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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BUMA 요부마 Feb 07. 2024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는 따뜻한 책




이전에도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에 대해 쓴 적이 있다. 둘 다 책을 읽는 중간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때그때 풀어냈다. 다 읽고 나서 꼭 한 번 다시 글을 쓰고 싶었다. 

페트릭 블링리가 형, 톰을 잃고 메트로폴리탄에서 십 년 동안 순례자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을 숨을 죽이고 따라다녔다. 







-스토리-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그의 마음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 안에는 상실과 비탄이 있었다.

맨해튼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뉴요커> 사무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는 메트로폴리탄이라는 성역( Sanctuary)으로 들어가, 푸른 제복을 입은 경비원이 된다. 


수 세기를 걸쳐 내려온 고대 미술품부터 동시대 사람들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 속에 둘러싸여 형의 죽음을 애도한다. 그곳에서 자신처럼 푸른 근무복 안에 각자의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을 만난다. 관람객을 관찰하고 그들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자녀를 낳는다. 

그사이 뚫렸던 구멍은 삶에 대한 감사, 열정, 호기심, 희망으로 메워진다. 인큐베이터에서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은 아기가 세상으로 나오듯, 페트릭은 메트로폴리탄을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온다. 


이제 과거의 아름다움 대신 생동감 있게 살아 숨 쉬는 도시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랑하는 딸 올리와 아들 루이스에게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책을 읽고-


시기는 다를지 몰라도, 우리는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 상실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어떤 사람은 그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알코올, 약물에 의지한다. 남은 인생을 비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우울하게 지내는 이도 많다.

다행스럽게도 패트릭은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취직을 한다. 본인은 허무하고 무력했을지 몰라도, 나는 이런 성실한 방법을 선택한 그가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어두운 길 대신 아름다운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족들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연극배우였던 어머니 모라는 형제들이 어릴 때부터 미술관에 데리고 다녔다. 

아버지 짐은 지방 은행에 직원이었는데, 퇴근 후에 몇 시간씩 업라이트 피아노를 매우 열정적으로 쳤다고 한다.

그런 그가 했던, 






언제나 자신의 재능은 재능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한 부지런함이다.

                                                               -짐 블링리-







예술가는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패트릭 블링리-





형인 톰 역시 암으로 투병을 시작하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두려움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형이 떠난 후에도 어머니와 패트릭은 함께 미술관에 가서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그림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 

일상에서 예술을 사랑하는 가족 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가 피난처로 메트를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패트릭은 매트에 있는 예술 작품과 이전 시대 사람들이 썼던 생활 도구와 악기들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내가 '설명한다'라는 표현 대신 '이야기'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설명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책에서 여러 번 예술을 배우려고 하지 말고, 예술에서 배우라고 말한다. 

르네상스 시대, 인상주의 학파. 이런 이론적인 설명 이전에 그림을 가만히 보고 내 안에 떠오르는 감정에 집중해 보라고 부드럽게 조언한다. 



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건 좋다’, ‘이건 나쁘다’ 또는 ‘이건 가, 나, 다를 의미하는 바로크 시대 그림이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상적으로는 처음 1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해선 안 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중략)


만약 무언가가 웃기는지 알고 싶다면 그것이 우리를 웃게 만드는지 확인하면 된다. 어떤 그림이 아름다운지 알고 싶다면 그림을 바라볼 때 우리 안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면 된다. 웃음만큼 확실하지만 대부분은 좀 더 조용하고 주춤거리며 나오는 반응일 것이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패트릭은 그리스 아테네에서 온 쿠로스 대리석 소년 조각상에서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라는 당연하지만 모른척했던 진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형, 톰의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거북이 속을 파내 만든 악기를 보며, '당신의 죽음이 곧 도착할 것이다.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 모든 것을 잊고 마음껏 흔들어라.'라는 메멘토 모리 메시지를 떠올린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 실력과 인내심을 발휘해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가는 행위의 숭고함을 배운다. 그의 창작물을 보며, 자신도 무언가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창작 욕구를 느낀다.

그 모든 배움과 깨달음과 새로운 욕망이 더해져 그는 다시 미술관 바깥세상으로 발을 내디딜 용기를 얻는다.


미술관을 떠나는 날. 패트릭은 20년 전 어머니가 그와 형제들에게 시카고 미술관에서 했던 것처럼, 매트에서 가슴에 품고 나갈 작품 하나를 고른다.

15세기 이탈리아 수사 프라 안젤리코 Fra Angelico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우아하면서도 부서진 몸은 뻔한 사실을 다시 상기시킨다.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 고통 속의 용기는 아름답다는 것, 상실은 사랑과 탄식을 자극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림의 이런 부분은 성스러운 기능을 수행해서 우리가 이미 밀접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불가해한 것에 가닿게 해준다.


예술가들은 우리가 세상이 그대로 멈춰 섰으면 하는 순간을 기록한다. 

아름답고, 찬란하고, 장엄하거나, 행복하고, 슬픈 순간들. 

그 덧없는 순간들을 기록해서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세대를 거듭해 아름답고, 찬란하고, 장엄하거나, 행복하고, 슬픈 순간들로 남아있을 수 있다고 믿게 해준다. 



세상에 나와 고군분투하며 살다가도 결국은 '무無'로 돌아가는 인간의 운명.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뉴욕 쿠로스(아테네 청년 대리석 조각상)처럼 '살아있다는 것이 제일이라는 것을 아는 생명'답게 어깨를 쫙 펴고 살아갈 용기를 주는 따뜻한 책이었다.






-에필로그-


나는 2009년부터 2년 동안 뉴욕에 살았다. 

간절하게 바라던 배우의 꿈을 접고  어떻게든 새로운 꿈을 찾기 위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항상 겉돌았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내가 있을 자리, 내가 할 일이 아닌 것 같다는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스물아홉. 여름휴가 때 친구를 만나러 뉴욕에 갔다가 신세계를 만났다.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왔다. 다시 살아난 느낌.패트릭 블링리가 뉴욕에 대해 쓴 부분을 읽으며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이 이해가 갔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

뉴욕에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나는 나대로 산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뉴욕에 갔다. 


처음 내가 살았던 곳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네 블록 떨어진 아파트였다. 당시에는 메트 입장료는 원하는 금액을 내면 되었다. 그래서 1불에서 5불 정도. 주머니 사정대로 돈을 내고 언제든지 맘 편하게 들어갔다.

눈이 많이 내린 오후. 이집트 전시관에 거의 혼자 있었다. 커다란 전면 창 밖에는 눈이 덮인 샌트럴 파크가 보였다. 반면, 미술관 안에는 은은한 오렌지빛 조명이 비치고 있었고, 따뜻했다.

서로 다른 차원의 세계를 동시에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고대 이집트에 있고, 투명한 벽 너머에는 현대의 맨해튼이 있고.

그리고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그 기억은 이제까지 받은 어떤 선물보다 마음에 든다.

(솔직히 생일 선물은 요 근래 2년간 블로그에 기록한 것 이외에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그때가 2010년이었으니 페트릭이 경비원으로 근무할 때다. 어쩌면 매트의 어느 전시실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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