고, 멀리 도망치는 것이 당신의 인생에 이롭다. 물론 내가 아무리 말해도 결국 사람은 해야 할 경험은 하고, 겪을 고통은 겪어야 배우고 성숙한다. 그러나 자학하고, 후회하고, 아파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회복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들고, 행복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당신은 행복할 자격이 충분하다. 당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사랑을 주려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